티리 클리메크는 남편과 연인, 이웃, 심지어 동물까지 거리낌 없이 독살한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그녀는 자신이 예언의 꿈으로 그들의 죽음을 미리 알아챘다고 주장했다. 겉보기에 평범해 보이던 이 여성은 대체 왜 연쇄 살인마가 되었을까?
티리 클리메크(Tillie Klimek)는 1876년 테오필라 그부렉(Teofila Gburek)이라는 이름으로 당시 독일 분할 지배 하에 있던 폴란드에서 태어났다. 그녀가 한 살이 되던 해, 부모는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고, 많은 폴란드 이민자들처럼 시카고에 정착했다.
어린 시절부터 티리는 자신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실제로 그녀의 '예지력'이라는 것은 애완동물들이 죽을 날짜를 알아맞히는 것이 고작이었다. 14세에 결혼한 그녀의 배우자는 요제프 믿키에비치였다. 두 사람은 약 25년간 비교적 평온한 삶을 살았지만, 말년에 접어들며 티리는 남편에게 기이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꿈속에서 요제프가 죽는 것을 보았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 남자는 머지않아 세상을 떠났다.
티리 클리메크는 거리낌 없이 남편과 연인, 이웃, 심지어 동물까지 독살했다. 동시에 그녀는 자신이 예언의 꿈으로 그들의 죽음을 미리 알아챘다고 주장했다.
요제프의 뒤를 이어 티리의 새로운 연인이 된 사람은 얀 루스코프스키였다. 여기에 정부 요제프 구슈코프스키도 있었다. 기묘한 우연처럼, 두 남자 모두 1914년 연인의 예언대로 목숨을 잃었다. 이제 새로운 사랑을 찾을 때가 된 것이다.
특별한 사랑
그녀의 선택은 프란치셰크 쿠프치크에게 떨어졌다. 그는 나이가 들어간 티리에게 푹 빠져 있었다. 와인잔을 기울이며 나누는 대화와 로맨틱한 산책 같은 달콤한 나날들은, 그러나 오래가지 못했다. 여자는 다시 남편의 끔찍한 죽음을 예감했고, 공통 지인들에게 "프랭크는 오래 살지 못할 것이다"라고 예고까지 했다. 이상하게도 친구들 중 누구 하나 프랭크에게 연인의 예언에 대해 경고한 이는 없었다.
한편 건강하던 남자는 눈 깜짝할 새에 힘과 건강을 잃어갔다. 티리는 남편의 운명을 지극히 걱정하는 듯 생명보험 가입을 권유했고, 남자는 기꺼이 따랐다. 병상에 눕게 된 후에도 아내는 곁을 떠나지 않았다. 걱정스러운 듯 의자에 앉아 남편 장례식에 쓰겠다고 약속했던 검은 모자를 뜨개질하고 있었다. 이웃들이 수상함을 느낀 것은 티리가 아직 살아 있는 남편에게 선물로 관을 사서 지하실에 두었을 때였다. 프란치셰크 쿠프치크는 1921년 성 베드로를 만나러 갔다.
예언의 꿈과 중병에 앞서 찾아온 남편·연인들의 미스터리한 죽음은 티리의 행복을 가로막지 못했다. 그녀는 또다시 사랑에 빠졌고, 이번에는 요제프 클리메크가 큐피드의 화살에 맞았다. 두 사람은 1921년 7월 30일 결혼식을 올렸다.
세 번째는 없다…
연애 초반에는 사랑이 무르익었지만, 곧 새 남편이 밀주와 다른 여자들을 너무 좋아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티리는 남편의 취미에 동조하지 않았다. 결혼 몇 주 후 요제프는 갑자기 병에 들었다. 불길한 예언이 또다시 현실이 되려는 듯했고, 클리메크 부인은 흉조를 떨쳐내려 애썼다. 생명보험 가입이 상황을 만회해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뜻을 이루지 못했다. 병든 남자의 가족이 연인의 과거 연애사를 짚어보고는 뭔가 잘못됐다고 판단한 것이다. 위독한 상태의 요제프는 정밀 검사를 위해 병원으로 옮겨졌다. 유감스럽게도 의학은 객관적이고 냉정했다. 이번 진단은 두 가지를 한꺼번에 밝혀냈다. 남자의 병의 원인과, 티리의 예언이 '적중'하던 비밀을…
두 문제 모두 남자 체내에서 검출된 비소(砒素), 즉 독극물과 관련이 있었다.
10월, 여성은 체포되었다. 남편은 몇 달 후 병원에서 퇴원했다. 사실이 밝혀지자 티리는 아무런 감정 없이 요제프를 독살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아마도 이렇게 함으로써 조사관들의 시선을 전 연인들의 미스터리한 죽음에서 돌리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녀의 예지력이 실패했다. 시카고 경찰이 그녀의 과거 연애 관계를 샅샅이 뒤지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죄와 벌
티리 클리메크의 법적·재정적 상황을 면밀히 분석한 결과, 그녀는 죽음이 닥칠 때마다 금전적 이득을 챙긴 것으로 밝혀졌다. 시신들이 발굴되었고, 그 안에서 비소가 검출되었다. 수사 과정에서는 살인자의 과거 어두운 일화들도 잇달아 드러났다. 그녀의 눈에 거슬린 이웃들의 설명할 수 없는 죽음, 근처 동물들의 잇따른 실종, 그리고 연애 관계 중 질투의 대상이 된 여성들의 미스터리한 죽음. 비소는 그녀에게서 사랑이 식은 동거인들에게도 사용되었다.
수차례의 신문 끝에 클리메크에게 공범이 있음이 밝혀졌다. 바로 사촌 넬리 쿨리크였다. 논란의 여지가 없는 증거 앞에서 두 살인자는 1923년 재판에 회부되었다. 검사는 클리메크가 20명을 독살했으며, 그중 13명이 사망했다고 기소했다.
유감스럽게도 모든 살인을 입증할 수는 없었다. 피고인들이 변명을 거부하고 범행을 자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신 발굴 결과, 비소 흔적, 이웃과 피해자 가족들의 증언을 근거로 법원은 티리와 넬리에게 종신형을 선고했다. 이는 쿡 카운티(Cook County)에서 여성에게 처음 내려진 중형이었다.
티리 클리메크는 1936년 11월 20일 감옥에서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녀는 지금도 시카고 역사상 가장 악명 높은 싸이코패스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출처:
- Tillie Klimek, Murderpedia.org [2021년 8월 27일 확인].
- Miss Cellania, 8 Sensational Female Murderers from History, Mentalfloss.org [2021년 8월 27일 확인].
- Alison Martin, This week in history: Chicago serial killer Tillie Klimek dies in prison, Chicago Sun Times [2021년 8월 27일 확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