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그베다 아리안족의 경제 생활
리그베다 시대 아리안족의 경제 생활은 단순했으며 복잡성이 거의 없었다. 초기 리그베다 아리안족의 경제는 식량 생산보다는 주로 목축에 기반을 두고 있었기 때문에 정기적인 세금은 극히 적게 걷혔다. 토지나 곡물을 바치는 공납에 대한 언급도 찾아볼 수 없다. 사회에서는 부족적 유대가 강하게 작용했으며, 세금 징수나 토지 소유를 기반으로 한 신분 계급은 아직 형성되지 않았다. 이 시기의 경제 상황은 다음과 같다.
1. 촌락의 구성
리그베다 아리안족은 마을에 거주했다. 『리그베다』 어디에도 도시에 대한 언급은 없다. 마을들은 서로 인접해 있었다. 야생동물과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흙집들이 늘어선 정착지는 덤불이나 가시 울타리 등으로 요새화되었다. 대부분의 가옥은 대나무와 나무로 지어졌다.
2. 농업
농업은 리그베다 아리안족의 주요 생업 중 하나였다. 각 가정은 독립된 밭을 가지고 있었지만 목초지는 모두가 함께 사용하는 공유지였다. 경작은 쟁기를 이용해 이루어졌으며, 『리그베다』 초반부에는 쟁기(팔라)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당시 쟁기날은 아마도 나무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리그베다 사람들은 파종, 수확, 탈곡에 익숙했고 계절의 변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이들은 주로 밀과 보리를 재배했으며, 과일과 채소도 생산했다.
3. 목축
목축은 리그베다 아리안족의 두 번째 주요 생업이었다. 동물 가운데 소가 가장 중요했는데, 그만큼 유용했기 때문이다. 소는 '아그냐(Aghnya)', 즉 죽여서는 안 되는 존재로 불렸다. 『리그베다』에 소에 관한 언급이 많다는 점은 아리안족이 목축민이었음을 보여준다. 이들은 대부분의 전쟁을 소를 위해서 벌였다.
『리그베다』에서는 전쟁을 뜻하는 말로 '가비스티(Gavishti)'가 사용되는데, 이는 '소를 찾는 일'이라는 의미다. 소는 최고의 재산으로 여겨졌다. 황소는 쟁기를 끄고 수레를 끄는 데 쓰였고, 말은 전차에 이용되었다. 아리안족이 가축으로 기른 다른 동물로는 양, 염소, 개가 있었다. 개들은 가옥과 정착지를 지키는 역할을 맡았다.
4. 수렵
리그베다 아리안족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에 야생동물 사냥 역시 생계 수단이었다. 이들은 활과 화살, 철제 창으로 멧돼지, 사슴, 물소를 사냥했고, 덫을 놓아 새를 잡았다. 사자는 여러 방면에서 포위하여 잡았다.
5. 토기
하리아나주의 바그완푸라(Bhagwanpura)와 펀자브의 세 곳 유적에서 회색 채문 토기(Painted Grey Ware)와 후기 하라파 토기가 발견되었다. 바그완푸라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원전 1600년부터 기원전 1000년까지의 것으로 연대가 측정되었으며, 이 시기는 『리그베다』가 편찬되던 때와 겹친다. 이 네 곳의 지리적 위치는 『리그베다』에 나타난 지역과 일치한다.
이 네 유적에서 회색 채문 토기가 발견되었지만, 철기 유물이나 곡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따라서 철기 이전 단계의 회색 채문 토기 문화가 리그베다 시대와 공존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6. 수공업
『리그베다』에는 목공인, 전차 제작자, 직조공, 무두장이, 도공 등 장인들에 대한 언급이 등장한다. 이는 아리안족이 이러한 공예 분야에 깊이 익숙했음을 보여준다. 구리 또는 청동을 가리키는 '아야스(Ayas)'라는 단어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은 금속 제련 기술을 알고 있었다. 인도 아대륙 서부에 정착했을 때 라자스탄주의 케트리(Khetri) 광산에서 구리를 얻었을 가능성이 있다. 리그베다 시대의 목공인들은 전차와 수레를 만들었다.
이들은 나무 잔도 만들었으며 그 위에 정교한 조각을 새겼다. 장인들은 구리와 청동으로 각종 그릇, 무기 및 생활용품을 제작했다. 금세공인은 금과 은 장신구를 만들었고, 무두장이는 가죽 제품을 만들었다. 바느질, 돗자리 엮기, 양모와 면직물 만들기 등도 생계 수단이었다. 도공들은 물레를 돌려 토기를 빚었다.
7. 상업
상업 역시 리그베다 아리안족의 생계 수단이었다. 이들은 국내외 무역을 모두 행했다. 초기에는 물물교환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졌으나, 점차 소의 가치를 기준으로 삼게 되었고, 마침내 금과 은으로 만든 화폐가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 시기에는 '니슈카(Nishka)'라는 화폐가 통용되었다. 천, 가죽, 침구류가 주요 교역품이었다. 물자 운송에는 수레와 전차가 이용되었고, 강을 건너는 데는 배가 사용되었다.
8. 대출 관행
리그베다 시대에는 이자를 붙여 돈을 빌려주는 관행이 있었다. 바이샤(Vaishya) 계층과 고리대금업자들이 이 일을 했으며, 이것이 그들의 주된 생계 수단이었다. 빚을 갚는 것은 종교적 의무로 여겨졌으며, 갚지 못할 경우 일정 기간 채권자를 위해 노역해야 했다.
리그베다 사회에서 예술의 발전
지적 성숙을 바탕으로 리그베다 시대 사람들은 다양한 창작 예술을 발전시켰다. 이들은 진정한 예술을 사랑하는 민족이었다.
1. 시가 문학
리그베다 아리안족은 시 창작에 매우 뛰어났다. 『리그베다』는 운문 형식으로 지어졌으며, 대부분의 시가는 종교적 서정시이다. 이 시기의 시가에는 자연스러움과 아름다움이 넘친다. 특히 새벽 여신 우샤(Usha)를 찬양하는 구절에서 성현들은 깊은 정서를 표현했다.
2. 문자 기록술
리그베다 아리안족이 문자를 알고 있었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반다르카르(Dr. Bhandarkar) 박사 등 많은 학자들은 그들이 문자를 알고 있었다고 믿는다. 당시 토기에 새겨진 기호들이 브라흐미 문자와 닮아 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3. 기타 예술
리그베다 아리안족은 여러 다른 예술 분야에서도 능숙했다. 가옥 건축 기술이 뛰어나 천 개의 기둥과 천 개의 문을 가진 웅장한 건축물을 지을 수 있었다. 이들은 실 잣기, 직조, 융단 짜기, 금속 공예, 음악, 무용, 가창에도 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