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마약, 처방약. 꿈의 공장이라 불리는 할리우드에서 이 모든 것은 커리어를 한순간에 무너뜨릴 수도 있지만, 역설적으로 커리어를 더 앞으로 나아가게 만들 수도 있다. 성공 여부를 가르는 열쇠는 바로 유능한 홍보 전문가다. 이상적으로는 역사를 잘 알고, 오래전 세상을 떠난 할리우드 마약 중독자의 사례를 본받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인물이어야 한다.
월러스 리드(Wallace Reid)는 여성들에게서 탄성을, 남성들에게서 존경의 박수를 동시에 이끌어낸 몇 안 되는 배우였다.
그는 자동차 경주를 사랑하는 약간 엉뚱한 옆집 소년 같은 이미지를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 신처럼 완벽한 몸매에, 촬영장 일이 끝나면 아내 도러시 데이븐포트(Dorothy Davenport)와 어린 아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정중히 돌아가는 모범적인 가장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어떠했을까?
그는 마약 중독에서의 회복 과정이 공론화된 최초의 할리우드 스타였다. 주변 몇몇 인물들의 기지 덕분에 리드는 타락한 마약 중독자로 낙인찍히지 않았다.

촬영장에서 오페라 가수 제럴딘 파러(Geraldine Farrar)와 함께한 월러스 리드
대신 그는 '너무 아파서 힘든 가엾은 왈리'가 되었다. 자신의 문제에 용감하게 맞서는 인물로 재탄생한 것이다.
최대한 오랫동안 은폐하라
1891년 4월 15일에 태어난 월러스는 타고난 성공의 운명을 지녔다. 연예계와 인연이 깊은 가문 출신이었고, 어린 시절부터 무대에 올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전형적인 미국식 프로엠 킹 외모에 거구(오늘날에도 큰 키인 190cm! 20세기 초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를 지닌 청년은 단편 영화에 출연하기 시작했다. 커리어의 전환점은 1915년작 '국가의 탄생(The Birth of a Nation)'에서 대장장이 역을 맡으면서 찾아왔다.

복잡한 연기는 아니었지만 상의를 벗어야 하는 역할이었고, 이 장면 하나로 여성 팬들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게다가 그 작품이 미국 영화 사상 가장 큰 반향을 일으키며 선례를 깬 영화 중 하나였다는 점도 그에게 득이 되었다.
이후 몇 년간 리드에게는 승승장구의 연속이었다.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캔들'의 저자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은 이렇게 쓴다:
리드는 수많은 자동차 경주 영화에 출연하며 스턴트를 직접 소화했고, 이를 통해 남성다움을 확실히 각인시켰다. 동시에 오페라 가수 제럴딘 파러와 함께한 가장 유명한 작품을 필두로 수많은 이국적 로맨스에서 여심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대본을 검토하는 월러스 리드(왼쪽)
동료 탓을 해라… 전혀 모르는 사람들로
이 황금빛 할리우드 소년이 갑자기 1922년 10월 22일 병원에 실려갔을 때 팬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상상해 보라. 영화사에서는 이미 몇 달째, 관중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그가 마약 문제를 겪고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다.
상태가 너무 심각해지자 리드는 의사들의 관리를 받게 되었고, 아내 도러시와 친구는 그를 산속 고립된 곳으로 모셔가 요양시켰다.
언론은 줄곧 월러스가 '병들었다'고만 보도했다. 진실이 세상에 알려진 것은 두 달 후였다. 하지만 도러시는 물러설 생각이 없었다. 남편 주변 사람들과 함께 그녀는 이후 전개될 상황을 치밀하게 설계해 나갔다.
아내를 최전선에 내보내라
가족들은 배우가 나쁜 친구들 때문에 중독에 빠졌다는 감미로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리드의 장모에 따르면, 배우가 초대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의 집에서 술을 마셨고, 집주인인 그는 너무 상냥해서 그들을 쫓아내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는 주문처럼 되뇌었다. 남편은 강한 의지력과 성품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잘못이 아닌 이유로 마약 질환의 손아귀에 걸렸다고. 다행히 회복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고도. 그녀는 말했다:
"남편은 많이 아픈 아이입니다. 회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만두었고 이 싸움에서 승리했습니다. 그는 자유의지로 이 대결에 맞섰고, 정신력과 자신의 의지로 승리했습니다." (앤 헬렌 피터슨,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캔들'에서 인용)

이렇게 해서 마약 중독자는 영웅이 되었다. 결국 스스로 병을 이겨내기 시작한 사람을 차마 등질 수는 없었다. 사랑받는 스타는 팬들을 위해 영화 속 스턴트를 직접 소화하느라 잦은 사고를 당했다.
스튜디오와 관객을 실망시키지 않으려고 부상당한 몸으로도 새 장면을 찍었다. 모르핀 주사 한 방이면 충분했다. 바로 그 끊임없는 압박이 그를 중독으로 몰아넣었다. 그는 당신과, 당신의 아내와, 당신의 아이들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마약에 빠진 것이다!
코카인을 담은 설탕 그릇 이야기는 하지 마라
신문 독자들 앞에서 회복해 가는 리드의 이상화된 이미지는 젊은 스타 이블린 네스빗 소(Evelyn Nesbit Thaw)가 입을 열면서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녀는 할리우드에서 희생자를 노리는 마약상들에 대해, 자신의 중독 경험에 대해 이야기했고, 코카인이 너무 넘쳐나 설탕 그릇에 담아 서비스되던 파티들에 대해서도 폭로했다.
언론에는 월러스 리드가 모르핀뿐 아니라 코카인에도 중독되어 있다는 보도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것은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1900년대 초 모르핀은 여전히 어느 약국에서나 처방받고 구할 수 있는 흔한 약이었다. 하지만 코카인은 지금과 마찬가지로 불법이며 사회적으로 규탄받는 물질이었다.

1912년, 월러스 리드와 도러시 데이븐포트
장모님께는 마약이 싫다고 말해라
배우의 아내는 남편이 코카인이 있는 파티에 딱 한두 번 참석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장모님께 슬프게 말했다고 한다:
"엄마, 저는 이런 거 싫어요. 이런 식으로 쾌락을 찾으면 안 됩니다." 다들 너무 가짜예요. (앤 헬렌 피터슨,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캔들'에서 인용)
이 모든 언론 플레이는 미디어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원하는 메시지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정확히 같은 행보를 목격한다.

아내와 어린 아들과 함께한 월러스 리드. 이 순간까지만 해도 비극적인 결말을 예고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젊은 스타와 관련된 마약이나 알코올 스캔들이 할리우드에서 터진다. 매니저는 그녀가 자신의 삶이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깨달았으며 팬들의 응원을 구하고 있다고 발표한다. 스타는 고급 마약 재활 센터에 들어가고, 때때로 언론에 "몸이 좋아지고 있다", "도움과 따뜻한 말에 감사한다"고 전한다. 재활 시설을 나오면 모든 것이 압박과, 자신이 빠져든 나쁜 친구들 때문이었다고 말한다. 낯익은 이야기 아닌가? 물론이다! 결국 모든 것이 리드가 고안한 공식대로 진행되는 것이다.
불행히도 그 공식은 그를 구하지 못했다. 월러스 리드는 1923년 1월 18일, 마약 금단으로 인한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출처
이 글은 앤 헬렌 피터슨(Anne Helen Petersen)의 저서 '할리우드 황금기의 스캔들(Scandals of the Golden Age of Hollywood)'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