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10월 혁명의 숨은 설계자: 레닌 뒤에 있던 남자, 알렉산더 파르부스

10월 혁명의 진짜 설계자는 누구였을까?

어떤 이에게 그는 단지 유대인 배후조종자였다. 또 다른 이들에게는 사회주의와 얽힌 미심쩍은 연설가였으며, 많은 사람은 그를 콘스탄티노플의 영향력 있는 무기 상인으로 알았다. 그를 그저 살집 좋은 자본가 정도로 치부하는 이도 있었고, 독일 첩자라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10월 혁명의 실질적인 설계자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말하는 인물은 블라디미르 레닌도, 레프 트로츠키도, 그 밖의 몽상가들도 아니다. 알렉산드르 이즈라일리예비치 헬판드(Aleksander Izrael Lazarevich Helphand, 흔히 알렉산더 파르부스 혹은 이즈라엘 겔판드로도 불린다)는 오데사에서 보낸 젊은 시절과 이후 바젤 망명 생활 동안 전복적 사상에 매료되어 있었지만, 중년에 이른 그는 이미 발을 땅에 딛고 현실을 직시하는 인물로 변해 있었다.

어떤 이들은 그 당시에도 그가 마음속으로는 진정한 사회주의자였다고 주장했다. 다른 이들은 로마노프 왕조가 러시아 유대인들을 수백 년간 박해해 왔기에, 그저 그들의 몰락만을 바랐던 것이라 믿었다.

어쨌든 베레지나 출신의 한낱 가난한 청년이었던 그는 1915년, 콘스탄티노플 주재 독일 대사관의 후원을 등에 업고 먼 나라에서 온 영향력 있는 상인의 모습으로 독일 외무성의 문을 두드렸다. 그는 빠르게 실권자들과 접촉했고, 자신의 계획, 바로 '러시아를 내부로부터 무너뜨린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10월 혁명의 숨은 설계자: 레닌 뒤에 있던 남자, 알렉산더 파르부스

알렉산더 헬판드. 혁명 뒤에 숨어 있던 '살집 좋은 자본가'인가?

러시아가 문자 그대로 썩어가고 있으며, 그 나라를 통치하는 이들이 무능함의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는 사실은 오래전부터 널리 알려져 있었다. 1905년 혁명에 한몫했던 헬판드는 한 가지 더 알고 있었다. 현지 사람들에게 행동할 명분만 불어넣으면, 그들은 차르와 라스푸틴, 그리고 무능한 인사들로 구성된 정부에 맞서 스스로 일어설 것이라는 점이었다.

5천만 마르크로 산 혁명?

이후 전개된 사건들은 역사 애호가들에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다. 독일군과 독일 외무성은 처음에는 마지못해, 그러나 점점 열정적으로 러시아 내 비공식 선전 작전에 뛰어들어 혁명 사상 전반을 지원했고, 구체적으로는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적 플랑크톤에 불과했던 볼셰비키를 집중적으로 밀어주었다.

10월 혁명의 숨은 설계자: 레닌 뒤에 있던 남자, 알렉산더 파르부스

10월 혁명이 성문을 두드리고 있다…

그러나 역사서들은 이 모든 활동의 배후에 최소한 간접적으로나마 헬판드가 있었다는 사실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독일인들로부터 자금을 받아 러시아의 전복 운동을 지원하고, 사회주의 언론을 발행하며, 공산주의자들을 포섭하려 시도한 것이 바로 그였다(물론 그 시도는 대체로 실패였다).

그가 자기 일에 특별히 능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두가 그를 독일 스파이로 의심하게 되었으니까. 하지만 반면에 혁명가들은 그리 까다롭지 않은 부류였다. 앤드루 쿡이 기록했듯이,

"돈이 빠르게 흘러들어오는 한, 반란군들은 자금의 출처에 대해 그가 내놓는 어떤 설명이든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회의적이었던 레닌조차 결국 설득에 굴복하여, 독일이 마련한 특별 열차를 타고 스위스에서 스톡홀름을 경유해 페트로그라드로 향했다. 독일이 채택한 헬판드의 계획은 1917년 여름 러시아를 완전히 불안정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이유로 볼셰비키들은 그의 주선으로 쇠퇴하는 제국의 수도로 실려갔고, 여기에 각종 선전 및 전복 활동에 3천만~5천만 마르크가 투입되었다.

간접적으로 헬판드는 성공을 거두었다. 싹트던 러시아 민주주의는 요란하게 무너졌다. 반면 그의 계획은 러시아를 손쉽게 분할하여 독일에 예속시킬 수 있으리라 전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구나 아는 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볼셰비키는 70년 넘게 권력을 쥐고 있었다.

10월 혁명의 숨은 설계자: 레닌 뒤에 있던 남자, 알렉산더 파르부스

헬판드가 없었다면 블라디미르 레닌은 아마 끝내 권력에 도달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볼셰비키의 역사 서술에 헬판드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독일의 금화를 받아들인 것은 혁명사에서 특히 영광스럽지 못한 에피소드였으니까. 그러나 의외로 서방에서도 헬판드의 역할을 기억하는 이가 거의 없다. 만약 그의 결단력이 없었다면, 레닌은 1918년에도 여전히 취리히에 앉아 있었을지 모른다. 오직 독일인들만이 그를 따뜻하게 기억하는 듯, 오늘날까지 그를 다룬 책과 기사가 집필되고 있다…

출처

  1. Andrew Cook, The Murder of the Romanovs, Amberley Publishing,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