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에서 경력을 쌓는 일은 고되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부사관과 장교까지 승진한 선원이라면 누구나 그만큼의 자부심을 가졌지요. 그런데 제2차 세계대전 중 폴란드 해군 당국은 영국에서 복무하던 부사관들을 대거 ‘강등’시켰습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번역 실수처럼 들렸지만, 사태는 결코 단순하지 않았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 폴란드는 자국이 보유한 가장 현대적인 구축함 3척 — ORP 브리스카비차(Błyskawica), ORP 부자(Burza), ORP 그롬(Grom) — 을 승무원과 함께 영국 항구로 파견했습니다. 폴란드 선원들은 자신들의 배에서 자랑스럽게 복무했고, 왕립해군(Royal Navy)과 함께 바다에 나섰습니다. 바로, 공동 복무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작은 문제가 있었습니다. 폴란드 함정에 탑승한 영국인들(통신병이나 일부 부사관 등)은 이 구축함 3척이 영국 정부로부터 받은 물품은 모두 자기들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여기에는 식량 배급은 물론 함내 매점에서 지급되는 ‘사치품’, 즉 연유, 비누, 초콜릿 같은 물자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를 두고 다툼이 자주 벌어졌습니다. 선원들 사이의 갈등이 이것만으로 생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부사관들 사이에서는 서열과 권한을 둘러싼 분쟁도 잦은 골거리였습니다.
남의 계급장으로 나를 꾸미다?
해군 사령부는 주인인 영국인들에게 호의적인 인상을 주고 싶었고, 동일 계급의 양국 선원들 사이 갈등을 해소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 이것입니다. 군인수첩의 폴란드어 계급 옆에 영어 번역 계급을 병기하되, 실제보다 한 계급 아래로 기입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론상으로는 영국인에게만 참고가 되는 표기였지만, 실제로는… 윗사람이 옳은 법입니다. 폴란드 선원들은 아무런 명분 없이 강등당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예컨대 영국 헌병의 눈에 폴란드 보스만(bosman)은 한 계급 아래의 ‘스타시 마트(starszy mat)’에 불과했고, 폴란드 마트(mat)는 아예 부사관 신분 자체를 잃고 다시 상등선원(starszy marynarz)으로 밀려났습니다.
처음에는 이것이 무의미한 계급 혼란, 즉 어떤 번역 오류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실제 의도는 달랐습니다. 한 척에 여러 국적의 부사관이 섞여 복무하는 상황에서 영국인들이 언제나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선원들의 입장에서 보면 상황은 훨씬 심각했습니다. 해군성의 이 방침 때문에 두 명의 부사관은 마트 신분은커녕 부사관 신분 자체를 잃게 된 것입니다.
평범한 선원들과 한 방에 갇혀 앉아 있다니!
문제의 두 부사관은 영국 감옥에서 풀려나 순양함 ‘드래곤(Dragon)’호에 복귀한 뒤, 자신들의 생각을 행동으로 보여주기로 했습니다. 부사관 집회에 나오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육지에서는 부사관들이 평범한 선원들과 한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차피 영국인들 눈에 그들은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요. 이 모든 상황은 빈센트 치간(Wincenty Cygan)이 회고록 『더 네이비 블루 크루(The Navy Blue Crew)』에서 생생하게 묘사했습니다.
장교는 — 훗날 그들이 말하길 — 직접 그들을 찾아와 집회에 초대했습니다.
“우리는 안 나갑니다.”
“왜요?”
“우리는 부사관이 아니니까요.” — 그들은 군인수첩을 내밀며 답했습니다.
“그건 영국인한테만 해당되는 겁니다. 폴란드 배에서 당신들은 언제나 부사관입니다.”
“말도 안 됩니다. 우리는 어디서든 부사관이거나, 아니면 어디에서도 부사관이 아닙니다.” — 그들은 몇 번을 되물어도 끝까지 우겼습니다. “우리는 이 배에서 14일 동안 규정을 어기고 선원들과 엄격히 같이 갇혀 지냈습니다. 우리 규정은 부사관은 엄중 금고형에 처해질 수 없으며, 선원들과 함께 복무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중 더 솔직한 한 사람이 말을 이었습니다.
“부사관은 모범이 되어야 하고 부하들로부터 존경과 복종을 얻어야 한다고 머리에 박아 넣는 것도 이제 우리에게는 무의미해졌습니다. 내가 함께 쫓기고 화장실을 함께 청소하던 선원이 우리에게 무슨 존경심을 가지겠습니까?”
이 말을 들은 장교는 위협했습니다.
“집회에 나와야 합니다. 안 그러면 또 처벌받을 겁니다!”
두 사람은 농담처럼 들린다는 듯 그의 눈앞에서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중위님, 저는 러시아 수용소와 감옥에서 2년을 살아남았습니다. 영국 감옥이라면 한 달이고 두 달이고, 그 이상도 충분히 버틸 수 있습니다.”
결국 이 대치에서 이긴 것은 부사관의 명예였습니다. 전쟁 전과 전쟁 내내 그토록 소중히 여겨졌던 명예였지요.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그디니아(Gdynia)에서 훈련받은 베테랑 선원들은 폴란드 군의 자긍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고, 그 자존심을 내려놓을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프랑스인들이 “단치히(그단스크)를 위해 죽고 싶지 않다”고 외칠 때, 영국인들이 폴란드인이 왜 소련 동맹국을 짜증나게 하는지 이해하지 못할 때, 그들에게 남은 것은 오직 자존심뿐이었으니까요.
출처
- Wincenty Cygan, 『The Navy Blue Crew』, Finna,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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