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찢어낸 심장, 먹어치운 다리 — 아즈텍인들은 정말 가학적인 야만인이었을까?

알몸으로 묶인 포로가 불길 속에 던져져 산 채로 익었다. 그러다 사제들이 아직 살아 있는 제물을 불에서 꺼내 칼로 가슴을 가르고, 지금도 뛰고 있는 심장을 가슴에서 찢어 꺼냈다. 극도로 가학적인 처형 묘사처럼 들리는가? 물론 그렇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것은 아즈텍의 화신(火神) 시우테쿠틀리(Xiuhtecuhtli)를 기리는 전형적인 제사 의식이었다.

아즈텍은 대중에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 사실 그들은 멕시코만에서 태평양 연안까지 뻗어 나가는 거대한 제국을 건설했고, 스페인 사람들의 도래로 그 역사가 끝났다. 그런데도 대개 강조되는 것은 그들의 의식이 지닌 잔혹함과 정복된 민족에 대한 억압이다. 과연 이러한 평가는 과장된 것일까?

어쨌든 어떤 형태로든 인신공양(人身供養)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었으며, 제국에 편입된 민족들 역시 일종의 '팍스 아즈테카(Pax Azteca)'가 주는 혜택을 누렸다. 다소 무책임해 들리지만 '일단 정복했으니 이제는 내버려두겠다. 다만 가끔은 누군가를 제물로 바칠 것이다'라는 규칙에 가까웠다. 그렇다면 아즈텍의 신들에게 바쳐진 제사의 몇 가지 모습을 살펴보자.

붙잡히면 곤란하다!

제물로 바쳐진 것은 대부분 전쟁 포로였다. 불행한 포로들은 피라미드 계단을 따라 정상의 신전으로 끌려 올라갔고, 그곳 제단 위에 눕혀졌다. 네 명의 사제가 제물을 붙잡고, 다른 한 명이 흑요석 칼로 가슴을 가른 뒤 심장을 꺼냈다. 심장은 꺼낸 뒤에도 최대 5분간 뛰었을 수 있다.

찢어낸 심장, 먹어치운 다리 — 아즈텍인들은 정말 가학적인 야만인이었을까?

아즈텍인들에게 제물의 피는 태양이 하늘을 가로질러 움직이는 데 필요한 양식이었다.

시신은 피라미드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제물의 시신 일부가 먹히기도 했으며, 그러한 잔치에 초대받는 것은 영광으로 여겨졌다. 추정에 따르면 중앙 멕시코 전역에서 매년 약 2만 명이 제물로 바쳐졌다고 한다.

정복자 중 한 명인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Bernal Díaz del Castillo)는 이렇게 기록했다.

부싯돌 칼을 한 번 휘둘러 불행한 인디오의 가슴을 가른 뒤, 그들은 서둘러 뛰고 있는 심장을 찢어 꺼내 피와 함께 제사를 지내는 우상에게 바쳤다. 팔과 허벅지와 머리를 잘랐고, 의례적 잔치에서 허벅지와 팔을 먹었다. 머리는 들보에 걸었고, 시신은 먹지 않고 짐승의 먹이로 주었다.

이러한 의식의 목적 역시 태양에게 양식을 공급하는 것이었다. 태양은 하늘을 움직이기 위해 인간의 피가 필요했으니, 이야컥면 아즈텍식 종말 대응책인 셈이다. 흥미로운 점은 제물로 바쳐질 예정이었던 포로들이 존중받았다는 사실이다.

아즈텍의 종교는 그들을 위해 태양 곁의 자리를 마련해 주었다(단 4년뿐이지만!). 그 후에는 나비나 벌새로 변한다고 믿었다. 즉, 사로잡혀 제물이 된 적의 운명은 전장에서 쓰러진 전사들의 운명과 다르지 않았다.

피리와 아내 넷을 받았지만, 결국 죽었다

규모는 작지만 상상력을 자극하는 또 다른 제사는 전쟁과 분열, 그리고 통치자의 수호신인 테스카틀리포카(Tezcatlipoca)를 기리는 의식이었다. 먼저 포로 가운데 육체적으로 흠이 없는 젊은이가 선발되었다. 후보자는 테스카틀리포카의 복장을 갖춰 입었고, 1년 동안 신처럼 대접받았다. 그는 여덟 명의 시종을 대동하고 도시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피리를 불었다.

제사 20일 전, 청년은 여신들을 상징하는 네 명의 아내를 받았고, 이들은 이후 그의 여정에 동행했다. 토스카틀(Toxcatl) 축제 날, 그는 자신이 정한 시각에 신전 아래에 도착했다.

그리고 스스로 정상으로 올라갔는데, 오르는 길목마다 피리를 부수며 올랐다. 정상에는 사제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그는 앞서 설명한 방식으로 제물이 되었다. 특별한 경의의 표시로 그의 시신은 계단 아래로 던져지지 않고 사제들이 직접 운반했다.

찢어낸 심장, 먹어치운 다리 — 아즈텍인들은 정말 가학적인 야만인이었을까?

1579년 디에고 두란(Diego Durán)의 저서 『인디언의 역사(Histoire des Indiens)』에 실린 삽화로, 피로 물든 의식 장면을 보여준다. 이 경우 제물은 세 명의 사제만 붙잡고 있고, 네 번째 사제가 심장을 찢어 꺼내고 있다.

옥수수를 위한 특별한 비료

시페 토텍(Xipe Totec)은 아즈텍의 식생과 여문 옥수수의 신으로, 메소아메리카 모든 민족의 주식이었던 옥수수를 관장했다. 당연하게도 이 신을 기리는 의식은 남다른 수준의 복잡성을 자랑했다.

먼저 전장에서 용맹을 떨친 전쟁 포로가 '테말라카틀(temalacatl)'이라 불리는 원형 돌에 묶였다. 그에게 주어진 무기는 치명적인 흑요석 날 대신 깃털이 달린 곤봉이었다.

상대는 완전무장한 아즈텍 전사들이었다. 만약 포로가 기적적으로 네 명을 연달아 쓰러뜨린다 해도, 다섯 번째 상대는 왼손잡이로 배정되어 가장 용감한 자조차 그를 이기기 어려웠다.

패배한 전사는 사제들에게 넘겨져 심장을 적출당하고 가죽이 벗겨졌다. 시신의 일부는 먹혔고, 뽑힌 남자들은 20일 동안 그 가죽을 걸치고 다녔다. 그들은 도시를 돌며 구걸을 했다가, 가난한 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주었다. 20일이 지나면 가죽은 땅에 묻혀 옥수수가 잘 자라게 해준다고 믿었다.

찢어낸 심장, 먹어치운 다리 — 아즈텍인들은 정말 가학적인 야만인이었을까?

인신공양은 아즈텍에게 필수적인 것이었다. 그것이 있어야만 세계를 완전한 파멸에서 구할 수 있었고, 일상적 삶을 책임지는 신들의 호의를 확보할 수 있었다.

선의였다는 게 함정

아즈텍의 의식은 야만적으로 보일 수 있다. 제물이 된 이들이 유쾌했을 리 없다. 그러나 기억해야 할 점은, 그들이 메소아메리카에서 인신공양을 행한 최초의 민족도 유일한 민족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지역의 모든 공동체는 규모의 차이는 있어도 이러한 관습을 즐겼다.
한 가지 세부 사항을 기억할 가치가 있다. 아즈텍인들은 세계를 멸망에서 구하거나 존재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인신공양을 행했다. 반면 존경받는(분명 그럴 만하지만, 다른 이유에서다!) 로마인들은 주로 대중의 오락을 위해 잔혹한 검투 경기를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