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9년 1월 15일,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이 영국에 선전포고를 한 순간부터 영국인들은 더 이상 안전하다고 느낄 수 없었습니다.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테러가 닥칠지 아무도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범한 모습으로 어디든 잠입할 수 있었던 테러리스트들의 존재 자체가 공포 그 자체였습니다.
1. 파괴 공작 'S 플랜'의 시작
1939년 1월 15일, 더블린과 잉글랜드 여러 도시의 거리 곳곳에는 국왕에게 모든 아일랜드 땅에서 군대를 철수시키라는 내용의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동시에 아일랜드 공화국군(IRA)은 영국에 선전포고를 선포했습니다.

코번트리 폭발 현장의 흔적 (사진: Simon Shaw, 퍼블릭 도메인)
이튿날인 1월 16일 아침, 런던에서 연이어 터진 두 차례의 폭발은 이른바 'S 플랜(Sabotage Plan)'이라 불리는 긴 테러 시리즈의 서막이었습니다. IRA와 나치 독일의 협력 관계를 다룬 책 『히틀러의 IRA』의 저자 라도스와프 골레츠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첫 번째 폭발로 도시 주요 발전소 바로 앞에 거대한 크레이터가 생겼고, 수백 장의 유리창이 창틀에서 날아갔다. 오전 6시 직후 도시의 다른 지역에서 두 번째 폭발이 일어나 주민들 사이에 공포가 번졌다. 사람들은 창밖으로 짙은 어둠 속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거리 위로 치솟는 검은 연기를 보며 전율했다.
그러나 IRA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같은 날 세 개의 다른 도시에서 추가 폭발이 이어졌습니다. 이 공격들은 대량 살상을 노린 것이 아니라, '공포' 그 자체를 목표로 한 것이었습니다.
2. 코번트리 폭탄 테러
1939년 여름이 저물며 유럽 정세가 점점 험악해지자, IRA는 버밍엄 동쪽의 공업 도시 코번트리를 겨냥했습니다. 8월 25일 이른 오후, IRA 조직원 한 명이 번화한 대로변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사라졌습니다. 자전거 바구니 안에는 2.3kg짜리 폭탄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S 플랜 폭격 작전의 핵심 인물 제임스 오도노반 (사진: 퍼블릭 도메인)
폭발은 오후 2시 32분에 일어났습니다. 이 사고로 60명이 부상을 입었고 5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희생자 중에는 21세의 젊은 여성 엘시 앤설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불행히도 폭발 지점에 가장 가까운 곳에 서 있었습니다. 폭발로 그녀의 몸은 심하게 훼손되어 신원 확인조차 불가능했고, 결국 약혼반지로 신원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녀의 장례식은 원래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던 바로 그 교회에서 거행되었습니다.
폭탄이 놓였던 상점의 정면은 지면에서 통째로 사라졌고, 거리는 유리 파편으로 뒤덮여 행인들이 다쳤다. 경찰은 아일랜드인들이 머무는 모든 가옥을 수색했다. 코번트리 테러 이후 IRA 조직원 두 명에게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그중 한 명은 이 폭탄 테러와 전혀 무관한 사람이었다!
3. M62 고속도로 버스 폭탄 테러
1974년 2월 4일, IRA는 휴가 중이고 가족과 함께 있더라도 영국군 병사들을 놓아주지 않겠다는 의사를 드러냈습니다. 당시 철도 파업이 진행 중이어서 맨체스터에서 잉글랜드 북부 캐터릭 기지로 향하는 병사들과 그 가족들이 버스에 올랐습니다. 수십 명이 탑승한 이 차량은 M62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자정 직후 폭발했습니다. 폭발의 위력이 너무 강해 희생자들의 유해가 반경 200미터가 넘게 흩어졌다고 전해집니다.

『킬링 포 아일랜드』의 저자 로헬리오 알론소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11명이 사망했으며 그중 8명은 군인이었습니다. 나머지 3명은 민간인으로, 병사 한 명의 아내와 두 아들이었습니다. 23세의 린다 호튼, 그리고 그녀의 아들 리(5세)와 로버트(2세)였습니다. 참극은 며칠 뒤 더 커졌습니다. 부상자 50여 명 중 한 명이 병원에서 숨을 거둔 것입니다.
이 공격에 영국 전체가 충격에 빠졌습니다. IRA와 연관된 정치인 한 명은 인터뷰에서 테러가 벌어진 이유가 IRA 정보기관의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해명했습니다. 그들의 정보에 따르면 버스에는 병사들만 탑승할 예정이었다는 것입니다. 영국 수사기관은 신속하게 용의자를 검거하고자 했고, 정신질환을 앓던 주디스 워드가 여러 폭탄 테러의 배후라고 자백하면서 용의자로 지목되었습니다. 그녀는 이후 진술을 번복했지만 결국 조작된 증거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IRA는 이 여성과의 어떤 연관성도 부인했습니다. 수년 뒤 항소법원은 그녀의 유죄 판결이 사법부의 중대한 실수였다고 밝히며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4. 월급날 맥주 한잔이 목숨을 앗아간 날
1974년 11월 21일은 버밍엄에게 암흑의 날이었습니다. IRA는 이날 터진 두 건의 폭탄 테러에 대해 공식적으로 책임을 인정한 적은 없지만, 최근 조직의 고위 멤버 한 명이 자신들이 배후였음을 인정했습니다. 크리스마스 전 마지막에서 두 번째 월급날이던 이날, 도심의 펍 두 곳에 폭발물이 설치되었습니다. 두 매장 모두 손님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학생들과 젊은 직장인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태번 인 더 타운(Tavern In The Town)'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지하에 위치한 이 인기 술집이 테러리스트들의 표적이 되었습니다.

버스 폭발로 숨진 호튼 가족의 묘비 (사진: Plucas58, CC BY-SA 4.0)
두 번째 표적은 '멀베리 부시(Mulberry Bush)'로, 역시 많은 인파가 찾던 인기 펍이었습니다. 저녁 8시 직후 누군가 버밍엄 우체국에 전화를 걸어 폭탄 설치 사실을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몇 분 뒤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에 따르면 멀베리 부시에서 10명, 태번 인 더 타운에서 11명이 사망해 총 21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부상자는 200명 가까이 되었습니다. 폭발 발생 몇 시간 만에 여섯 명의 아일랜드인이 체포되었는데, 이들은 훗날 '버밍엄의 여섯(Birmingham Six)'으로 알려지게 됩니다.
사실 세 번째 폭탄도 있었습니다. 폭발 현장 중 하나에서 약 3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발견된 이 폭탄은 밤 11시에 폭발할 예정이었지만 뇌관이 작동하지 않았습니다. 경찰은 이 폭발물을 발견해 확보했고, 다음 날 아침 통제 폭파했습니다.
5. 유로 96 맨체스터 폭탄 테러
1996년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를 위해 영국을 찾은 축구 팬들은 축구의 열정과 즐거움만을 기대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IRA가 선사한 실제 공포의 순간이었습니다. 1996년 6월 15일 토요일, 맨체스터 시내 경기장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러시아-독일전 전날, 도시가 거대한 폭발로 뒤흔들렸습니다.
오전 9시 20분경, IRA는 1,500kg의 폭발물을 실은 흰색 트럭을 도심으로 진입시키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에서 사용된 가장 큰 규모의 폭탄이었습니다. 오전 9시 40분경 한 지역 방송국에 폭발물 설치 경고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전화를 건 남자는 뚜렷한 아일랜드 억양을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폭발에서 거의 온전하게 살아남은 기념 우체통 (사진: Keith Williamson, CC BY-SA 2.0)
경찰은 위협이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경 폭발물이 실린 트럭이 주차되어 있던 코퍼레이션 스트리트 일대에는 무려 8만 명에 달하는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즉시 대피 명령이 내려졌습니다. 오전 10시 46분 폭발물 처리반이 작업에 착수했지만, 제시간에 폭발물을 무력화하는 데 실패했습니다. 오전 11시 17분, 마침내 폭발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이후 최대 규모의 이 폭발은 건물 외벽을 문자 그대로 지워버렸고, 폭탄이 남긴 크레이터는 수 미터에 달했습니다.
폭발의 위력은 너무 강해서 파편과 유리 조각이 약 400미터 떨어진 곳에 대기 중이던 경찰 통제선과 그 뒤의 시민들까지 강타했습니다. 200명이 넘는 사람이 부상을 입었지만, 대규모 경찰 작전 덕분에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훨씬 더 비극적인 결말로 치달을 뻔했습니다. 테러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위험에도 불구하고 평소처럼 물건을 사고 손님을 응대하려 했기 때문입니다. 몇 분 만에 첫 부상자들이 맨체스터 왕립병원으로 이송되었습니다. 이 폭발로 인한 피해액은 12억 파운드를 넘어섰습니다.
참고 자료
- Alonso R., Killing for Ireland, Routledge 2007.
- Coogan T., The IRA, Palgrave MacMillan 2002.
- Golec R., Hitler's IRA, Poznań Publishing House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