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행위는 혐오스러움의 정점에 이르렀습니다. 나치 악마들은 아우슈비츠에 '금광'을 만들었지만, 단 한 자루의 곡괭이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아우슈비츠 독일 절멸수용소의 철조망 안에서 사람들은 매일 인간으로서의 존엄은 물론, 가축 운송 열차에 실려 미지의 세계로 향하며 가져온 마지막 소지품까지 강탈당했습니다. 악명 높은 선별 플랫폼('램프')에 도착한 직후 진행되는 선별 과정에서 그들은 모든 것을 빼앗겼고, 특별히 편성된 코만도(강제 노동 부대)는 능숙한 손놀림으로 옷과 짐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귀중품과 서류를 꿰매 넣은 옷을 입고 도착해 머리를 밀리고, 수용소 번호를 팔에 새기고 줄무늬 수감자 복장을 입게 된 이들은 스스로를 '운이 좋았다'고 여길 수 있었습니다. 적어도 살아남았으니까요.
반면 '샤워실'로 향하게 된 이들은 따뜻한 물 대신 맹독성 치클론-B 가스에 휩싸여 처참한 고통 속에서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수난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경련하는 시신들이 화장터로 옮겨지거나, 태워질 참호로 끌려가기 전에 한 단계가 더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1940년 6월 14일, 최초의 대규모 수감자 수송열차가 아우슈비츠에 도착했습니다.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이 발간한 수감자들의 삶에 관한 자료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미 1940년 9월 23일, 히믈러는 강제수용소에서 사망한 수감자들의 이빨에서 금(차응골트, Zahngold)을 뽑아낼 것을 명령했다."
'황금' 생산량
아우슈비츠의 SS 요원들은 필사적으로 이 일에 매달렸습니다. 그중에는 수용소 약제사 빅토르 카페시우스(Viktor Capesius)도 있었습니다. 루마니아 출신 폭스도이체(독일계 외국인)였던 그는 어느 면에서 '운이 좋았습니다'. 그가 관리하던 약국 안에 수용소 수석 치과의사의 사무실이 있었고, 그곳을 통해 이 끔찍한 '폐기물'이 모두 통과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그 배경에는 욕심 많은 SS 장교가 있었습니다. 1943년, 그는 금니로 가득 찬 서류가방 하나를 훔쳐 달아난 것입니다. 이 사건 이후 나치 당국은 잠재적 수익을 훨씬 더 면밀히 관리하기 시작했고, 통계는 그들 입장에서 이 '사업'이 충분히 가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카페시우스의 전기 작가 패트리샤 포즈너(Patricia Posner)는 저서 『아우슈비츠의 약사, 평범한 범죄자의 이야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시신에서 뽑아낸 치과 금 스크랩은 도착한 수감자들에게서 거둔 금화, 시계, 담뱃갑, 보석류와 함께 미리 제련되었습니다. 아우슈비츠의 나치들은 하루 평균 29~34kg의 금을 얻었습니다. 이는 SS에 막대한 이익을 안겨주는 원천이었습니다. '아우슈비츠' 출신으로 표시된 금 화물은 이미 1943년부터 베를린의 라이히스방크(제국은행) 본부로 운송되기 시작했습니다."
독일인들이 이런 방식으로 정확히 얼마나 많은 금을 확보했는지 우리는 영원히 알 수 없습니다. 이 정보가 담긴 기록은 전후 미군이 압수했지만, 얼마 후 서독 아카이브로 이관된 문서들은 '정리 작업의 일환'으로 사라져 버렸습니다.
어쨌든 수용소 안에는 학살당한 시신에서 '광석'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회수할 수 있는 극도로 잔혹한 생산 라인이 구축되어 있었습니다. 포즈너의 책에서 인용된 수감자 야코프 가바이(Jakov Gabai)의 증언에 따르면, 처음에는 체코슬로바키아 출신의 실제 치과의사들이 이 흉악한 작업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금니를 뽑아 '독일(Germany)'이라고 표시된 큰 상자에 던져 넣었습니다.
전세가 기울고 소련군이 다가올 조짐이 수용소 위에 드리우자, 수용소장은 작업 강화를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수감자 코만도가 강제 동원되어 집게로 시신에서 금을 뜯어냈습니다. 빠르고 거칠게 작업해야 했기 때문에, 금은 턱뼈 파편이나 살점과 함께 상자에 담겼습니다.
아우슈비츠의 화장터. 살해된 시신들이 여기로 옮겨지기 전, 특별히 지정된 수감자들이 시신에 금이 1g이라도 남아 있지 않은지 확인해야 했습니다 (사진: Marcin Białek, CC BY-SA 3.0)
수감자들을 약탈하고… 제3제국까지
카페시우스는 자신이 통제하는 수감자들에게 이 무시무시한 '전리품'을 분류하게 했습니다. 약국 건물에는 한 번에 최대 100개의 인간 이빨로 가득 찬 서류가방이 보관되어 있었다고 합니다. 수감자들이 금을 제련하기 전에 살점이 썩기 시작하면서 방은 참을 수 없는 악취로 가득 찼습니다. 그럼에도 개의치 않은 수석 약제사는 맨손으로 이빨 사이를 뒤지며 큰 덩어리를 골라내고는, 그것으로 얼마나 벌어들일지 계산하는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금 제련을 맡긴 수감자들을 두고 카페시우스는 손에 든 금괴의 무게를 만끽하며 만족해했습니다. 수용소 치과의사들, 그의 동료들은 시신 약탈의 공범이었습니다. 그들은 피해자들뿐 아니라 제3제국마저 약탈했습니다. 금은 원래 라이히스방크로 보내야 했지만, 카페시우스와 그의 일당은 일부를 제 몫으로 챙겼습니다.
약사는 자신의 몫을 비엔나에 있는 여동생에게 보냈습니다. 전후 그는 수감자 살해에 대한 책임을 교묘히 모면하고 터무니없이 가벼운 형량만 살고 나서, 오스트리아에 숨겨둔 끔찍한 '보물'을 손에 넣었습니다. 덕분에 그는 자신의 약국과 드러그스토어를 열고 태연히 여생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출처
이 글은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국립박물관의 자료와 다음 문헌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Patricia Posner, 『Pharmacist from Auschwitz. The story of an ordinary criminal』, 야기엘론 대학교 출판사(Wydawnictwo Uniwersytetu Jagiellońskiego),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