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중세 여성의 도시 브뤼헤 — 600년 앞선 14세기 '페미니스트'들의 이야기

중세는 오직 남성만이 존재했던 시대로 여겨져 왔습니다. 여성들은 배경에 머물며 배제되고 억압받은 존재였죠. 그러나 놀랍게도 당시 유럽 최대 금융 중심지 중 하나를 흔든 것은 바로 여성들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브뤼헤는 '자본주의의 요람'이라 불릴 만큼 중세 유럽의 어느 곳보다 수백 년 앞선 사회였습니다. 오늘날과 흡사한 시장(은행, 환전소, 국제 무역)이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놀라울 정도로 발전된 성평등도 함께했습니다.

여성들은 재산을 독립적으로 상속받고, 사업을 운영하며, 막대한 자금을 다룰 수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런 권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남성들의 사업을 상당 부분 잠식하기까지 했습니다.

시장부터…

사회의 가장 아래층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브뤼헤의 시장에서는 여성이 압도적인 지배력을 행사했습니다. 『브뤼헤, 자본주의의 요람』의 저자 제임스 M. 머레이(James M. Murray)는 여성들이 도시 소매 식품 거래의 거의 완전한 독점권을 쥐고 있었다고 기록했습니다.

실제로 1304년에는 도시 주요 시장 중 하나(소위 '치즈 홀')의 60개 좌표 중 55개를 여성들이 임대했습니다. 마찬가지로 1305~1306년 사순절 좌표 93개 중 83개가 여성 소유였습니다.

중세 여성의 도시 브뤼헤 — 600년 앞선 14세기  페미니스트 들의 이야기

중세 여성과 시장… 브뤼헤에는 훨씬 더 많은 여성 상인들이 있었습니다!

9 대 1이라는 비율은 놀랍지만, 전 유럽의 장터마다 여성 상인들은 많았습니다. 다만 명성, 전문성, 큰돈이 걸린 일에서는 여성이 배제되곤 했죠. 물론 브뤼헤는 예외였습니다! 이 도시의 여성들은 거의 모든 종류의 물건을 거래했습니다.

1369년 외국 방문객을 위한 이중언어 회화집(네, 중세에도 이미 이런 책이 존재했습니다!)에는 재봉사, 방적공, 카딩 작업자, 양피지 판매상 등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른 기록들에는 대형 포도주 가게의 여성 주인이나 못·종이·향신료를 국제적으로 거래하는 숙녀의 이야기도 등장합니다.

수익성 좋은 직물 사업조차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유럽 전역에서 남성들이 여성을 밀어냈던 것과 달리, 브뤼헤에서는 남성 직인(mester) 옆에 여성 '마스트리흐'(mestrigghe)가 공존했습니다.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일이었죠. 구체적인 사례는 더욱 인상적입니다. 1366~1370년 진행된 대규모 섬유 계약에는 여성 222명이, 남성은 겨우 184명이 참여했습니다.

중세 여성의 도시 브뤼헤 — 600년 앞선 14세기  페미니스트 들의 이야기

브뤼헤의 여성들은 수공업뿐 아니라 금융 세계에서도 활발히 활동했습니다. 캔틴 메시스의 그림 「금전대여업자와 그의 아내」(1514).

…큰 사업까지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합니다. 여성들은 수공업과 소매업뿐 아니라 은행업에서도 지배적이었습니다. 흥미롭게도 불법 고리대금 업체를 가장 자주 운영한 것도 여성들이었습니다.

일부 도시 가정에서는 높은 교양과 리스크 감각이 필요한 이 분야를 집안의 여성 전원이 담당했습니다. 여성들은 전당포는 물론 환전소, 그리고 상인들에게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선술집까지 운영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이 명목상의 대표가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남편이 명목상으로 환전소나 사설 은행의 대표로 있지만, 실질적인 모든 업무는 아내가 처리하는 경우가 흔했습니다. 예컨대 환전상 빌럼 루벨(Willem Ruweel)의 아내 마르그리트 루벨(Margriete Ruweel)은 사업 전반에 대해 인상적인 통제력을 행사했습니다.

제임스 M. 머레이에 따르면, 환전소의 일상 업무 대부분은 그녀가 수행했습니다. 다른 은행가들과 화폐를 거래하고, 은행 간 송금 균형을 맞추기 위해 주기적으로 어음을 정산했습니다.

또 다른 금융인 라페서트(Rapesaert) 부인의 역할은 더 컸습니다. 남편이 백작의 명으로 몇 년간 헨트에서 일하게 되자, 그녀는 환전소 운영을 물려받았습니다. 자기 이름으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말입니다.

결코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브뤼헤의 여성들은 전반적으로 화폐와 금괴의 함량 분석, 장부 대조, 인사 관리, 중개 업무처럼 고도의 기술이 필요한 일들을 처리했습니다. 이들이 운영한 일부 기업은 유럽 전역에 영향력을 뻗쳤습니다. 1372년 에델러 드 루데보르데(Edele de Rudevorde)의 독특한 투자 펀드가 파산하자, 브뤼헤와 한자 상인단 사이에 심각한 국제적 위기가 벌어졌습니다.

…매춘업까지

중세 여성의 도시 브뤼헤 — 600년 앞선 14세기  페미니스트 들의 이야기

마지막으로 매춘이라는, 당대 여성에게 강요된 '직업'에 대해서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 분야에서도 브뤼헤는 절대적인 이변이었습니다. 수 세기 동안 매춘의 구조는 기본적으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성이 몸을 파지만, 통제권과 이익은 주로 남성에게 돌아가는 방식이었죠.

브뤼헤에서는 결코 그렇지 않았습니다. 14세기 초에는 '여성 시장'이 아직 비교적 다양해서, 창관과 기타 유흥업소의 약 절반이 남성 소유였습니다. 그러나 이후 여성들이 이 시장에서 남성들을 완전히 몰아냈습니다.

최전성기에 여성 주도 사업의 확장은 단 20년이면 충분했고, 결국 이 수익성 좋은 서비스 부문의 80%가 여성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많은 나라에서 여성들이 어떤 독립성도 박탈당하던 바로 그 시절, 한 도시에서는 여성이 어떤 사업이든—심지어 밀회의 집까지—운영할 수 있었습니다.

창관 경영자, 은행 사장, 금융계의 상어, 암시장 고리대금업자… 브뤼헤에서는 불가능한 것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당시 브뤼헤의 여성들이 600~700년 후 참정권론자들과 페미니스트들이 위해 싸운 목표의 상당 부분을 이미 이루어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출처

  • James M. Murray, 『Bruges: The Cradle of Capitalism』, 폴란드 과학출판사(PW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