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결과는 위암을 가리켰지만, 후대의 연구들은 세인트헬레나로 추방된 황제의 죽음에 다른 원인이 숨어 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나폴레옹은 정말 병으로 죽은 것일까요, 아니면 누군가 자연의 섭리를 앞당긴 것일까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인생에서 거의 모든 것을 손에 넣었지만, 행운은 그리 오래 그의 곁에 머물지 않았습니다. 1804년 프랑스 황제로 즉위한 그는 범죄율을 낮추고 경제 상황을 개선하며 실업률을 줄이고 아이들에게 교육 기회를 보장하는 등 국민들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8년 뒤, 러시아 원정의 참패 이후 반대 세력이 연합군을 결성해 파리로 진격했고, 나폴레옹은 1814년 퇴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후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습니다. 워털루 전투에서 결정적으로 패배한 그는 총살당하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스스로 영국에 항복했습니다. 그렇게 그는 훗날 위대한 지도자의 무덤이 될 섬으로 향하게 되는데, 남은 의문은 단 하나입니다. 과연 그는 병으로 죽은 것일까요, 아니면 정치적으로 성가신 존재를 없애기 위해 누군가 도움을 준 것일까요?
나폴레옹은 역사상 가장 매력적인 인물 중 하나이며, 그의 죽음을 두고서도 지금까지 뜨거운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치명적인 지루함
포로 신분이 된 나폴레옹은 심각한 지루함에 시달렸습니다. 그는 섬으로 1,500권의 책을 가져갔습니다. 하지만 스스로는 6만 권 가까이 가져왔어야 했다고 말하기도 했죠. 매일 운동을 했고(적어도 초반에는), 카드 게임을 즐기며 회고록을 구술하기도 했습니다. 술을 남용하지 않고 규칙적으로 몸을 씻었으며, 의사들을 멀리했습니다. 말을 타고 항구까지 가서 사람들과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상당한 자유를 누렸는데, 이것이 금세 그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섬에서 나폴레옹을 감시하는 일은 허드슨 로 경(Sir Hudson Lowe)의 몫이었습니다. 그는 보나파르트의 지지자들이 포로를 구출하기 위해 섬으로 원정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합니다. 이 계획을 이끌 사람은 다름 아닌 나폴레옹의 동생 조제프였습니다. 귀중한 포로가 탈출할까 두려워진 로는 나폴레옹이 외부와 접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기로 결정합니다.
나폴레옹은 이를 또 하나의 박해라고 여기며 감시자들을 속이기 시작했습니다. 하루 두 번 포위병이 찾아와 그의 존재를 확인할 때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하인들에게 자신과 같은 옷을 입히게 해 감시자들이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아볼 수 없도록 했습니다. 어쩌면 나폴레옹에게 총독의 두려움은 단순히 지루함을 달래기 좋은 명분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로는 나폴레옹이 항구에 갈 때마다 호위병을 대동하도록 명령하는데, 물론 이는 포로의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는 승마를 그만두었고, 이후에는 산책조차 중단했습니다. 그 결과 곧 체중 증가, 부종, 두통, 잇몸 출혈이 나타났습니다. 나폴레옹의 건강이 이토록 급격히 악화된 시점이라면, 제3자의 개입을 의심해볼 만도 합니다…
위 속의 면도날
나폴레옹이 처음으로 병환을 호소한 것은 1817년 9월 20일이었습니다. 그는 몸통에 느껴지는 극심한 통증을 마치 '면도날로 베는 듯하다'고 표현했습니다. 상태는 크게 악화되어 맥박은 불규칙해졌고 사지도 건강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상황이 아주 오랫동안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은 의사를 너무나 두려워한 나머지 1820년에야 비로소 의료진에게 진찰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치의 아치볼드 아넛(Archibald Arnott)은 왠지 그것이 단순한 가스 때문이라며, 약만 먹으면 증상이 분명히 사라질 것이라고 안심시켰습니다.
이듬해 봄, 황제는 구토와 섬망 증세를 보였습니다. 토해낸 내용물은 커피 찌꺼기 같은 형태였는데, 이는 위장관 출혈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환각 증상도 나타나, 첫 번째 아내 조제핀이 그의 앞에 나타나 곧 다시 함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1821년 5월 4일, 그는 51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폴레옹은 죽기 한참 전에 부검을 명령해 둔 상태였습니다. 시신 검안에는 영국 외과 의사 8명과 황제를 지지하는 프랑스인 10명이 입회했습니다. 부검 보고서에 따르면 유문 근처에서 다음과 같은 소견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 위 점막을 뚫고 들어간 궤양이 발견되었으며, 새끼손가락 굵기만 한 구멍을 만들고 있었다. 위벽의 안쪽 층은 거의 전부 암성 또는 섬유성 조직으로 덮여 있었고, 암은 바로 이 조직에서 발생했을 수 있다[…]"
즉, 나폴레옹이 고생하고 결국 사망한 원인이 바로 이것이라는 것이 당시 의학계의 결론이었습니다. 간이 위의 구멍에 달라붙어 내용물이 복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막아주면서 고통의 시간은 더욱 길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당시 의사들의 진단은 불완전했을지도 모릅니다…
세인트헬레나의 나폴레옹
머리카락에 남은 흔적
스텐 포르슈푸드(Sten Forshufvud) 박사는 나폴레옹의 열렬한 숭배자였습니다. 1960년대에 활동한 치과의사였던 그는 나폴레옹의 병증에 관한 당시의 모든 기록을 읽고 나서 무언가 이상하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증상 가운데 비소(砒素) 중독에서 나타날 수 있는 30가지 증상 중 상당수가 포함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연구 목적의 시신 발굴은 논의의 여지도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탐구심 강한 이 의사는 직접 세인트헬레나로 향해 보나파르트의 머리카락 샘플을 다수 확보했습니다. 비소 함량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위험 물질의 허용 기준치가 무려 100배나 초과된 것! 이어진 일련의 연구에서 과학자들은 조제핀과 나폴레옹의 아들의 머리카락도 함께 조사했는데, 모든 경우에서 비슷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요? 나폴레옹의 아내와 아들은 비소가 함유된 약물을 복용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당시 의약품에는 실제로 비소가 들어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황제 본인은 이런 종류의 '의료 서비스'를 받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청결을 사랑하기로 유명했던 그가 사용하던 당대 화장품 다수에는 독성 물질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머리카락에서 검출된 비소 농도가 과연 독살의 증거인지에 대한 질문은 아마 영원히 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