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우크라이나인은 사실 '독일인'이었을까? 무장친위대 갈리치아 사단의 숨겨진 비밀

무장친위대(Waffen-SS) 산하에는 거의 모든 유럽 민족의 대표자들로 구성된 수십 개의 동맹 부대가 창설되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우크라이나 사단 '갈리치아(Galizien)'의 창설은 늘 가장 큰 논란을 낳아 왔습니다. 나치 독일이 자신들이 멸시하던 슬라브인을 모집할 만큼 절박했던 걸까요? 아니면 애초에 우크라이나인을 슬라브인으로 여기지 않았던 걸까요?

유럽 곳곳에서 '게르만 혈통'을 찾아내다

전쟁이 진행되면서 나치 제국의 영토가 점차 넓어지자, 독일은 갈수록 심각한 인구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제국 본토의 인구는 7천만 명에 불과했고, 이는 유럽 전체를 완전히 통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였습니다. 다행히 나치 이념상 '아리아인'이라면 독일인이 아닌 게르만계 민족도 독일의 필요에 따라 활용할 수 있었습니다.

독일의 의사 과학적 기준에 따르면 노르웨이인, 스웨덴인, 덴마크인, 스위스인이 아리아인임을 입증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프랑스인을 게르만 가문에 포함시키는 데에도 큰 무리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고트롭 베르거(Gottlob Berger)가 이끄는 친위대(SS) 모병국에는 유럽 전역에서 게르만 혈통을 찾아내라는 임무가 부여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곳의 전문가들은 에스토니아인을 '게르만화된 민족'으로, 라트비아인을 '부분적으로 게르만적인 민족'으로 분류했습니다(반면 리투아니아인에게는 '폴란드화된 열등인종'이라는 낙인이 찍혔습니다). 보스니아인 역시 '페르시아에서 기원한 고트족 계열 민족'으로 규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결론 덕분에 라트비아, 에스토니아, 보스니아 출신 무장친위대 부대가 창설될 수 있었습니다. 친위대원들 눈에 이 부대들은 외국인 부대가 아니라 게르만 부대였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의 경우도 놀랄 만큼 비슷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은 사실  독일인 이었을까? 무장친위대 갈리치아 사단의 숨겨진 비밀

무장친위대 '갈리치아' 사단 참여를 독려하는 모집 포스터

'독일인'으로 분류된 우크라이나인

우크라이나 무장친위대 사단 창설의 주역은 오토 폰 웩터(Otto von Wächter)였습니다. 오스트리아 출신 나치 관료였던 그는 1942년 2월부터 총독부 직할령 갈리치아 구역의 총독을 맡았습니다. 애초에 이러한 구역이 신설되었다는 사실 자체가 나치들이 갈리치아와 그 주민들에 대해 품고 있던 인식을 잘 보여줍니다.

폴란드인들은 갈리치아를 18세기 말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 분할을 정당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인공적 산물로 여겼습니다. 그러나 나치들의 시선은 전혀 달랐습니다. 크리스토퍼 헤일(Christopher Hale)이 저서 『히틀러의 처형자들: 유럽의 더러운 비밀』에서 설명하듯, 친위대 인종 및 정착본부의 전문가들은 루테니아인(즉 우크라이나인) 인구의 약 25%가 상당량의 게르만 혈통을 지니고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바로 그 25%가 갈리치아에 살고 있다고 여겨졌습니다. 갈리치아는 오스트리아의 옛 왕관령으로, 나치들의 관점에서는 중세부터 '독일식' 국가 체제를 누려 온 지역이었습니다. 결국 갈리치아는 자신들을 우크라이나인이라고 잘못 알고 있는 주민들의 진짜 독일 정체성을 '깨워주기만 하면 되는' 땅으로 간주될 수 있었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은 사실  독일인 이었을까? 무장친위대 갈리치아 사단의 숨겨진 비밀

스타니스와프(Stanisławów)의 '아리아' 우크라이나인들의 모습

'갈리치아 사단'이지 '우크라이나 사단'이 아니었다

친위대 수장 하인리히 힘러는 이러한 구상을 적극 지지했고, 심지어 히틀러까지 설득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히틀러 역시 구상 자체에는 공감했습니다. 그도 오스트리아 출신이었고, 그런 그의 눈에 갈리치아는 잃어버린 한 속주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총독부 갈리치아 구역에서 모병을 시작할 수 있었지만, 하나의 엄격한 조건이 붙었습니다. 힘러와 히틀러가 승인한 것은 '우크라이나 사단'이 아니라 '갈리치아 사단'이었습니다. 그리고 흔한 오해와 달리 SS-갈리치엔은 실제로 그런 사단이었습니다. 힘러는 대화든 문서든 '우크라이나 사단', '우크라이나 민족' 같은 용어의 사용조차 금지했습니다.

1943년 초 창설 작업이 시작된 이 새 사단의 이름에는 우크라이나가 전혀 들어가지 않았고, 대원들은 갈리치아인으로 불렸으며, 사단의 상징조차 우크라이나 전통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습니다. 크리스토퍼 헤일에 따르면 총독 웩터는 사단이 우크라이나 국장인 트리주브(trident)가 아니라 갈리치아의 오래된 오스트리아 상징인 황금 사자를 사용하도록 결정했습니다.

우크라이나인은 사실  독일인 이었을까? 무장친위대 갈리치아 사단의 숨겨진 비밀

평범한 우크라이나 가족과 함께 있는 오토 폰 웩터. 여가 시간에는 우크라이나 민족 말살과 수천 명의 유대인 학살 방법을 궁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모른 채 협력한 우크라이나인들

놀랍게도 우크라이나인들은 제안된 '자기네' 사단이 나치 제국 내 우크라이나의 지위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크라이나 민족의 해체를 앞당기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습니다. 힘러는 제14 무장척탄병 사단 '갈리치아'의 임무가 우크라이나 민족에게 독일인이라는 개념을 익혀 주는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달간의 모집 기간 동안 무려 81,999명의 우크라이나인이 지원했습니다. 히틀러를 위해서, 그리고… 갈리치아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청년들이었습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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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크리스토퍼 헤일, 『히틀러의 처형자들: 유럽의 더러운 비밀』(Hitler's Executioners: Europe's Dirty Secret), 2012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