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인간 시체를 빻아 만든 가루: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에 영감을 준 17세기 스캔들

메리 셸리에게 '프랑켄슈타인 박사'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 영감은, 17세기 오늘날의 좀브코비체실롱스키에(Ząbkowice Śląskie)에서 벌어진 기괴한 사건에서 비롯되었을 수도 있다는 설이 있습니다. 당시 이 마을은 '프랑켄슈타인'이라 불렸고, 마녀와 역병 혐의를 뒤집어쓴 스캔들로 악명을 얻었습니다. 과연 실레지아의 매장 관리인들은 정말 인간의 심장을 먹고 죽은 여성의 태아를 적출했던 걸까요?

1606년, 작은 마을 프랑켄슈타인(직역하면 '프랑크족의 돌', 현재 폴란드 니저실레지아주 좀브코비체실롱스키에)은 흑사병에 강타당했습니다. 이 역병으로 마을 주민의 30%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사망자는 총 2,061명, 그중 4분의 1이 어린이였습니다. 극심한 역병 자체는 크게 놀라운 일이 아니었지만, 이번 역병은 누군가 고의로 퍼뜨린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용의선상에 오른 것은 바로 마을의 매장 관리인들이었습니다.

인간 시체를 빻아 만든 가루: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 영감을 준 17세기 스캔들

매장 관리인 스캔들을 판화로 담은 신문 '노이에 차이퉁(Newe Zeyttung)'

매장 관리인, '부정한 직업'

처형 집행인처럼 매장 관리인 역시 중세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결코 존경받지 못하는 직업이었습니다. 이런 특수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천하고 부정한 존재로 취급받았죠. 그래서 사람들은 역병을 지역 매장 관리인들과 쉽게 연결 지었습니다. 마을 연대기에는 시장 마르친 코블리츠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606년 9월 10일, 좀브코비체의 매장 관리인 두 명이 체포되었다. 28년간 매장 관리인으로 일한 바츠와 포르스터와, 스트시고움 출신 조수 예지 프로이디거가 독을 만들고 섞은 혐의로 잡힌 것이다. 두 사람 모두 하인 포르스터에 의해 석방되었다.

9월 14일에는 전과자이자 세 번째 매장 관리인인 카스페어 슐라이니거라는 이름의 바이버가 체포되었고, 9월 16일에는 87세 거지 카스페어 셰츠가 체포되었다. 두 사람 모두 독을 퍼뜨리고 역병을 유포한 혐의였다.

10월 4일에는 고인이 된 시 공무원 슈베르트의 딸 주잔나 마스, 그녀의 어머니이자 현재 매장 관리인 슐라이니거의 아내인 막달레나 우르줄라, 그리고 거지 셰츠의 아내 마우고자타가 감옥으로 끌려갔다.

피고인들의 집이 수색되었습니다. 그중 한 명의 집에서 인간 시체로 만든 것으로 추정되는 분말 약제 한 항아리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남성 여섯 명과 여성 두 명 등 여덟 명이 역병을 일으킨 혐의로 기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고문과 자백

당시 재판에서는 잔혹한 고문이 흔히 동원되는 관행이었습니다. 그 결과 피고인들은 모두 죄를 자백했습니다. 그들은 병든 시체에서 독가루를 만드는 방법을 낱낱이 밝혔다고 합니다. 만든 가루를 집 문지방에 뿌리고, 문손잡이와 노크 손잡이에 발랐다는 것이죠. 게다가 사람이 죽을 때마다 그 시신이 곧 독을 만드는 재료가 되었다고 합니다.

용의자들은 또한 교회와 가옥을 털고 시신을 더럽혔다는 혐의도 인정했습니다. 이 사건의 경위는 마을 연대기에 기록되었고, 아우크스부르크 신문 '노이에 차이퉁'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조사 과정에서 고문을 받은 자들은 독이 든 가루를 만들었으며, 그 독가루를 여러 차례 사람들의 집에 뿌리고 문지방과 노크 손잡이, 문손잡이에 발라 많은 사람이 독에 중독되어 죽었다고 진술했다.

게다가 이들은 집에서 많은 돈을 훔치고, 시신에서 외투를 벗겨 가져갔다. 임산부의 배를 가르고 태아를 꺼내냈으며, 어린아이의 심장을 날것으로 먹었다. 교회에서는 제대보를 훔쳤고, 설교단에서는 태엽시계 두 개를 훔쳤다.

신문은 이어 이렇게 적었습니다.

(...) 이들은 그것을 가루로 빻아 저주와 주술에 사용했다. 스트시고움에서 온 새 매장 관리인은 교회에서 젊은 처녀의 시신을 더럽혔다. 나머지 사람들도 갖가지 상상하기 어렵고 끔찍한 짓을 저질렀다(...)

매장 관리인들이 자백한 행위 중 실제로 저질렀는지는 알기 어렵습니다. 고문은 그만큼 강력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피고인들은 다른 공범들을 잇달아 지목했고, 결국 열일곱 명이 재판에 넘어졌습니다.

참혹한 사형 선고

재판에 회부된 이들은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습니다. 더 참혹한 것은, 사형 방식이 절단형을 거친 뒤 화형으로 이어진다는 점이었습니다. 판결문에 따르면 처녀의 시신을 더럽혔다고 지목된 매장 관리인은 달군 집게로 거세당했습니다.

당시 형벌의 생생한 묘사는 앞서 언급한 신문 '노이에 차이퉁'에 게재되었습니다.

먼저 이들은 모두 도시를 끌려 다니며 만천하에 공개되었다. 이후 달군 집게로 살점이 찢기고 엄지손가락이 뽑혔다. 늙은 매장 관리인과 87세 조수 한 명은 오른손이 잘렸다. 그다음 두 사람은 말뚝에 함께 쇠사슬로 묶였고, 멀리서 불을 붙여 구워 죽였다. 스트시고움 출신의 새 매장 관리인은 달군 집게로 남근이 뽑혔다. 그 후 그는 다른 이들과 함께 말뚝에 묶여 통째로 구워졌다. 나머지 사람들은 화형대에 올려져 불태워졌다.

인간 시체를 빻아 만든 가루: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에 영감을 준 17세기 스캔들

화형은 당시 꽤 흔한 형벌이었다

피고인들이 자백한 내용 대부분은 사실과 거리가 멀었겠지만, 이 이야기 자체에는 진실의 알맹이가 있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돌이켜보면, 무엇이 실제로 일어난 일이고 무엇이 잔혹한 고문에 의해 억지로 끌어낸 말인지 가리기란 몹시 어렵습니다.

한편 이 기괴한 사건과 젊은 메리 셸리의 명작 탄생을 잇는 설도 있습니다.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이름과, 묘지에서 훔쳐 온 시신 조각으로 실험한다는 발상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이죠. 유명 호러 소설의 아이디어가 탄생한 또 다른 배경에 대해서는 이미 저희 사이트에서 다룬 바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