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스탈린의 '사랑하는 아이들', 시베리아 죽음의 행진을 견디다

3일간의 휴식이 선포되었다. 그 시기 우리는 호송대 교체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금까지 우리를 이끌어 온 소련인들은 적절한 장비를 갖추지 못했고, 더 이상 숲속 깊은 곳까지 우리를 인도할 수 없었다. 이 지역의 겨울은 거의 10개월에 달했고 눈은 좀처럼 녹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혹독한 환경에 특별히 잘 견디는 경비병들이 필요했다. 그들은 극한의 추위 속에서 사는 '몽골 야만인들' 가운데서 선발되었는데, 이들은 잔혹함과 폭력성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들이었다.

죽음의 행진

우리는 거대하고 텅 빈 방에서 서로 몸을 붙여 온기를 나누며 잤다. 사흘 밤의 비교적 편안한 휴식과 하루 두 끼니의 식사는 잃었던 체력을 어느 정도 회복시켜 주었다. 그러나 넷째 날, 몽골인들이 도착해 행군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자 모든 것이 아수라장이 되었다. 우리는 수프를 다 마시기도 전에 그들이 방으로 뛰어들어 대열을 갖추라고 명령했다. 우리는 50명씩 쇠사슬로 묶여 6개의 행진 열을 이루었다. 소련인들과 달리 몽골인들은 이토록 많은 포로를 지휘한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겼다.

도심을 지날 때 그들은 구경꾼들의 시선에 만족하며 우리를 걷어차고 때렸다. 썰매와 말을 사용할 수 있었음에도 그들은 굳이 우리와 함께 걸었다. 모피 옷을 입은 그들은 얇은 코트와 낡은 부츠를 신은 수인들 곁에서 위풍당당해 보였다. 하지만 그 모습은 설득력이 없었고, 실제 여정에서도 그렇다는 것이 드러났다.

스탈린의  사랑하는 아이들 , 시베리아 죽음의 행진을 견디다

많은 추방자들이 이 살인적인 행진에서 생존하지 못했다.

첫날은 눈이 단단하게 다져져 걷기 좋았기 때문에 비교적 빠르게 진행되었다. 게다가 우리 모두 짧은 휴식으로 기운을 차렸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약 32km를 이동해 첫 번째 휴식지인 막사에 도착했다. 그러나 식사는 이전의 '기준'으로 되돌아갔다. 청어 한 조각, 빵, 하루 한 번의 뜨거운 물. 크라스노비셰르스크에서 먹었던 김이 오르는 수프 이후라는 점을 생각하면 역겨운 처우였다. 우리는 밤에는 쇠사슬을 풀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야 더 편하게 잘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요청에 대한 답은 문제를 일으킨다는 이유로 퍼부은 고통스러운 발길질과 침묵하라는 명령뿐이었다.

아침이 되자 몽골인들이 방에 뛰어들어 우리가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다리를 잡아끌며 극한의 추위 속으로 몰아세웠다. 상황은 상당히 악화되었다. 다져진 길을 벗어나 숲으로 들어서자 눈은 점점 깊어졌다. 균형을 잡기 어려웠고, 누군가 넘어져 눈에 파묻힐 때마다 행렬은 멈추곤 했다. 화가 난 경비병들은 욕설을 퍼부으며 불쌍한 포로들을 일으켜 세우려 했다. 갑자기 우크라이나인 중 한 명이 쓰러졌다. 동료들이 그를 일으켜 세웠고, 한동안 그들에게 기대어 버텼다. 하지만 그들 역시 힘이 많지 않아 더 이상 그를 부축할 여유가 없었다. 결국 그의 다리가 꺾이며 땅에 쓰러졌고, 그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늑대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

분노한 호송대원들은 그를 오랫동안 다루었지만 포로는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다. 한 명이 쇠사슬을 풀고 두 명이 그를 들어 올렸다. 우리는 돌아보며 그들이 반쯤 죽은 남자를 썰매 쪽으로 끌고 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우리는 그가 거기서 계속 여정을 이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곧 경비병들은 웃고 떠들며 돌아왔지만, 그 포로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둘째 날에는 여섯 명이 이런 식으로 사라졌다. 나는 그들의 최후가 궁금해 마침내 용기를 내어 몽골인 한 명에게 다른 이들의 시신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었다.

"우리에겐 그들이 여기 있었다는 걸 증명할 옷만 있으면 된다." 그가 답했다. "그리고 늑대에게 먹이를 줘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늑대들이 호송대를 공격해서 너희가 모두 죽을 것이다. 해가 지기 전에 막사에 도착해야 한다. 잘 보면 늑대 발자국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항상 가까이 있다. 밤낮으로 우리를 따라다닌다. 먹을 것이 충분히 생길 거란 걸 알고 있는 것이다. 내가 너희라면 질문하지 않겠다. 그건 힘만 낭비하는 일이다. 너도 저들처럼 될 것이다."

스탈린의  사랑하는 아이들 , 시베리아 죽음의 행진을 견디다

폴란드인 추방자들

사흘 동안 우리는 140km 이상을 이동했는데, 거의 절반 정도의 거리였지만 약 30명의 동료를 잃었다. 그들은 죽은 뒤 옷을 벗겨진 채 깊은 눈 속에 버려졌고, 우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다가온 늑대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밤을 견뎌내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동상에도 시달렸다. 많은 이들이 죽음의 문턱에 있었다. 운 좋게도 얼어붙은 호숫가의 작은 정착지에 도착하지 않았더라면 희생자는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모두를 놀라게 한 것은 우리의 쇠사슬이 풀렸다는 사실이었다. 호송대원들은 사망자 수에 겁을 먹은 것이다. 그들은 포로 전원을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즉시 일을 시작할 수 있는 상태로 데려가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런데 이미 30명이 목숨을 잃었고, 남은 270명은 일을 할 수 없는 상태로 완전히 지쳐 있었다.

식사도 다시 바뀌었다. 소화하기 쉬운 죽과 뜨거운 물이 제공되었고, 이전 막사에서 받던 것에 비하면 식량 배급은 훌륭한 편이었다. 식사 후 우리는 바닥에 누워 값진 잠을 청했다. 나는 손과 발이 붓고 거의 감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혈액 순환을 되살리려고 주물렀다. 몸을 둥글게 말고 망토로 발을 감싸 따뜻한 고치를 만들려 했다. 찌르는 듯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고 영혼까지 얼어붙게 해 얕은 잠에 빠졌다. 어쩌면 그것이 나를 구했는지도 모른다. 깊이 잠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스탈린의  사랑하는 아이들 , 시베리아 죽음의 행진을 견디다

타이가에 캠프를 건설하는 초기 단계, 막사가 세워지기 전까지 포로들은 나뭇가지로 만든 오두막에서 잤다.
제2군단 출판사에서 간행된 미상의 노동수용소 그림.

갑자기 평소보다 더 사나워진 몽골인들이 발길질과 주먹으로 우리를 깨우기 시작했다. 우리는 두꺼운 모피 위에 메달을 잔뜩 단 공식 손님의 관객이 될 예정이었다.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는 소련 공산주의의 위대한 업적을 논하며, 모든 노동자의 아버지로서 스탈린의 미덕을 칭찬하는 듯했다. 그는 우리가 그의 사랑하는 조국 전역의 교통망 개선에 기여할 수 있도록 허락된 특권적인 소수라고 주장했다. 경멸 어린 시선으로 우리를 내려다보며 등 뒤로 손을 모은 채, 그는 우리 앞을 앞뒤로 행진했다. 그때, 아마 굴욕을 더 이상 참지 못한 러시아인 포로 하나가 소리를 질렀다.

스탈린의 '자식들'?

"스탈린이 그렇게 위대하다면, 여기 와서 자신의 놀라운 성공을 직접 확인하게 하십시오. 우리는 300명입니다. 그의 이른바 '자식들'이죠. 배고프고, 야위고, 추위에 얼어붙어 팔다리가 붓고, 많은 이들이 죽음의 문턱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얼어붙은 황무지를 통해 몰려가고, 임시 막사의 차가운 바닥에서 자야 하고, 퍼렇게 익힌 죽을 먹습니다. 이것이 스탈린의 사랑받는 자식들입니까? 지금까지 우리 동료 30명이 죽었습니다. 스탈린은 이 손실을 느꼈습니까? 그의 30명의 자식들이 옷을 벗겨진 채 숲에 버려져 늑대의 밥이 되었다는 걸 그는 알고 있습니까? 물론 아닙니다! 당신들에게 인간의 죽음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들에게 우리는 그저 동물, 공산주의 발전과 당신들의 승진에 이용될 일용할 짐승일 뿐입니다."

네 명의 경비병이 방에 나타났다. 잔인한 몸싸움 끝에 그들은 여전히 소련 프롤레타리아트와 스탈린 통치를 비난하던 포로를 끌어냈다. 그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지만, 동료들에게는 용기를 불어넣었다. 동료들은 애써 그의 용기에 박수를 보냈다. 그들에게 그는 목숨을 바친 영웅이 되었다.

밖에서는 한동안 폭설이 내리고 있었다. 눈보라는 하루 종일 이어졌고, 눈이 1미터를 훌쩍 넘었다는 소리가 들렸다. 몽골인 경비병들과 소련 관료들의 회의가 열렸는데, 북방에서는 새 말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말의 목숨을 걸고 위험을 감수하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결론이 나왔다. 늘 그렇듯 몽골인들은 초조해하며 빨리 길을 떠나고 싶어 했다. 호송대에 하루 더 휴식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이틀이 지나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곳에 있었다. 우리는 더 많은 눈을 기도했다. 눈이 깊으면 깊을수록 좋았다. 하루의 지연이 우리에게는 추가 휴식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이 글은 미하우 크루파(Michał Krupa)의 책 『시베리아의 얕은 무덤』에서 발췌한 것으로, 레비스(Rebis) 출판사에서 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