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가 정치 선언문에서 여러 차례 언급했던 '새로운 세계 질서'의 건설은 많은 이들에게 당연한 공포를 불러일으켰습니다. 특히 제3제국의 왜곡된 사상을 추종하던 이들이 스스로를 '아리아 초인', 즉 지배 인종이라 칭하며 테러 통치를 자행했다는 점에서 더욱 그랬습니다. 그런데 독일 사회의 병든 이데올로기 속에는 이 세상 것이 아닌, 어두운 전설과 노르드 신비주의에서 비롯된 황홀한 요소들도 숨어 있었습니다. 지금부터 오컬트 단체 툴레 협회의 역사 뒤에 숨겨진 이야기를 파헤쳐 보겠습니다.
1933년 1월 30일부터 아돌프 히틀러가 총통 겸 수상으로 이끈 나치 독일은, 시민들의 일상 구석구석을 '관리'하는 전체주의 정당이 모든 권력을 쥔 거의 완벽하게 작동하는 제국이었습니다. 현대인의 상상 속에서도 나치 독일은 하나의 국가 거인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미신과 점술, 그리고 마법과 초자연 현상에 대한 믿음이 제3제국의 위대함, 혹은 그 어두운 힘의 뿌리였을까요?
악의 탄생, 상징의 마법 – 하켄크로이츠와 광신도들의 공동체
먼저 상징 자체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켄크로이츠(스와스티카)는 원래 세계 대부분의 종교, 특히 아시아 종교에서 행복과 번영을 의미하는 신성한 상징으로, 힌두교·불교·자이나교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그러나 두 차례의 세계대전 참화에 대한 기억이 생생한 서구 문화권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다릅니다. 오늘날 하켄크로이츠는 살인적인 이데올로기를 내세우는 신(新)파시즘 조직과 연관된 상징으로 인식됩니다.

안톤 드렉슬러
히틀러에게 하켄크로이츠를 신흥 세력의 상징으로 사용하도록 설득한 인물은 독일노동자당(DAP)의 공동 창립자 안톤 드렉슬러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틀러는 나치가 공동의 가치와 철학적 사상뿐 아니라 시각적 기반으로도 하나로 묶이기를 원했습니다. 권력을 상징하는 기호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그리고 동시에 기묘한 매혹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러한 발상의 근원은 독특한 신비주의자와 광신도들의 공동체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기만적인 남작이 이끈 결사 – 툴레, 세계의 경계에서
20세기 초부터 이미 신비주의 성향의 독일 민족주의자들은 소위 툴레 협회에 모여 아리아 지배 인종의 상징으로 하켄크로이츠를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북유럽 및 게르민 민족의 조상들은 일종의 수호자처럼 기능하며, 남작 루돌프 폰 제보텐도르프가 이끄는 이 기묘한 공동체의 후견인 역할을 했습니다.
폰 제보텐도르프는 특히 화려한 경력의 소유자입니다. 그의 본명은 아담 알프레트 루돌프 글라우어였고, 더욱 흥미로운 점은 그가 아무런 근거 없이 남작 작위를 칭했다는 사실입니다. 처음에 베를린에서 공학을 공부했지만, 아버지의 요절로 공과대학 교육을 마칠 자금을 잃고 말았습니다. 그는 다른 방식으로 인생 경험을 쌓았습니다. 화물선의 부선원으로 일했고, 이후 전기기계공으로 전직해 미국과 지중해 연안 국가들을 누비며 항해했습니다. 특히 오늘날 터키에 해당하는 지역에서 보낸 2년의 시간이 그의 인생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했습니다.

루돌프 폰 제보텐도르프
구 오스만 제국의 땅에서 글라우어는 동양의 철학과 영성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슬람의 다양한 신비주의 흐름을 통칭하는 수피즘(Sufism), 그리고 유대교의 신비주의 학파인 카발라(Kabbalah)가 바로 그것입니다.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이미 '가짜 남작'이 된 상태로, 1912년 베를린에서 설립된 게르만결사단(Germanenorden)에 가입합니다. 독일 엘리트 추종자들을 위한 사상은 아리오소피(Ariosophy), 즉 아리아 인종이 다른 민족·국가 집단보다 우월하다고 선언하는 인종주의 교리였습니다.
남작 폰 제보텐도르프는 빠르게 이 음모 조직의 핵심 멤버로 부상하여 바이에른 지역의 지도자 중 한 명이 되었습니다. 1918년, 글라우어는 자신이 맡은 조직 부문을 '툴레 협회'라고 명명하기로 결정합니다. 수수께끼 같은 이 이름은 고대 그리스인들에게 가장 북쪽 끝의 땅, 당시 세계의 경계로 여겨졌던 신화 속 섬을 가리킵니다. 고대에는 이 섬이 오늘날의 아이슬란드, 셰틀랜드 제도 혹은 노르웨이 해안과 동일시되곤 했습니다.
조직의 대표들은 최초의 게르만인들의 역사를 알고자 했으며, 그들에게 툴레 섬은 조상들의 고향일 가능성이 있는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폰 제보텐도르프는 운동의 철학적 기반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는 조직 운영과 재정 지원, 그리고 무장 세력까지 직접 손보며 '툴레 전투단(Kampfbund Thule)'이라는 민병대를 창설했습니다. 남작은 추종자들을 이끌면서 독일노동자당(DAP) 창당에도 기여했는데, DAP의 지도자 중 한 명인 카를 헤러가 툴레 협회 회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은 1919년 9월, 어떤 아돌프 히틀러가 이 당에 입당합니다. 그는 훗날 당의 이름을 우리가 잘 아는 약칭 NSDAP, 즉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으로 변경하게 됩니다.
오컬트 정치와 중세 성벽에 새겨진 비밀
폰 제보텐도르프가 회고록에서 밝힌 대로, 히틀러는 툴레 협회에 담긴 일부 조직 구조와 공동체 비전을 실제로 활용했을지도 모릅니다. 총통의 최측근 인물들이 오컬트 종파와 연결된 과거를 지니고 있었다는 사실만 봐도 충분합니다. 그중에는 루돌프 헤스,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한스 프랑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인리히 힘러 역시 툴레 오컬트 협회의 회원이었습니다. 그는 1932년 1월 뮌헨에 위치한 당 중앙본부의 보안 책임자로 임명된 뒤, 제3제국의 비밀을 수호하고 관리하는 임무를 진지하게 받아들였습니다. 베벨스부르크(Wewelsburg)는 일종의 거점, 아니 활동을 위한 요새가 될 예정이었던 장소였습니다.

툴레 협회 회원이었던 하인리히 힘러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파더보른 근처에 자리한 중세 성입니다. 제3제국 시기 베벨스부르크는 주로 나치 신비주의의 중심지로, 무엇보다 SS의 중심지로 알려졌습니다. 힘러는 자신의 군사주의 조직이 지닌 공동체적 성격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근처 니더하겐-베벨스부르크 강제수용소에 수감된 수용자들의 강제 노동으로 개발된 이 성은 세례식부터 결혼식, 장례식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의식의 무대가 되었습니다.
역사학자들이 중세 성의 방들에서 오컬트 의식이 실제로 행해졌다는 구체적 증거를 찾지는 못하고 있지만, 이 장소가 지닌 의미는 분명 독특합니다. 요새는 힘러의 개인 보물창고 역할을 했으며, 성에서 가장 중요한 공간은 최고위급 SS 장교들의 회합 장소였던 석실이었습니다. 게다가 핵심 방들의 이름은 기사, 족장, 통치자 등 게르만 영웅들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역사 연구자, 아니면 악마적인 프리메이슨
나치 독일의 주요 지도자 중 한 명이자 그 시대 최악의 전범인 하인리히 힘러는, 어쩌면 예술과 학문의 애호가로 통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주도 아래, 농학자이자 동물학자로서 제3제국 식량농업장관을 지낸 리하르트 발터 다레, 그리고 네덜란드 출신 유사과학자 헤르만 비르트와 함께 아넨에르베(Ahnenerbe) 조직이 창설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이름 아래에는 강제수용소 수용자들을 대상으로 잔혹한 의학 실험을 수행한 준과학 협회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아넨에르베는 제3제국이 점령한 국가들에서 과학·문화적 성과를 무력으로 강탈하는 계획까지 세웠습니다. 처음에 이 협회는 고고학, 인류학, 민족학 등, 다시 말해 게르만 민족의 역사적 유산을 연구하는 일종의 연구 센터로 발전했습니다.

아넨에르베의 문장
우리는 아넨에르베 회원들이 점령지 폴란드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과학 컬렉션, 고고학 유물, 귀중한 예술품을 연이어 약탈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 단체는 공식적으로 고대 게르만 민족의 유산을 연구하는 연구 조직으로 기능했으며, 그 창립 방식은 실제로 프리메이슨 종파처럼 운영되었던 툴레 협회와 놀랄 만큼 흡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비밀 조직의 영향력은 역사적 유산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과연 오컬트 신봉자들은 제3제국의 정치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 답은 다음 이야기에서 확인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