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 속 아틀란티스는 저 멀리 있지 않고, 오히려 고대 세계의 한가운데 있었을까? 지중해에 떠 있는 산토리니 섬의 이야기다.
고대 그리스의 황금기보다 약 1,000년 앞서, 산토리니에서는 미노아 문명이 눈부시게 꽃피웠다. 오늘날 호텔과 여행사들은 "어쩌면 아틀란티스가 바로 이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문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물론 미노아 세계가 자연의 힘 앞에서 갑작스럽고 격렬하게 무너졌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전설 속 아틀란티스 문명도 그렇다고 전해진다.
고대 문명의 비밀을 쫓아서
오늘날 수천 년 전의 문화를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역사학과 고고학의 지식·방법론에 첨단 기술과 과학적 방법을 점점 더 많이 결합하고 있다. 그 덕분에 자연과 조화롭게 살면서도 자연의 잠재력을 100% 활용했던 고대 문명의 놀라운 사례들을 확인할 수 있다.
대표적인 예가 인더스 계곡의 모헨조다로 문명이다. 5,000여 년 전 사람들은 이곳에 평탄한 거리, 가정용 상수도, 하수 시설까지 갖춘 잘 설계된 도시를 건설했다. 정교한 공학 장치를 만들었고, 대형 저수지 시스템 덕분에 일 년 내내 깨끗한 물을 사용할 수 있었다. 관개 운하는 주변의 정원, 과수원, 밭을 적시며 풍성한 수확을 안겨주었다. 이들은 자급자족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반대편 극단에는 고대의 '독살자들'이 있다. 로마인들은 납을 사랑했다. 화장품, 식기, 상수도 제작에 납을 매일같이 사용했다. 이 독성에 대한 집착은 환경에 심각한 영향을 미쳤다. 2015년 영국·미국·프랑스 과학자들이 로마에서 30km 떨어진 포르투스의 트라야누스만 바닥 퇴적물을 조사한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제국 수도의 전성기 물은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었고, 납 농도는 주변 샘물보다 무려 100배나 높았다.
납 남용의 파괴적 영향은 훨씬 더 광범위했다. 북극의 깊은 빙하 시료를 분석한 과학자들은 기원전 1100년부터 서기 800년까지 해당되는 시료 속 납 함량을 측정했고, 로마 제국의 전성기에 납 수치가 급격히 치솟은 사실을 확인했다. 기후가 고대 문명의 역사에 미친 영향을 다룬 다큐멘터리 <고대 문명의 비밀>이 폴란드 Polsat Viasat History 채널을 통해 방영되기도 했다.
신들의 진노
기후 변화가 문명에 끼친 영향에는 물론 역사의 흐름 자체를 뒤바꿀 수 있는 강력한 재앙들도 포함된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의 분출은 폼페이를 파괴했다. 지구 깊은 곳에서 솟아난 분출이 남긴 파괴의 가장 잘 알려진 사례이지만, 가장 극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그보다 1,500여 년 전, 또 하나의 대재앙이 고대 미노아 문명을 소멸시키고 지중해 전역에 흔적을 남겼다.
미노아인들은 크레타에 크노소스와 파이스토스 같은 왕도를 건설했고, 그리스 본토와 이집트 등 여러 나라와 교역했으며 풍부한 예술을 남겼다. 두 종류의 문자를 사용하기도 했다. 미노아 문명은 유럽 문화의 정전에 자리 잡은 신화들과도 깊이 연결된다. 신화 속 미노타우로스를 위해 미궁(라비린토스) 건설을 명령한 미노스 왕이 다스린 곳이 바로 이곳이며, 다이달로스가 일했고 이카로스가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올랐다는 전승도 여기서 비롯됐다. 미노아 문명은 여러 차례 외침을 받았지만, 적의 침입이 아니라 자연의 파괴력으로 인해 소멸했다.
티라 섬(현재는 여러 섬으로 남아 있으며 가장 큰 섬이 산토리니다)은 강력한 지진에 이어 해저 화산 분출이라는 이중의 타격을 입었다. 기원전 16세기 후반, 이 문명은 카드로 쌓은 집처럼 단숨에 지상에서 지워졌다. 미노아인들에게 더 적절히 표현하자면, 바다의 지배자 포세이돈의 재채기였다.
미노아 문명의 파괴
티라 섬은 먼저 강력한 지진에 강타당한 뒤, 해저에서 일어난 화산 분출로 마지막 타격을 받았다. 분출은 문자 그대로 섬을 폭발시켰다. 가장 큰 중앙부가 바다로 무너져 내려 침수된 칼데라, 즉 화산체의 흔적만 남았다. 산토리니 엽서마다 담긴 하얀 집이 늘어선 그림 같은 절벽이 바로 이 칼데라의 벽이다. 그러나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과학자들은 현재 해수면 아래 약 300~400m 지점에서 분출과 붕괴가 일어난 이 화산이 높이 최대 35m에 달하는 거대한 쓰나미를 일으켰다고 본다.
로드아일랜드 대학의 스티븐 캐리 박사에 따르면, 분화구에서 너무 많은 화산재가 뿜어져 나와 그것이 떨어지면서 지중해 전역의 햇빛을 가렸다. 기후는 약 10년간 변했고, 이는 미노아 문명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한편 막대한 화산재 덕분에 '미노아의 폼페이'라 불리는 아크로티리 마을이 후세에 보존될 수 있었다. 지진이 분출로 번질 것을 예감했는지 주민들은 미리 피난하여 도시에서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다. 폭발이 도시를 화산재로 덮으면서 벽화로 장식된 건물 유적까지 오늘날까지 전해졌다.
재앙의 여파는 충격적이었다. 지금도 산토리니 주변의 화산 부석은 두께 80m의 지층을 이루며, 섬들로부터 반경 20~30km의 해저를 뒤덮고 있다. 화산은 분화구에서 무려 60세제곱킬로미터의 마그마를 분출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 연쇄 재앙은 미노아 문명의 역사를 영원히 끝장냈다. 산토리니는 500년간 무인도로 남았고, 아름다운 크노소스가 있던 크레타는 경제적으로 몰락해 약화된 끝 곧 미케네인들의 먹잇감이 되었다.
플라톤의 전설
고도의 문명이 발달했다는 신비의 땅, 전설의 아틀란티스에 관한 여러 이론 가운데 하나는 그 위치를 바로 티라 섬에 찾는다. 잃어버린 땅에 대한 언급의 시초는 고대 최고의 철학자 중 한 명인 플라톤이다. 기원전 4세기에 살았던 이 그리스 사상가는 『티마이오스』와 『크리티아스』라는 두 대화편에서 신비한 문명을 언급했다. 그는 솔론 가문이 구전으로 보전해 온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가 '리비아와 아시아를 합친 것'보다 큰 광대한 땅이었다고 말했다. 아틀란티스인들은 강대한 제국을 세웠으며, 이 모든 일은 적어도 우리 시대보다 9,000년 전에 일어났다고 한다. 아틀란티스는 금·은 같은 귀금속과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풍부한 자원이 넘쳐나는 땅이었다. 플라톤에 따르면 수도는 동심원 형태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원형의 계획 도시였고, 그 안에는 바다와 바다의 신에게 바치는 웅장한 황금 신전, 넓은 광장, 휴식 공간, 경마장이 들어섰다. 이 목가적인 삶은 갑작스러운 격렬한 재앙의 연쇄로 끝났다. 지진과 홍수가 아틀란티스를 지상에서 지워버렸고, 그 잔해는 어딘가 깊은 곳에 잠겨 있다고 한다.
화산 위의 아틀란티스?
대서양, 특히 아조레스 제도는 이미 아틀란티스를 숨기고 있다는 '혐의'를 받아왔다. 스페인 카디스 근처의 마리스마 데 이노호스 염습지, 인도, 심지어 일본까지 후보지가 거론됐다. 그리고 마침내 산토리니가 아틀란티스 역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이 가설에는 명백한 약점이 있다.
첫째, 미노아 문명은 아틀란티스가 존재했어야 할 시기만큼 오래되지 않았다. 둘째, '헤라클레스의 기둥' 너머에서 발달하지 않았다. 셋째, 자연재해가 문명을 단숨에 지워버리지도 않았다. 현대 과학은 그 불행한 분출 이후에도 미노아 문명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명의 흔적을 알고 있다. 티라 주민 상당수는 첫 지진 이후 이미 피난을 떠났다. 화산 분출과 지진은 산토리니와 크레타 일대에서 며칠 동안 계속 이어졌지만, 철학자의 묘사에 따르면 아틀란티스는 문자 그대로 하룻밤 새 사라졌다. 플라톤은 생존자가 없다고 주장했다.
일부 역사학자들은 철학자가 자신의 이상적인 사회 질서와 국가 구조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기 위해 아틀란티스의 존재를 지어냈다고 본다. 그럼에도 잃어버린 문명에 대한 언급은 너무나 생생해서 지금까지도 수많은 연구자들의 심장을 뛰게 한다.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사실이라면 고대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완전히 뒤집힐 것이고, 무엇보다 인류 문명의 시작이 훨씬 과거로 밀려나기 때문이다.
미노아의 티라, 오늘날의 산토리니가 전설의 아틀란티스로 판명되든 아니든, 이곳은 파괴적인 자연의 힘과 기후 변화 앞에서 종말을 맞은 위대한 문화가 실재했음을 증언하는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