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의 이야기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

깨진 마음에 관한 이야기는 늘 비극적이면서도 동시에 매혹적입니다. 그런 이야기는 운명에 대한 궁금증을 자아내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사연 앞에서 우리를 결코 무관심하게 두지 않습니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그토록 극단적인 선택의 이유를 생각해 보게 만듭니다. 바르샤바 타타르스카(Tatarska) 거리 8번지 묘지의 한 무덤에는 바로 그런 충격적인 이야기 하나가 잠들어 있습니다.

미나렛처럼 서 있는 기묘한 묘비

타타르스카 거리의 무슬림 타타르 묘지 — 리투아니아·폴란드 타타르인과 다른 무슬림들이 잠든 백여 년 넘은 무덤들 사이에서 — 나의 시선을 붙잡은 돌무덤 하나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마치 미나렛처럼 생겼습니다. 아름답게 장식된 그 묘비에는 지그문트 크라신스키(Zygmunt Krasiński)의 시 「부활자에게(Resurrecturis)」의 구절이 새겨져 있습니다. "살아 있는 이들의 행위로 하나가 불어나리라 / 그대는 하나이자 — 수천이 되리라!" 이 기념비가 남다른 인상을 남기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의 이야기

압둘 할릭 우스미의 묘비에는 지그문트 크라신스키의 시 「부활자에게」의 구절이 새겨져 있다.

이 작품은 바르샤바의 뛰어난 예술가이자 석공이었던 볼레스와프 십니에프스키(Bolesław Sypniewski)의 손끝에서 태어났습니다. 원판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습니다. 압둘 할릭 우스미 / 향년 29세 / 1932년 3월 13일 별세. 이렇게 젊은 나이의 죽음은 필시 어떤 비극, 젊은 생명을 가른 갑작스러운 사건을 암시합니다.

이 신비로운 기념비를 마주하며 머릿속에 수많은 의문이 피어올랐습니다. 이 무덤에는 어떤 사연이 숨겨져 있는가? 압둘은 대체 누구였는가? 그의 죽음의 원인은 무엇이었는가?

이스탄불에서 온 귀족, 그리고 스턴트맨

그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하자 흥미로운 사실들이 밝혀졌습니다. 압둘 할릭 우스미, 즉 할릭 아흐메드 우스미 베이(본명 할릭 압둘-우스미-베이)는 터키인으로 이스탄불 출신이었습니다. 명문 귀족 가문 출신으로 알려져 있으며, 폴란드에서는 공작 칭호를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를 비스툴라 강으로 이끈 것은 학업이었습니다. 바르샤바에서 그는 고등경제학교에 입학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전쟁 전 신문들을 뒤지던 중 또 다른 면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스턴트맨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위험한 장면에서 여러 배역의 대역을 맡으며 폴란드 영화계와 가까워졌고, 바르샤바 연극계 인사들과도 친분을 쌓았습니다. 그는 비에르보바(Wierzbowa) 거리 9번지에 있던 유명 식당 '오아자(Oaza)'의 단골이었습니다. '오아자'에는 율리안 크셰빈스키와 브와디스와프 발테르가 설립한 카바레, 댄스 홀, 그리고 바그릴 룸도 있었습니다. 술, 여자, 춤, 노래 — 이런 조합은 취한 손님들 사이의 수많은 몸싸움과 결투를 부르기에 충분했습니다.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의 이야기

무슬림 타타르 묘지의 신비로운 기념비 (사진: 크시슈토프 바사라)

'오아자'에서 울린 총성

'오아자'에서 벌어진 피비린내 나는 드라마는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지만, 1930년에서 1931년으로 넘어가는 새해 전야의 사건은 특히 악명이 높았습니다. 그 사건의 주인공이 바로 압둘 할릭 우스미였습니다. 이 사건은 폴란드 전체 여론을 경악하게 만들었고, 비에르보바 거리 9번지에서 일어난 일들은 수많은 일간지에 실렸습니다. 1931년 1월 2일자 크라쿠프의 『차스(Czas)』지는 다음과 같이 보도했습니다.

"1931년 1월 1일 오전 5시 45분, '오아자' 식당에서 DOK I 참모부의 소볼레프스키 소령이 두 명의 남성과 세 명의 여성을 동반하여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다음 테이블에는 두 신사가 자리를 잡았는데, 상업학교 학생 우스미-할릭과 상인 하미드-초와크-자케크였다. 어느 순간 우스미 씨는 소볼레프스키 소령을 응시하며 조롱하듯 미소 짓기 시작했다."
"소동을 피하고자 소볼레프스키 소령은 계산서를 정산하고 일행과 함께 식당을 나와 탈의실로 향했다. […] 옷을 갈아입는 동안에도 우스미가 계속 도발하자, 소볼레프스키 소령은 그에게 무슨 의도냐고 물었다. 그러자 우스미 씨는 소령을 모욕했고, 소령은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우스미 씨가 소령의 손을 다시 때리자 소령은 리볼버를 꺼내 두 발을 발사했다. 이 총성 이후 우스미는 소령에게 달려들었고, 소령은 세 발을 더 발사했으며, 그 결과 우스미 씨는 목에 부상을 입었다."

이 총격전 과정에서 클럽에 있던 한 사람이 우발적으로 총에 맞기도 했습니다. 사건은 결국 법정으로 넘어갔습니다.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의 이야기

왕성 작업실의 볼레스와프 시레비치

기사만 읽으면 마치 우리의 주인공이 폴란드 장교의 명예를 이유 없이 공격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후 전개되는 이야기는 사실이 전혀 다름을 시사합니다. 진짜 비극의 원인은 사랑이었습니다. 우스미는 전쟁 전 폴란드 영화와 연극계 최고의 스타로 꼽히던 배우 야드비가 스모사르스카(Jadwiga Smosarska)에게 반해 있었습니다. 터키 청년은 아름다운 여배우의 마음을 얻으려 애썼지만, 그녀는 그의 구애를 거절했습니다.

섬세하고 불안정하지만 동시에 강렬한 체험을 갈구하던 동양의 영혼은 이번에는 견디지 못했습니다. 에밀 시오랑이 『나쁜 창조주』에서 쓴 것처럼 말입니다. "미래가 모든 중요성을 잃고, 그 모든 순간 가운데 오직 우리가 스스로를 끝내기로 결심하는 단 하나의 순간만이 남는 밤이 있다." 외롭고 오해받는 채, 비인간적인 고통에 잠긴 우스미는 자살을 결심했습니다. 1932년 3월 13일 일요일 이른 아침, 아카데미츠카(Akademicka) 거리 5번지 하숙집에서 그는 리볼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돌에 새겨진 마음 — 한 죽음과 무덤이 전하는 비극의 이야기

야드비가 스모사르스카. 불행한 압둘의 파타 모르가나.

결투로 죽었다는 아름다운 전설

그러나 바르샤바에서 수십 년간 되풀이되어 온 아름다운 전설에는 이런 버전의 사건이 담겨 있지 않습니다. 그 전설에 따르면 우스미는 "1932년, 29세의 나이로, 그가 흠모하던 유명한 여배우 야드비가 스모사르스카의 명예를 지키다 결투에서 비참하게 죽었다"고 합니다(인용: J. 카우슈카, 『타타르와 코카서스』, "Kultura pogrzebu", 2007년 제3호). 더구나 소문에 따르면 그 묘비를 위해 돈을 댄 사람이 바로 그 여배우 본인이라고 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까지도 누군가 압둘 할릭 우스미의 외로운 무덤을 돌보았습니다. 전쟁 후 오랜 세월이 지나 미국 망명지에서 돌아왔을 때 스모사르스카 본인도 이 무덤을 찾았다고 전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