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추위와 폭설 탓에 마녀를 사냥했다고? 소빙하기가 몰고 온 유럽의 공포

소빙하기와 마녀사냥, 의외의 연결고리

유럽 전역에서 최대 10만 건에 달하는 잔혹한 재판으로 번진 마녀사냥과 이른바 '소빙하기(Little Ice Age)' 사이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습니다. 잘란트 대학교(Saarland University)의 볼프강 베링거(Wolfgang Behringer) 교수는 두 현상을 잇는 직접적인 연결고리를 지적했으며, 데마르트(Demart)에서 출간된 로라 리(Laura Lee)의 저서 『날씨가 없었다면』에서도 같은 시각이 펼쳐졌습니다.

소빙하기가 정확히 언제 시작되고 끝났는지에 대해서는 역사학자, 고고학자, 기후학자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 기원을 14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견해도 있고, 15세기 후반부터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적어도 서유럽 기준으로 절정기는 대략 1570년부터 1630년 사이였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구체적인 연도는 확실하지 않지만, 수백 개의 역사 기록이 당시의 참상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혹한은 광범위한 지역에 기근을 몰고 왔고, 우박 폭풍은 마을과 도시를 유린했습니다. 발트해가 얼어붙어 스웨덴까지 걸어서 건널 수 있었다는 기록도 있으며, 네덜란드 항구는 얼음에 둘러싸여 상선들이 입항조차 못 하는 곤경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추위와 폭설 탓에 마녀를 사냥했다고? 소빙하기가 몰고 온 유럽의 공포

소빙하기는 유럽인들에게 막대한 희생을 안겼습니다. 위 삽화는 피터 브루겔의 그림 <눈 속의 사냥꾼>의 일부입니다.

날씨를 요술로 부린다고? 무조건 불태워라!

극심한 위기가 계속되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초자연적인 힘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볼프강 베링거는 마녀재판 자료를 연구한 끝에, 가장 큰 박해가 특히 심한 혹한이 찾아온 해들, 즉 1560~1574년, 1583~1589년, 1623~1630년, 1678~1698년에 집중되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마술에 대해 수 세기 동안 애매한 태도를 유지해 오다가, 1484년 교황 인노첸시오 8세의 칙령을 통해 마녀들이 날씨를 조종해 사람들에게 재앙을 가져올 수 있다고 공식 선언했습니다.

이 주장은 유명한 '종교재판관 안내서'인 『마녀탄환(Malleus Maleficarum)』의 저자들에 의해 더욱 구체화되었습니다. 한 세기 동안 거의 30번이나 재판된 이 책에는 당시의 기후 격변기에 꼭 들어맞는 불길한 장이 실려 있었습니다. 바로 "그들이 어떻게 우박 폭풍과 일반적인 폭풍우를 일으키고 부추기며, 번개를 불러 사람과 가축을 치게 만드는가"라는 장입니다.

결국 누가 범인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겠지요! 서리가 내려 종교재판관의 발이 동상에 걸렸다면, 그 서리를 보낸 마녀야말로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이윽고 우박, 비, 서리, 눈보라에 대한 혐의가 수천 명의 소위 '마녀'들에게 쏟아졌습니다. 특정 도시나 마을에서 나쁜 날씨가 재판의 도화선이 된 사례는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1562년 비젠슈타이크(Wiesensteig)에서는 수백 제곱킬로미터에 달하는 지역을 덮친 우박 폭풍이 지붕과 창문을 파괴하고 농작물을 황폐화시켰고, 이것이 대규모 마녀재판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날씨의 마녀 모임'

추위와 폭설 탓에 마녀를 사냥했다고? 소빙하기가 몰고 온 유럽의 공포

공포에 질린 사람들은 잔혹한 마녀들이 우박을 퍼붓는 장면을 어떻게 상상했을까요?

몇 달 만에 악마적인 날씨 음모에 가담했다는 거의 70명의 사람들이 화형에 처해졌습니다. 이번 경우에는 현지 목사가 배후 조종자였지만, 마녀와의 최후의 결산을 촉구하는 것은 대중인 경우가 많았습니다. 1626년 프랑켄 지방의 한 연대기 작가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내가 기억하는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얼어붙었고, 그래서 물가가 크게 폭등했다 (...) 이런 이유로 군중들 사이에서 청원과 호소가 끊이지 않았다. 당국이 어째서 농작물을 파괴하는 마녀와 술사들을 계속 방치하는지 물었다. 결국 주교후는 이 죄를 응징했다."

프랑스에서도 사정은 다르지 않았습니다. 16세기 말 트리에르(Trèves)의 요한 윤덴(Johann Junden)은 이렇게 적었습니다.

"모두가 끊이지 않는 흉년이 마녀들의 악마적인 증오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었기에, 온 나라가 이들을 근절하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말로 기후 냉각화가 마녀사냥의 배후에 있었던 걸까요? 16세기 60~70년대 최악의 기상 위기가 닥쳤을 때 마법을 행한다던 여성들에 대한 사냥의 절정기도 함께 시작되었다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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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마녀든, 악한 마녀든, 결국 화형대로.

게다가 소위 마녀에 대한 박해는 18세기 전반부에, 하필 유럽의 기후가 안정되기 시작할 무렵 중단되었습니다. 물론 모든 책임을 날씨 탓으로 돌릴 수는 없지만, 마녀사냥을 기후 변동과 연결 짓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가설로 보입니다...

출처

  1. Laura Lee, 『날씨가 아니었다면… 날씨가 역사를 바꾼 방법』, Demart, 바르샤바 2010, 119~12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