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명가와 엔지니어들에게 전쟁은 언제나 훌륭한 시험장이었습니다. 피로 물든 분쟁의 역사는 곧 군사 작전을 개선하고 적을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제거하기 위한 발명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과연 어떤 발명품들이 목록에 올랐을까요?
10. 바퀴

바퀴는 전장에서의 기동성을 한층 끌어올렸습니다. 사진은 이집트의 경전차(전차)입니다.
21세기 사람들에게 바퀴는 너무나 당연한 존재라 거의 눈에 띄지도 않지만, 기원전 3500년경 바퀴는 군대의 이동 방식에 혁명을 일으켰습니다. 그때부터 군대는 적진 깊숙이 침공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포위전이나 장기전 동안 그곳에서 생존할 수 있는 충분한 물자를 확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물론 수레는 군대의 이동 속도를 늦추긴 했지만, 식량이나 전리품, 부상자를 운반할 수 있다는 점은 매우 귀중한 능력이었습니다.
9. 화약

13세기 일본의 폭탄.
9세기경 극동에서 중국인들은 수많은 전투와 전쟁의 흐름을 바꾼 물질을 발명했습니다. 화약이 없었다면 인간이 동족을 살해할 수 있는 능력은 훨씬 제한적이었을 것입니다. 유럽 군대는 몇 세기가 지나서야 화약 사용법을 익혔지만, 19세기에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쇠퇴해가던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화약을 사용했고,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8. 화기
화약과 마찬가지로 화기 역시 이미 9세기 중국에서 등장했습니다. 오랫동안 군대들은 주로 강철 무기나 동물의 힘으로 싸워왔습니다. 그러던 중 최초의 대포와 소총은 전투의 양상을 바꾸어 놓았고, 전쟁을 덜 명예롭게 만들었습니다. 다만 이는 느리고 긴 시간이 걸린 과정이었습니다. 화기의 보급은 전쟁 전략을 완전히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병사들의 정신세계에도 깊은 영향을 미쳤다는 점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죽음의 불가피성과 그 빠른 속도는 차세대 군인들의 성격을 서서히 형성해 갔습니다.
7. 전신, 그리고 통신

대규모 군사 작전에는 원활한 통신이 필수적입니다.
생명에 직접적인 위협이 되지는 않지만, 적절한 시점에 활용하면 즉각적인 우위를 점하게 해주는, 겉보기에 단순하여 자주 간과되는 발명입니다. 이를 통해 확보한 정보 덕분에 지휘관들은 방어선을 구축하거나 적을 기습할 수 있었습니다. 현대의 레이더는 이러한 기술의 연장선으로, 적군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게 해줍니다. 초창기의 모습은 오늘날 우리가 아는 통신 방식만큼 인상적이지 않았지만, 전장에서의 연락망이 필요하다는 인식은 그만큼 강력했습니다.
6. 기관총

유진 M. 스토너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가 각자 설계한 소총을 들고 있는 모습.
화약과 물리학 원리의 효과적인 결합이 만들어낸 무기입니다. 탄환을 번개처럼 쏟아낼 수 있게 되면서 19세기의 기병 돌격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최초의 기관총 프로토타입인 맥심 기관총은 등장하자마자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수십 년에 걸쳐 수억 명의 사람들이 이 발명품의 후속 버전과 마주치며 목숨을 잃었습니다. 영국이 이 분야의 선구자였습니다. 로렌스 프리드먼은 저서 『전쟁의 미래』에서 다음과 같이 씁니다.
맥심형 살상 기관총은 1893~1894년 로디지아의 마타벨레 전쟁 당시 영국군에 의해 처음 사용되었다. 그러나 1914년 이전까지 각국은 이 종류의 기관총을 극소수만 보유하고 있었다. 상황이 변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초반이었고, 이때 방어 작전에서 그 위력이 입증되었다.
러시아의 기술력은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라는 인물을 통해 이 치명적인 도구를 완성의 경지에 이르게 했습니다. AK 자동소총과 그 후속 모델들은 여전히 세계 여러 나라 군대의 주력 무기이며, 러시아 발명가의 이름은 이 유형의 무기에 영원히 새겨지게 되었습니다.
5. 전차

제2차 세계대전 최고의 독일 전차 중 하나였던 판터. 동부 전선의 모습.
전쟁 전문가들은 오랫동안 적의 공격을 견뎌내는 파괴 불가능한 기계를 꿈꿔왔습니다. 전차는 이 개념의 시작에 불과하지만, 오늘날까지도 독보적인 아이디어로 남아 있습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대규모로 처음 투입되었지만, 전차가 전장에서 진정한 위력을 발휘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은 전격전이었습니다. 쿠르스크에서 벌어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전차전에 대한 기록은 소름 끼칩니다. 독일 판터와 소련 T-34가 충돌한 며칠간의 파괴의 향연에서 수십만 명의 목숨이 앗아갔습니다.
4. 잠수함

독일 U보트는 제2차 세계대전 초기 연합군에게 막대한 손실을 안겼습니다. 사진은 U-570.
19세기에 프로토타입이 만들어졌지만, 수중의 죽음 기계로서 진정한 가치가 드러난 것은 20세기에 들어서였습니다. U보트 덕분에 독일 해군의 해상 작전은 놀라울 정도로 정밀했습니다. 독일은 훌륭한 조선 산업을 자랑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미 호송선단은 소련 항구로 향하는 길에 대거 파괴되었습니다. 20세기 전쟁의 기술적 비밀을 탐구한 BBC 기자 브라이언 존슨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1940년 말까지 소수의 독일 잠수함들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총 배수량 250만 톤에 달하는 443척의 상선이 침몰했다. 영국 항공모함 HMS 커레이저스도 […].
20세기 후반, 소련은 잠수함을 통한 해양 장악 전략을 채택했습니다. 이 기술 발전의 마지막 페이지는 2000년 핵잠수함 쿠르스크호의 참사였습니다.
3. 헬리콥터

베트남에서 헬리콥터는 엄청난 파괴력을 발휘했습니다. 사진은 벨 UH-1D.
로터를 단 비행기를 만들려는 시도는 제1차 세계대전 직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양한 개념이 본격적으로 인정받은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중이었습니다. 초기에는 주로 부상자 수송에 사용되었습니다. 한국전쟁에서는 벨 H-13 헬리콥터가 활약했습니다. 정밀한 비행과 신속한 대응 덕분에 미군은 험준한 산악 지형에서도 효과적으로 작전을 수행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경기관총을 장착한 헬리콥터가 군대의 손에서 얼마나 치명적인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준 것은 베트남 전쟁이었습니다.
2. 비행기
1903년 라이트 형제가 처음 하늘을 나는 데 성공한 순간부터, 이 발명이 전쟁에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은 거의 예견되어 있었습니다. 불과 5년 후, 작가 허버트 조지 웰즈는 비행기가 "민간인과 그들의 집, 그리고 사회 생활 전체를 필연적으로 전쟁에 끌어들일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로렌스 프리드먼은 저서 『전쟁의 미래』에서 비행 기계가 분쟁의 성격을 바꾸었을 뿐, 반드시 분쟁 해결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비행기는 특정 영토를 점령할 수 없기 때문에 스스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 (...) 이 사실은 전간기에 군용 항공의 지지자들에게도 일반적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1. 핵무기

핵폭탄은 총멸절의 공포를 안겨주며 전쟁의 양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사진은 나가사키에 투하된 팻 맨(Fat Man)의 모형.
완벽한 무기를 향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인류는 이미 총멸절의 위협을 품은 무언가를 만들어냈습니다. 1940년대 미국의 핵 실험은 곧 전쟁을 조기에 종결시키는 성과로 이어졌습니다. 1945년 8월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는 일본의 항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전후 시대에 세계 열강들은 핵탄두 사용이 가져올 위험성을 점점 더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핵무기고의 점진적 감축은 더디게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새로운 전쟁 전략과 함께 핵무기는 르네상스를 맞이하는 듯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