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카틴 학살에서 살아남은 폴란드인은 약 400명…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피했는가?

1940년 봄, 소련 당국은 2만 1천 명이 넘는 폴란드 군인, 장교, 경찰관들을 학살했습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죽음의 수송 열차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거의 400명에 달하는 이들이 NKVD의 칼날을 피했는데, 대체 무엇이 그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았던 걸까요?

코젤스크(Kozelsk), 스타로벨스크(Starobelsk), 오스타시코프(Ostashkov) 수용소에 수감된 폴란드 포로들의 학살을 다룬 대부분의 연구 자료는 이 수치스럽고 전례 없는 행위의 원인과 경과, 결과를 주로 조명합니다. 반면 일부 폴란드 군인들이 살아남게 된 까다롭고 불분명한 이유 때문에 생존자 문제는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카틴에서 최후의 순간 NKVD의 총구 아래에서 벗어난 스타니스와프 스비아니에비치(Stanisław Swianiewicz) 교수는 저서 『카틴의 그늘에서』에서 "포로 3%를 살려둔 이유는 나머지 97%를 살해한 이유만큼이나 미스터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순한 우연이었을까?

또 다른 생존자인 유제프 차프스키(Józef Czapski)는 폴란드 군인들이 살아남게 된 특별한 기준 같은 것은 없었다며, 누가 살아남고 누가 죽음의 구덩이에 처하게 될지는 순전히 우연이 결정했다고 믿었습니다.

카틴 학살에서 살아남은 폴란드인은 약 400명…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피했는가?

예르지 볼코비츠키(Jerzy Wołkowicki) 장군(오른쪽에서 두 번째로 앉아 있는 인물)은 35년 전에 했던 몇 마디 말 덕분에 1940년 소련군에게 학살당한 수천 명의 폴란드 장교들과 같은 운명을 맞지 않았습니다.

차프스키 대위는 자신의 회고록 『스타로벨스크의 추억』에서 자신도 속해 있던 생존자 집단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회주의적 인연, 설령 우연이라 해도

미하우 롬(Michał Romm)은 행운의 우연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가 유명한 소련 영화 감독이자 『레닌은 10월에』의 제작자인 미하일 롬(Mikhail Romm)의 친척이자 동명이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명한 볼코비츠키 장군은 아마도 35년 전에 했던 몇 마디 말 덕분에 살아남았을 것입니다. 러일전쟁 당시 그는 미치만(해군 하사관)으로서 함선의 항복에 반대했습니다. 이러한 태도 덕분에 그는 러시아 해군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었고, 인기 소설 『쓰시마』에도 이름을 남기게 되었습니다.

NKVD의 '친구'

오스타시코프에서 살아남은 프란치셰크 바토르(Franciszek Bator)는 임시 수용소에서 NKVD 요원의 실수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그가 체코슬로바키아 군단 출신 체코인으로 오인되면서, 소련 군인이 서류에 그를 '프랑 바토르(Franc Bator)'로 기록해 두었던 것입니다.

오스타시코프에 억류되어 있던 젊은 경찰관 스테판 수히(Stefan Suchy)는 죽음의 수송 열차에서 탈출하여 살아남았습니다. 민토프트-치시(Mintowt-Czyż) 소위는 NKVD 장교가 자신을 헤르손에서 함께 어린 시절을 보낸 옛 친구로 알아본 덕분에 죽음을 면했습니다.

카틴 학살에서 살아남은 폴란드인은 약 400명…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피했는가?

카틴에서 NKVD에 의해 학살된 폴란드 장군들의 묘 (출처: Bundesarchiv, CC-BY-SA 라이선스)

지그문트 베를링(Zygmunt Berling)은 스타로벨스크 수용소에서 실시된 조사를 통해 자신이 살아남은 배경을 밝혔다고 주장합니다.

계산된 선택

소련이라는 전체주의 국가의 특수성 때문에 포로들에 대한 연민의 여지는 없었으며, 그들의 생존 여부는 대체로 현실적인 요인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소련이 의도적으로 한 사람의 목숨을 살리기로 결정했다면, 가장 기본적인 기준은 소련 국가의 단기 및 장기 계획 수행에 얼마나 유용한 인물인가였습니다.

총 395명의 생존자 중 약 90명은 독일 대사관, 리투아니아 당국의 요청과 기타 국가들의 개입으로 구제되었습니다. 이 그룹에는 유럽 귀족 사회와 인연이 깊었던 앞서 언급한 유제프 차프스키 대위를 비롯해, 올기에르트 슐리지엔(Olgierd Ślizień) 대위, 리샤르드 스틸러(Ryszard Stiller) 중위, 바츠와프 코마르니츠키(Wacław Komarnicki), 그리고 유명한 지휘자 에밀 므리나르스키(Emil Młynarski)의 아들 브로니스와프 므리나르스키(Bronisław Młynarski) 등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생존자 중에는 약 100명 정도로 이루어진 집단이 있었는데, 이들은 소련에 호의적이었거나 심문 과정에서 무너져 소련 기관과 협력하기 시작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카틴 학살에서 살아남은 폴란드인은 약 400명… 그들은 어떻게 죽음을 피했는가?

지그문트 베를링은 NKVD와 협력한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때로는 소련이 필요로 하는 지식만 갖추고 있으면 충분했습니다. 스비아니에비치 교수는 나치 독일의 경제에 관한 뛰어난 전문가였기 때문에 목숨을 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스탈린 체제 정보기관에 있어 훌륭한 정보원이 될 수 있었습니다.

개개인의 생존 이유가 무엇이든, 수백 명의 폴란드인이 살아남은 것은 폴란드 역사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닙니다. 바로 이들이 카틴, 하르키우, 비키우니아, 미드노예에서 벌어진 참상을 직접 증언할 수 있었고, 학살된 이들의 기억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