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그니에즈노? 크라쿠프? 바르샤바? 독일 통치자들에게 폴란드는 너무 멀었다

그니에즈노 회의, 그리고 잊혀진 진짜 의미

중세 황제 오토 3세의 전기를 집필한 역사학자 예지 스첼치크(Jerzy Strzelczyk)는 독일 통치자가 그니에즈노를 방문한 사건의 흥미로운 측면에 주목했습니다. 용맹공 볼레스와프(Bolesław Chrobry)의 머리에 왕관을 얹고 왕위를 약속한 것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측면입니다.

필자가 이른바 '그니에즈노 회의(Gniezno Congress)'의 상징적·실질적 의미를 부정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오토 3세의 폴란드 방문은 폴란드에 무언가를 가져다주었다는 점, 즉 대주교구 설립, 위상, 그리고 실현되지 못한 일련의 약속들 때문에 주목할 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는 그런 방문 자체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야말로 놀라운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스첼치크는 이렇게 지적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아는 한, 문자 그대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독일 국가 원수가 폴란드를 방문한 유일한 사례였다." 실제로 그렇습니다. 우리는 수백 년 동안 독일인들과 싸우고 거래해 왔고, 끝내는 그들의 손에 의해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분할당하는 비운을 겪었습니다. 그럼에도 독일의 통치자들은 그니에즈노, 크라쿠프, 바르샤바를 방문하기 위해 서두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니에즈노? 크라쿠프? 바르샤바? 독일 통치자들에게 폴란드는 너무 멀었다

이번에는 제후들이 황제를 찾아간 것이 아니라, 황제가 그니에즈노를 찾아온 것입니다 (출처: 퍼블릭 도메인).

1000년 만의 두 번째 국빈 방문

스첼치크에 따르면, 독일의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Richard von Weizsäcker) 대통령이 1990년 비스와 강변을 찾으면서 오토 3세 이후 처음으로 '국빈 방문'을 기록했습니다. 포즈난의 이 저명한 교수의 주장에 반박하기는 어렵습니다.

굳이 예외를 들자면, 1364년 카지미에시 대왕이 크라쿠프에서 개최한 군주 회의에 참석한 카를 4세(Charles IV)의 방문 정도일 것입니다. 스첼치크는 이 사례를 수수께끼처럼 '다른 성격의 방문'이라며 일축합니다.

아마 요점은 카를 4세가 '국빈 방문'이 아니라, 오늘날 정치 용어로 말하자면 '국제 회의' 참석 차원에서 방문했다는 데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이 예외까지 목록에 포함하더라도, 공동의 역사 1000년 동안 폴란드 땅에서 벌어진 군주들의 회동은 고작 두 번뿐입니다.

그니에즈노? 크라쿠프? 바르샤바? 독일 통치자들에게 폴란드는 너무 멀었다

국제 회의의 모습 — 브로니스와프 아브라모비치(Bronisław Abramowicz)의 그림 「비에지네크의 연회」.

적대적인 방문조차 드물었다

흥미롭게도 통치자가 직접 군대를 이끌고 찾아온 적대적 방문 역시 놀랄 만큼 적었습니다. 1157년에는 프리드리히 1세 바르바로사(Frederick I Barbarossa) 황제가 폴란드에 머물렀습니다. 1382년에는 새로 즉위한 브란덴부르크 변경백 룩셈부르크의 지기스문트(Sigismund of Luxembourg)가 우연히 폴란드 땅에 들어섰습니다. 다만 그는 폴란드를 '방문'한 것이 아니라, 갓 세상을 떠난 헝가리의 러요시(루이) 대왕의 특사로 온 것이었습니다. 러요시 사후 그는 왕위를 손에 넣으려 시도했지만 실패했고, 크라쿠프의 성문은 그를 막아섰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후 우리 땅을 밟은 이들은 19세기 프로이센의 통치자들과 나치 독일의 퓌러 아돌프 히틀러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을 국빈 방문이라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특히 이들은 폴란드라는 국가 자체가 존재하지 않도록 만들었으니까요.

출처: Jerzy Strzelczyk, 『Otto III』, Ossolineum, Wrocław 2000, pp. 114, 243–2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