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어 역사상 처음으로 정립된 철자법과 문법이 당대 문어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이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지난해 라이덴에서 박사학위 논문을 발표한 언어학자 안드레아스 크로굴(Andreas Krogull)은 공식 문서와 비공식 글 모두에서 그 증거를 찾아냈다. 그는 이번 달 네덜란드 문학 협회(Maatschappij der Nederlandse Letterkunde)로부터 학술년상(Academic Year Award)을 받는다.
19세기 초, 네덜란드 정부는 국민적 통합을 촉진하기 위한 여러 조치의 일환으로 학자 마티스 시겐베크(Matthijs Siegenbeek)와 페트루스 바일란트(Petrus Weiland)에게 각각 철자법과 문법 정비를 지시했다. 1804년 네덜란드어 철자법과 1805년 네덜란드어 문법의 등장은 표준 네덜란드어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 이전에는 확립된 언어 기준이 없었기 때문이다.
"1800년경 문어 규범화가 구체적이고 어쩌면 유례없는 사례인 이유는, 몇 년 안에 수많은 급진적인 변화가 한꺼번에 도입되었다는 점입니다. 네덜란드 민족국가의 수립, 국민 교육 제도의 탄생, 그리고 최초의 통일 철자법과 통일 문법이 그것이죠. 특히 정부가 언어에 개입했다는 점은 전례 없는 일이었습니다."라고 현재 케임브리지에서 박사후연구원으로 재직 중인 크로굴은 설명했다.
이 시기 언어 규범이 일상적인 문어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었다. 크로굴은 방대한 텍스트 자료를 분석해 이를 규명했다. 그가 구축한 코퍼스는 편지, 일기, 여행기, 신문 등 수십 건의 문서로 이루어져 있으며, 상당수는 필사본이다. 자료의 절반은 문어 규범 제정 이전(1770~1790년), 나머지 절반은 제정 이후(1820~1840년)의 것이며, 북부 네덜란드의 7개 지역에서 수집되었다.
'dt' 철자를 둘러싼 변화
코퍼스 분석 결과, 철자 분야에서는 규정된 규칙이 꽤 충실히 따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예컨대 시겐베크는 'gekocht(샀다)'와 'gebracht(가져왔다)' 같은 단어에서 cht와 gt를 구별하도록 했는데, 이 규칙은 약 80%의 사례에서 준수되었다. 또한 시겐베크는 'hij wordt(그는 ~가 된다)' 같은 동사 활용형에서 dt 철자를 공식적으로 처음 확립했는데, 이 철자의 사용은 모든 텍스트에서 늘어났지만, 필사본에서는 종전의 d 철자가 더 오래 남아 있었다.
시겐베크는 'tussens(ch)en(~사이의)'과 'wens(ch)(소원)' 같은 단어에서 sch 철자를 규정했다. 이 규칙은 놀라울 만큼 효과적인 것으로 드러났다. 원래 s만 쓰던 사람들조차 sch로 전환한 것이다. 반면 이중모음을 y 대신 ij로 적는 규칙(예: myn → mij)은 필사 자료에서 덜 엄격하게 지켜졌다. 연구자는 ij와 y 사이의 시각적 차이가 작아 눈에 잘 띄지 않았기 때문일 것으로 추측한다.
문법 규칙은 덜 지켜졌다
바일란트의 문법 규칙은 시겐베크의 철자 규칙보다 덜 엄격하게 지켜졌다. 크로굴은 그 이유 중 하나로 문법 규칙이 일반적으로 더 복잡하다는 점을 꼽았다. "관계대명사의 경우 바일란트는 die와 dat 외에 welke나 welk 같은 형태도 허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het huis(그 집)' 뒤에는 dat도 welke도 쓸 수 있었지만, wat는 절대 안 됐죠. 형태 간 차이는 주로 용법에 있었습니다. 서로 다른 맥락이나 문체 수준에 따라 다른 형태가 쓰인 거예요." 실제로 코퍼스에서도 맥락에 따라 사용이 달랐다. welke와 welk는 주로 신문에서 발견되고, 일기와 여행기에도 나타나지만, 개인 편지에서는 가장 드물었다.
그러나 문법 규칙의 복잡성만이 이유는 아니었다. "당시 교육과 교과서에서는 문법 문제보다 철자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는 것도 연구를 통해 확인됩니다. 결국 언어 규범에 대한 인식 수준의 차이도 작용한 것이죠. 어쨌든 제 박사논문의 결과는 19세기 언어 사용자들이 문법 규칙보다 철자 규범을 훨씬 더 의식하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바일란트에 의해 소폭 부활한 고풍스러운 형태도 있었다. 바로 속격(genitive)이다. 18세기 후반부터 'de zoon van de koning(왕의 아들)'처럼 전치사 van을 쓰는 구문이 이미 보편적이었지만, 바일란트는 자신의 문법에서 속격 형태인 'de konings zoon'을 규정했다. 그의 문법이 나온 뒤 이 형태는 인쇄물과 필사본 등 모든 장르에서, 남성과 여성 작가 모두에게서 더 자주 사용되었다.
학교를 넘어 퍼져나간 규범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철자와 문법 규칙은 주로 학교와 공무원 사이에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이번 연구는 그 규칙들이 교육과 공직의 범위를 넘어 퍼져나갔음을 보여준다. 개인차가 컸는지 확인하기 위해 크로굴은 마르티니 뷔스(Martini Buys) 가족 세 대에 걸쳐 작성된 약 100통의 사적 편지로 이루어진 편지 아카이브도 함께 분석했다.
편지들은 규칙 준수 정도에서 큰 편차를 보였다. 흥미롭게도 학령기 청소년뿐 아니라 그 위 세대 역시 철자 규칙에 크게 좌우되었다. 이 세대는 학교에서 언어 규칙을 배우지 않았지만, 신문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힌 것이다. "신문도 새로운 언어 규범이 전달되는 중요한 통로 역할을 했습니다."라고 크로굴은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