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폐 감질(저질화)은 수백 년간 이어져 온 관행이지만, 20세기에는 더 이상 자리가 없을 것처럼 보인다. 금화와 은화가 지폐로 대체되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크게 잘못된 생각이다. 실제로 1930년대 중반 이탈리아가 아비시니아를 정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이 '동전 깎아먹기'가 있었다.
누구나 알다시피 베니토 무솔리니는 아프리카에서 이탈리아 식민지를 확장하려는 야망을 품고, 19세기부터 이어져 온 이탈리아의 오랜 꿈, 즉 아비시니아(오늘날 에티오피아) 정복을 실현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두체(총통)는 흑인 대륙에 남아 있던 단 둘뿐인 독립국 중 하나였던 이 나라에 군사 침공을 개시하기 전에, 먼저 상대의 경제를 직접 공격해 최대한 약화시키려 했다. 목표는 단순했다. 인플레이션을 최대한 부추기는 것. 그는 대체 어떤 방법으로 이를 해냈을까? 답은 놀라울 만큼 간단하다.
모든 것의 시작은 100년 넘은 탈러 은화였다
이 계략의 배후에는 황후 마리아 테레지아의 은화, 이른바 '마리아 테레지아 탈러'가 있었다. 그렇다, 18세기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의 몰락에 한몫했던 바로 그 마리아 테레지아다. 이 은화는 1780년 이후 수십 년에 걸쳐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통화 체계에 여러 변화가 생겼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조되었다.

베니토 무솔리니가 아비시니아 정복을 위해 이런 교묘한 계획을 세울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높은 품질 덕분에 이 은화는 중동과 동아프리카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20세기 중반까지도 널리 통용되었다. 특히 아비시니아에서는 기본적인 지불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두체는 바로 이 사실에 주목해 공격 준비에 활용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계획이 성공하려면 원본 주형(스탬프)을 손에 넣어야 했다. 당시 이 주형은 빈의 한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었다. 평범한 사람에게는 물론 극복하기 어려운 장애물이었겠지만, 이탈리아의 독재자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필요조차 없었다.

무솔리니는 주형을 위조하도록 지시하지도 않았고, 절도를 명령하지도 않았다. 그는 그저 전시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했을 뿐이다. 알프스의 나라 오스트리아 당국은 이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어차피 히틀러가 조국을 제3제국에 병합하려는 시도로부터 오스트리아의 독립을 지켜 준 보증인은 다름 아닌 두체였으니까.
주형이 이탈리아에 도착하자마자 '깎아먹은' 탈러의 대량 주조가 시작되었다. 방법 자체는 수백 년간 군주들이 국고를 아끼기 위해 사용해 온 것과 다를 바 없었다. 동전의 겉모습은 원본과 완전히 똑같았지만, 은 함량은 훨씬 적어 실제 가치에는 크게 미치지 못했다.
'이탈리아산' 탈러가 대거 유통되기 시작하자 아비시니아에서는 필연적으로 인플레이션의 눈사태가 일었다. 그 결과 하일레 셀라시에 황제의 실질 현금 비축량은 하룻밤 사이에 가치를 잃고 말았다. 이것이 곧 이탈리아군의 침공 임무를 한결 수월하게 만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