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20세기 폴란드가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 정작 일본은 '거절'했다

잊혀진 역사: 폴란드가 20세기에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상대는 일본

1918년 독립을 회복한 이후 폴란드가 전쟁을 선포한 나라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소련과 나치 독일과의 충돌은 어느 쪽도 공식적인 선전포고 없이 시작되었다. 법적으로(de jure) 폴란드 제2공화국이 도전장을 던진 상대는 오직 1941년의 일본뿐이다. 더 놀라운 것은, 정작 일본이 이 선전포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쟁 전, 묘하게도 가까웠던 폴란드와 일본

전쟁 이전인 1930년대, 폴란드는 일본과 상당히 특수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다. 일본 황실 대표들은 비스툴라 강변의 나라 폴란드를 비공식적으로 방문했고, 양국 간 무역 협정도 체결되었다. 하지만 가장 긴밀하게 협력한 분야는 따로 있었다. 바로 정보 기관이었다. 폴란드와 일본의 첩보망 모두 소련에 대한 정보 수집을 최우선 과제로 삼았다. 이해관계가 일치했고, 두 나라는 지리적으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영토 분쟁을 벌일 여지조차 없었다. 왜 함께 손잡지 않겠는가? 실제로 폴란드는 1939년 전쟁이 발발하고 다시 유럽 지도에서 사라질 때까지 일본과 무난한 관계를 유지했다.

전쟁이 진짜로 '세계 대전'이 된 순간

2년 후인 1941년 12월 7일, 일본 제국 해군이 미 해군의 진주만 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이 사건 이후에야 제2차 세계대전은 문자 그대로 '세계' 대전이 되었다. 태평양에서 전쟁이 터졌고, 독일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했으며, 미국은 모든 전선에 참전했다. 진주만은 또한 유럽 연합국들에게도 하나의 신호가 되었다.

영국은 즉시 일본에 선전포고를 결정했고, 영연방 자치령들과 망명 정부들—폴란드, 벨기에, 네덜란드, 프랑스 국민해방위원회—도 잇달아 참여했다. 여기에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이집트, 멕시코, 그리스까지 일본과 그 동맹국들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했다.

20세기 폴란드가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 정작 일본은  거절 했다

도조 히데키. 바로 그가 폴란드와의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인물이다.

자, 경악할 일이다! 자유 프랑스나 벨기에 망명 정부 같은 '군사 강국'이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는 소식에 도쿄가 얼마나 떨렸겠는가. 하지만 이 모든 것 중 가장 기묘한 일은 따로 있었다. 바로 폴란드 망명 정부가 선포한 전쟁을 일본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도조 히데키 총리는 이 사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우리는 폴란드인들의 도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유를 위해 싸우는 폴란드인들은 영국의 압력에 의해 우리에게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그리하여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폴란드가 20세기 내내 단 한 번 선포한 전쟁이 있었는데, 그 전쟁마저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국제 관계에서 이런 일은 극히 드문 경우다.

그래서 우리는 적인가, 친구인가?

게다가 많은 폴란드인들은 정부의 결정에 강하게 반대했다. 여기에는 루마니아에 억류되어 있던 요제프 베크(Józef Beck) 외무장관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폴란드는 일본에 선전포고를 했다. 시간이 흐른 지금 돌아보면, 이 결정에는 정당성도, 무엇보다 정치적 판단력도 없었다.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가 대체 폴란드에 무슨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말인가?"

ORP '드래곤(Dragon)' 함에 복무하던 한 평범한 폴란드 해군 장병도 비슷한 입장이었다. '바다 늑대'라 불린 빈센티 치간(Wincenty Cygan), 저서 『그라나토바 자워가(Granatowa Załoga, 감청색 승조원들)』에서 그는 이렇게 회고한다.

"우리 정부는 선전포고를 하면서 […] 일본에도 전쟁을 선포했다. 하지만 그건 저쪽에서 해야 했다." 그랬다면 소련이 우리 나라를 유린하고도 끝내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은 영국의 정책을 따르면 충분했다. 소련이 영국에 직접적인 위협이 아니기에 영국인들은 그녀를 적으로 간주하지 않았듯이."

20세기 폴란드가 전쟁을 선포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 정작 일본은  거절 했다

폴란드에 대체 일본과의 전쟁이 무슨 소용이었는가? (사진: Światowid, 1935)

"그렇다면 일본이 우리를 위협할 수 있는 부분이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친한'(동맹국인) 러시아에서 피신해 온 수많은 폴란드인들이 '적대적인' 일본에서 피난처와 보호, 공짜 빵을 찾던 바로 그 시기에, 우리 정부는 이 나라에 전쟁을 선포했다."

이처럼 일본 측은 큰 이해심을 보였다. 치간은 또한 '드래곤' 함이 실론(스리랑카)으로 이동해 제10순양함 전대 소속으로 일본에 대한 작전을 수행할 예정이었는데, 폴란드 선원들이 이를 몹시 달가워하지 않았다고 기록했다. 다행히 배치 계획은 결국 변경되었고, 선원들은 안도했다.

16년간 이어진 '종이 위의 전쟁'

허나 이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폴란드와 일본 간의 전쟁은 형식상 1957년까지, 즉 폴란드 인민공화국과 일본 간 '국교 정상화 조약'이 체결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조약 제1조는 조약 발효와 함께 양국 간의 전쟁 상태가 종료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솔직히 인정하자면, 이것은 참으로 길고 극도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었다. 폴란드군과 일본군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인 횟수는 … 딱 0번. 다행히 폴란드 정부는 정신을 차리고 일본과의 전쟁을 서류상에만 남겨두는 편이 낫다고 판단했다. 어쨌든 이 '분쟁' 기간 동안에도 양국 정보기관은 소련과 독일에 대한 정보 수집 협력을 계속했고, 폴란드 요원들은 당시 그 '적대적인' 일본이 통제하던 만주국의 외교 여권 덕분에 세계 곳곳을 누비며 활동할 수 있었다.

출처

  1. Sergeĭ Vladimirovich Bakhrushin, 『외교사(History of Diplomacy)』 IV권, 바르샤바, 1981.
  2. Wincenty Cygan, 『Granatowa Załoga』, 그단스크, 2011.
  3. Włodzimierz T. Kowalski, 『지브롤터의 비극』, 비드고슈치,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