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짜르 러시아는 1917년에 멸망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1934년까지 존속했다

교과서에는 짜르 러시아가 니콜라이 2세의 퇴위와 함께 소멸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로부터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현지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짜르 제국 대사관이 운영되던 수도가 실제로 존재했습니다. 바로 파리도, 런던도 아닌 루마니아의 부쿠레슈티였습니다.

이 특이한 외교적 일화는 루마니아와 볼셰비키 정권 간의 국경 분쟁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여기에 고집 하나만은 대단했던 짜르 러시아의 대사까지 한몫을 더했습니다.

해당 외교관은 스타니스와프 코지엘우포클렙스키(Stanisław Koziełł-Poklewski) 백작이었습니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 발발 직전에 부쿠레슈티에 부임했는데, 이 전쟁은 짜르 가문에게 매우 불행한 결말을 가져왔습니다.

짜르 러시아는 1917년에 멸망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1934년까지 존속했다

바로 이 사람이 스타니스와프 코지엘우포클렙스키 백작입니다.

그러나 1932년 폴란드 신문 '고니에츠 첸스토훼프스키(Goniec Częstochowski)'의 보도에 따르면, 이 외교관은 사임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했습니다. 그를 대사로 임명한 짜르의 칙령이 아직 취소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짜르의 사망 소식은 누구에게도 공식 확인된 바 없었으며, 언론에 떠도는 "소문"은 대사에게 어떠한 법적 효력도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해임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짜르뿐

물론 포클렙스키의 이런 별난 태도만으로는 이 이야기가 성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앞서 언급한 국경 분쟁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분쟁의 원인은 1918년 루마니아가 베사라비아를 점령한 것이었고, 볼셰비키 러시아 역시 이 지역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이 분쟁의 결과로 양국은 1934년에야 비로소 외교 관계를 수립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과 더불어, 로마노프 왕가와 혈연관계가 있던 루마니아 국왕 페르디난드 1세의 왕비 마리아의 호의가 혁명 이후에도 짜르 대사관이 오랜 세월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되었습니다.

짜르 러시아는 1917년에 멸망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1934년까지 존속했다

부쿠레슈티에서 짜르 대사관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은 루마니아와 소련 간의 국경 분쟁과 마리아 코부르크 여왕의 호의 덕분이었습니다.

다만 '운영'이라기보다는 '버텨내기'에 가까웠습니다. 짜르 정권 붕괴 15년 후, 대사관의 옛 영광은 거의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당시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대사관 앞의 금박을 입힌 난간은 세월에 검게 변했고, 정면 벽에서는 회반죽이 벗겨져 나갔으며, 입구 위의 쌍두독수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려 하루이틀 안에 길거리로 떨어질 듯했습니다."

건물 내부의 사정도 처참했습니다. 대사관 내 영사관에는 가난과 절망의 흔적이 가득했고, 곳곳에 먼지와 거미줄이 쌓여 있었으며 방 구석에는 빈 포도주 병들이 널려 있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값어치 있는 물건들은 이미 오래전에 모두 팔려 없어진 상태였습니다.

짜르 러시아는 1917년에 멸망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1934년까지 존속했다

포클렙스키의 임무는 1934년, 최초의 소련 외교관 미하일 오스트롭스키(Mikhail Ostrowski)가 부쿠레슈티에 도착하면서 끝이 났습니다.

끝까지 자리를 지킨 대사

외교 공관의 직원 수도 크게 줄었습니다. 1918년에는 16명이 근무하고 있었지만, 15년 후에는 단 4명만 남았습니다. 대사 본인 외에 밀리콤(Milikom) 박사라는 영사, 1등 서기관, 그리고 잡역부가 전부였습니다.

짜르 러시아는 1917년에 멸망했다? 루마니아 부쿠레슈티에서는 1934년까지 존속했다

이 글의 기초가 된 '고니에츠 첸스토훼프스키' 해당 호의 표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32년, 이미 공적인 활동을 접은 지 오래된 이 대사는 외교단 회의나 부쿠레슈티 외무부(M.S.Z.) 주최 리셉션에 공식 초청을 받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이 대사는 짜르 여권을 발급하기까지 했습니다! 다만 이러한 "영예"를 얻으려면 신청자가 짜르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해야 했습니다.

이 기묘한 일화는 결국 1934년 루마니아와 소련 간의 외교 관계 수립으로 막을 내리게 됩니다. 같은 해 12월, 새로운 소련 대표 미하일 오스트롭스키가 부쿠레슈티에 도착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코지엘우포클렙스키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환영받지 못하는 인물)로서 루마니아를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로써 니콜라이 2세의 퇴위 후 무려 17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쿠레슈티에 존속했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조각의 역사는 비로소 막을 내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