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세기, 훗날 브라질이 된 영토에 최초의 포르투갈인들이 도착하면서 브라질 교육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역사는 순조롭게 이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 세기 동안 교육은 외면당했고,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미약하게나마 다시 논의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글에서는 브라질 교육의 역사와 그 발전 과정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살펴보겠습니다.
브라질에서 교육은 어떻게 탄생했을까?
브라질 최초의 교육자는 1549년 브라질에 도착한 예수회(Jesuit) 선교사들로 볼 수 있습니다. 이들은 포르투갈 왕국의 새 영토에서 원주민들을 개종시키고 기독교 신앙을 전파하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당시 교육은 남자아이에게만 허용되었습니다. 거의 두 세기 동안 예수회 사제들은 현지 사람들에게 셈하기, 읽기, 쓰기를 가르쳤으며, 브라질 최초의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예수회가 운영한 기관은 모두 다음과 같습니다.
- 거처(residência) 25곳
- 선교지(missão) 36곳
- 칼리지와 신학교 17곳

그러나 교육에는 뚜렷한 분리가 존재했습니다. 원주민 아이들을 위한 수업은 원주민들이 직접 지은 임시 건물에서 이루어진 반면, 정착민과 대지주의 자녀들은 구조적으로 잘 갖춰진 기존 학교에서 교육받았습니다. 이는 해당 교육기관에 대한 풍부한 투자 덕분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경제적·사회적·교육적 관점에서 '브라질인'이라는 민족이 형성되던 때였습니다.
예수회의 추방과 포르투갈 왕가의 도래
그러나 1759년, 예수회는 포르투갈에서 추방됩니다. 그 결과 브라질에 있던 예수회원들 역시 떠나야 했고, 이는 당시 브라질 교육에 큰 타격을 입혔습니다. 18세기 말까지 브라질은 교육적으로 완전히 방치된 상태였습니다. 이 상황은 1808년 포르투갈 왕가가 리우데자네이루에 도착하면서 비로소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 시기에 최초의 문화·과학 기관들이 생겨났고, 리우데자네이루와 바이아에는 최초의 기술 및 고등교육 과정이 설립되었습니다.
새로운 교육과정의 제공은 새로 이주해 온 왕족들과 지역 엘리트들의 서비스 및 물품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었으며, 이 덕분에 리우데자네이루와 살바도르는 짧은 시간 안에 큰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브라질 독립 이후의 교육
D. 주앙 6세(D. João VI)가 확립한 실용적·직업적 성격의 교육은, 1823년과 1824년 헌법이 국민 교육을 다루는 법률을 제안하기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에도 브라질 교육의 주요 지침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브라질의 교육은 부유층만을 위한 것이 되었고, 브라질 인구의 상당 부분은 학교 인프라, 훈련된 교사, 책에 대한 접근성 측면에서 소외되었습니다.
1827년에는 브라질의 모든 도시와 마을에 초등학교를 설립하도록 하는 최초의 법률이 제정되었습니다. 보편적 성격을 지닌 이 법은 '초등교육 황금법'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나, 결국 실행되지 못했습니다.
섭정 시기에는 '추가법(Additional Act)'이라 불리는 헌법 개정이 이루어져, 고등교육은 중앙 정부의 책임으로 하고 초등교육·중등교육·교사 양성은 각 주의 책임으로 하도록 결정되었습니다. 이러한 권한 분산은 투자 조율과 지역 간 평등한 시각을 잃게 만들어 교육에 악영향을 미쳤지만, 이 결정은 오늘날까지 유지되고 있습니다.
1920년대에는 교육 문제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중심이 된 '신학파(Escola Nova)' 운동이 등장하여 교육 환경의 변화와 함께, 아동·청소년 교육을 위한 아이디어와 방안을 조율하는 국가의 새로운 역할을 제안했습니다.
1945년 에스타두 노부(Estado Novo) 체제가 붕괴한 후, '국민교육의 방향과 기준에 관한 법률(LDB)' 제안이 등장합니다. 이 법안은 여러 해에 걸쳐 심의되다가 1961년에야 최종 승인되었습니다(법률 제4024호). 이는 공립·보편적·무상 학교를 옹호하는 운동이었습니다. 이 시기 교육 분야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정표가 세워졌는데, 아래 표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연도 | 내용 |
1951 | CAPES 재단(고등교육 인력 향상 조정국) 창설 |
1961 | 연방 교육위원회 설치 |
1971 | 초등교육 8년 의무화 확정, 1급·2급 학교 구분 용어 사용 시작 |
1996 | '기초교육'과 '중등교육'(모두 기초교육에 속함) 명칭 사용 시작. 유아교육도 통합되어 국가적 차원에서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됨 |
1988년 브라질 헌법이 공포되면서 초등교육이 보편화되었고, 국가 차원의 문맹 퇴치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습니다.
여전히 갈 길이 먼 브라질 교육
20세기와 21세기에 걸쳐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라질 교육은 여전히 심각하고 시급한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열악한 학교 인프라, 교사 자질 부족, 교육의 질에 따른 지역 격차, 여전히 남아 있는 문맹, 기능적 문맹 문제, 공교육과 사교육 간의 격차 등으로 인해 브라질은 학생 학습 능력에 관한 국제 평가에서 최하위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브라질 국민의 기초 교육 부족은 경제, 사회, 문화 등 다른 영역으로 파급되는 결과를 낳습니다. 빈부 격차는 더욱 심화되며, 도시 폭력과 부패 같은 문제는 우리 사회의 만성적인 고질병으로 남아 있습니다.
탁아소와 유치원 단계의 기초교육부터 대학의 첨단 연구에 이르기까지, 모든 브라질 국민을 위한 양질의 교육을 담보할 수 있는 장기적이고 일관되며 포용적인 교육 계획은, 어떤 정당이나 이념을 지닌 정부든 반드시 우선순위로 삼아야 할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