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공산주의자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1939년 8월, 유럽 전역의 공산주의자들은 뜻밖에도 포위된 폴란드를 옹호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수치스러운 짓이다! 공포와 배신이다!" 그들은 외쳤다. 프롤레타리아 이상을 맹목적으로 믿어온 당원들은 스탈린이 히틀러와 동맹을 맺었다는 사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어떤 이들은 폴란드의 '제4차 분할'을 지켜보느니 차라리 자살을 선택하기도 했다.

전간기 서구 국가에서 공산당은 나름대로 탄탄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당원들은 공산주의가 유일하게 올바른 이념이라고 확신했고, 코민테른(공산주의 인터내셔널) 소속으로 부르주아지에 맞서는 노동계급 투쟁에 관한 모스크바의 지시를 따랐다.

그러나 세계 혁명을 배경으로 한 이 유토피아적 비전에는 거대한 균열이 생겼다. 그 원인은 바로 1939년 8월 23일 체결된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이었다. 독일과 소련은 비밀 의정서를 포함한 합의 내용을 맹렬히 실행에 옮겼다. 9월 1일 히틀러가 폴란드를 침공했고, 9월 17일에는 스탈린이 "민간인 보호"라는 명분으로 진격해 들어왔다.

이념 투쟁의 종말인가?

요아힘 폰 리벤트로프와 뱌체슬라프 몰로토프가 획정한 새로운 국경에서 두 독재자의 군대는 서로 우호를 나누며 전리품을 분배했고, 심지어 브레스트리토프스크에서처럼 합동 퍼레이드까지 열었다.

그때까지 완강한 공산주의자들은 파시스트와의 어떠한 협력도 절대적으로 배제해 왔다. 수년간 히틀러와 무솔리니의 추종자들이 자신들의 최대 적이라고 교육받아 왔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 … 공산주의자들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루블린에서 악수하는 독일군과 소련군 장병.

'악마의 계약(Devil's Pact)'의 저자 로저 무어하우스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 1939년 여름,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정면으로 충돌하던 이념적으로 분명했던 세계의 양극성이 흐려지기 시작한 듯했다.

1939년 당시 영국 공산당원이었던 케네스 로빈슨(훗날 노동부 장관)은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소식이 자신에게 큰 충격이었다고 회고했다.

파시스트 폴란드는 지키지 않는다!

모스크바의 지시가 곧이어 내려왔고, 환상의 여지는 없었다. 노동계급은 파시스트 폴란드를 방어할 수 없으며, 파시스트 국가와 민주주의 국가를 가르던 구분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두 진영으로 갈라졌다. 한 진영에는 모스크바의 복음을 맹목적으로 믿는 스탈린의 충실한 추종자들이 있었다. 그들에게 상황은 명료했고 한 문장으로 요약되었다.

소련 지도자들은 전 세계 노동계급 앞에서 소련 방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었으며, 필요하다면 악마와도 동맹을 맺을 수 있었다. (R. 무어하우스, '악마의 계약: 히틀러와 스탈린의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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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진영에는 이념과 계급 투쟁을 굳게 믿는 이들이 있었고, 그들은 파시즘을 붕괴하는 자본주의의 마지막 발작으로 보았다.

만국의 프롤레타리아여, 어찌 보는가?

프랑스에서 활동가들은 "노선 변경"에 복종할 생각이 없었다. 불만을 품은 그들은 당원증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당에서 탈당했다. 그 결과 프랑스 공산당은 보유한 73석 중 21석을 잃었다.

프랑스 최대 노조 내에서도 요동이 일었다. 노조 지도부는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의 지지자들을 조직 안에 용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조약 규탄을 거부하는 자는 즉각 축출되었다.

많은 독일 공산주의자들은 그런 협정이 가능하리라고 믿지 못했다. 그들은 히틀러 집권 후 겪었던 가혹한 박해를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갑자기 히틀러를 극찬하라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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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을 히틀러와 스탈린의 신혼부부로 묘사한 만평.

당 조직은 사실상 궤멸적인 타격을 입었고, 활동가들은 감옥에 갇혔으며 살아남은 이들은 깊숙이 지하로 숨어들었다. 독소 협정 소식이 그들에게 닿았을 때 그들은 단 하나의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스탈린은 어떻게 우리에게 이럴 수 있는가?

로저 무어하우스가 '악마의 계약: 히틀러와 스탈린의 동맹'에서 기술한 바에 따르면, 한 불굴의 공산주의자는 소련의 폴란드 침공 소식에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자살했다.

수치스러운 짓이다!

오스트리아 출신 언론인 루트 폰 마옌부르크는 귀족 가문 출신이었지만 오스트리아 공산당의 열렬한 당원이었다. 1930년대에는 나치 독일에서 첩보 활동까지 수행했으며, 시간이 지나면서 코민테른 활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1938년, 히틀러에게 병합될 오스트리아에서 자신을 기다릴 운명이 두려워진 그녀는 모스크바로 떠났다. 조약 소식을 접했을 때 그녀는 충격에 빠졌다. 감정이 격해진 그녀는 스탈린의 행동을 도저히 납득할 수 없었다.

그것은 정말로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우리는 그로 인한 수치심을 극복하지 못했다.

또 다른 공산주의 활동가인 비어트리스 웹도 리벤트로프-몰로토프 조약을 평가하며 아까운 표현을 아끼지 않았다. 영국 사회주의의 베테랑(1939년 당시 81세)인 그녀는 이 협정을 공포이자 수치이며 명예 없는 행위라고 규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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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함께 소련을 방문한 비어트리스 웹.

시간이 흐른 뒤에야 그녀는 소심하게나마 스탈린을 변호했다. 비록 꽤 교활한 수법을 썼지만, 스탈린이 자국군을 파괴적인 추축국과 연합국의 전쟁 밖에 머물게 한 것은 결과적으로 다행이라는 결론이었다. 그러나 문제의 본질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로저 무어하우스는 저서 '악마의 계약: 히틀러와 스탈린의 동맹'에서 그녀의 견해를 인용한다.

"스탈린과 몰로토프는 유럽의 '평화 파괴자'가 되었고", 소련의 폴란드 진주는 "'국제적 무도덕의 기념비'였다." 그녀는 이것이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비극"이라고 말했다. 폴란드인들의 참담한 운명 때문이 아니라, 그녀가 사랑하던 소련이 "도덕적 위신"을 스스로 낭비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출처

로저 무어하우스, 악마의 계약(Devils' Pact), Znak Horyzont, 크라쿠프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