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돌프 히틀러는 1937년, 즉 제2차 세계대전 발발보다 무려 2년이나 앞서 전쟁을 일으키려던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경기장 건설을 꿈꿨고, 제3제국의 지도자와의 하룻밤을 꿈꾸며 열광하는 여성 팬들까지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교과서에는 결코 실리지 않는 아돌프 히틀러의 삶 속 10가지 사실을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이번 TOP 10 목록은 그동안 발표된 아돌프 히틀러 관련 기사들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당신이 몰랐을 히틀러 이야기
10. 독일 경제를 살린 것이 아니라 오히려 망쳤다
히틀러가 독일 경제를 부흥시켰다는 통념과 달리, 실상은 정반대였습니다. 불과 6년 만에 독일은 환산 약 3,700억 유로에 달하는 빚을 짊어졌고, 이미 1938년에는 제3제국이 파산 직전까지 내몰려 있었습니다.
9. 독일에서 기독교를 폐지하려 했다
나치에게 기독교란 단지 '유태인의 동화'에 불과했습니다. 제3제국의 지도자는 대신 새로운 '독일 종교'를 도입할 계획까지 세우고 있었다고 합니다.
8. 보기 드물 만큼 열광적인 여성 팬층을 거느렸다
그를 보면 미쳐 날뛰던 열성적인 팬들이 무수히 많았습니다. 독일 전역의 여성들은 수천 통에 달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그가 받은 우편물의 총량은 믹 재거와 비틀스 멤버 네 명이 받은 것을 모두 합친 양보다 많았습니다.
7. 세계 최대 규모의 스포츠 경기장을 건설하려 했다
이 기념비적인 구조물은 뉘른베르크에 세워질 예정이었습니다. 완공된다면 무려 50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경기장이 될 뻔했습니다.
6. 분노에 격해 1937년에 이미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킬 뻔했다
제3제국 지도자의 분노를 자아낸 원인은 스페인 정부 공군에 의한 포켓 전함 '도이칠란트' 폭격이었습니다. 결국 참모들의 만류로 히틀러는 스페인에 선전포고를 하지 않았고, 덕분에 세계 대전의 위협은 2년간 잠재워졌습니다.
5. 미국에서 일련의 테러 공격을 계획했다
특수 훈련을 마친 파괴 공작원 8명이 대서양 건너 미국으로 파견되었고, 주요 표적은 뉴욕이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계획은 어긋나고 말았습니다. 요원들은 공작 수행 대신 매춘부와 술에 탐닉하며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4. 제3제국의 패망이 눈앞에 와서도 독일인들에게 사랑받았다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증거는 1944년 7월 20일 실패한 암살 시도 소식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암살 기획자들은 널리 비난받았고, 체제는 오히려 더욱 강화되었으며, 사람들은 지도자에 대한 지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습니다.
3. '나의 투쟁'의 유일한 저자가 아니었다
열렬한 반유태주의자이자 가톨릭 사제였던 베른하르트 슈템플레가 나치즘의 '성경'이라 불리는 이 책의 최종 형태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러나 결국 이것이 그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는 '긴 칼의 밤' 사건의 희생자 중 한 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2. 젊은 시절 빈의 매춘부로부터 매독에 걸렸을 가능성이 있다
매독이 웅변가였던 그를 무한한 권력에 굶주린 악마 같은 괴물로 변모시켰다는 가설이 제기되어 왔습니다. 물론 이 주장은 확증된 사실이라기보다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어 온 해석 중 하나입니다.
1. 유즈프 피우수트스키 사후 국가 애도를 선포하지 않았다
당시 외국의 지도자가 서거하면 제3제국 원수에게 주어지는 예우와 동등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그럼에도 히틀러는 폴란드 지도자 피우수트스키의 죽음에 대해 독일에 국가 애도를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흥미롭게도 프랑스에서는 정확히 동일한 규모의 추모 행사가 거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