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적 방어전의 한 달, 1939년 9월
극적인 사건들, 초인적인 영웅심, 그리고 독일군의 잔혹한 만행까지. 1939년 9월은 폴란드 역사상 가장 드라마틱하면서도 비참한 시기였습니다. 이 목록의 열 가지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번 TOP10의 모든 항목은 지난 기사들을 바탕으로 엄선했습니다. 이번 주제는 1939년 9월, 독일과 소련 양측에 맞서 벌어진 전투의 사건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카테고리에서 더 많은 관련 글을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0. 바르샤바의 참화는 5년 전인 1939년에 이미 시작되었다
1944년 봉기 당시 독일군은 이미 시작된 살육의 마무리를 지었을 뿐입니다. 바르샤바는 이미 5년 전, 1939년 9월에 폐허가 되어 있었습니다. 심지어 독일에서조차 파괴된 도시의 광경에 동정을 느낀 이들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끔찍해서 여기서 잠시도 일상을 즐길 수가 없다"고 한 독일인이 남긴 기록입니다.

9. 폴란드군이 독일 도시를 점령했던 순간
폴란드 병사들은 9월 캠페인 첫날 독일 본토로 진격해 독일 도시 하나를 점령했습니다. 이들의 기습은 현지에 진짜 공황을 일으켰습니다. 주변 도로는 도시 당국자를 포함한 피난민들로 붐볐고, 국방군 병사들은 황급히 후퇴했습니다. 완벽한 기습이자 완벽한 성공이었습니다.

8. '기사도의 국방군'이라는 미명 뒤에 숨겨진 잔혹함
독일 병사들은 어디에서나 폴란드 게릴라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너무나 겁에 질려 9월 4일 첸스토호바에서 스스로 총성을 퍼부었습니다. 이른바 '배신적인 매복 공격'에 대한 보복이라는 명목으로 200명이 넘는 무고한 폴란드인을 학살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면도칼이나 면도기를 소지했다는 이유만으로 살해당했습니다. '기사도를 지키는 국방군'이라는 신화는 실제로는 겁 많고 야만적으로 잔혹한 집단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냅니다.

7. 므와바 방어선을 지켜낸 '철의 사단'
폴란드군은 바르샤바로 통하는 길목을 막은 므와바(Mława) 인근 요새 방어선을 사흘 동안 영웅적으로 사수했습니다. 지상과 공중에서 퍼붓는 폭격 속에서도 단 두 대의 탱켓트(tankette) 지원만으로 버텨낸 그들에게 '철의 사단'이라는 이름은 과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포위될 위기에 처해서야 후퇴를 선택했습니다. 그러나 독일군에게 명예도 자비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후퇴하는 병사들마저 학살했습니다.

6. 전쟁 준비를 '공황'이라며 조롱받던 사람들
1939년, 전쟁에 대비해 물자를 비추던 사람들은 종종 겁쟁이로 매도되고 조롱거리가 되었습니다. 좀 더 여유 있고 신중한 이들은 이미 겨울부터 식량이나 장작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친구들은 물론 심지어 자신의 배우자에게도 몰래 준비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폴란드인은 폴란드군의 강대함을 알리는 선전을 믿으며 이런 준비를 웃어넘겼습니다.

5. 소련에 맞서 싸운 유일한 도시, 그로드노
그로드노(Grodno)는 소련의 침공에 맞서 저항한 유일한 폴란드 도시였습니다. 붉은 군대 선발대가 건물로 들이닥치자 폴란드 병사들과 이들을 지원하는 시민들은 진짜 '전차 사냥'을 벌였습니다. 이에 대한 보복으로 소련 병사들은 충격적인 행동을 저질렀습니다. 폴란드 아이들을 전차 장갑에 묶어 인질로 삼은 것입니다.

4.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던 패배
1939년 9월의 패배는 처음부터 기정사실이었습니다. 설령 폴란드군이 독일의 공세를 성공적으로 막아냈다 해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스탈린이 몰로토프-리벤트로프 밀약의 내용을 어차피 이행했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그는 제2폴란드 공화국의 뒷통수를 치며 공격해 왔을 것입니다. 폴란드에는 애초에 승산이 없었습니다.

3. 산 채로 불태워진 폴란드 포로들
9월 말, 독일군은 약 100명의 폴란드 보병을 산 채로 잔혹하게 불태워 죽였습니다. 포로는 헤이그 협약에 따라 보호받아야 했지만, 히틀러의 추종자들에게 자비란 없었습니다. 포로로 잡힌 수천 명의 폴란드 병사가 이들의 손에 살해당했습니다.

2. 최고의 명성을 지닌 잠수함의 함장은 탈영병이었다
폴란드에서 가장 유명한 잠수함 ORP 오르제우(Orzeł)의 함장은 알고 보면 평범한 탈영병이었습니다. 부대가 에스토니아 탈린 항에 입항했을 때 함장 헨리크 클로츠코프스키(Kłoczkowski) 중령은 갑판을 내려 승무원들을 운명에 맡긴 채 사라졌습니다. 그는 잊히지 않을 불명예를 뒤집어썼고, 전쟁 중 심판은 그에게 닿았습니다.

1. 베스테르플라테 공격은 단 두 차례뿐이었다
독일군이 베스테르플라테(Westerplatte)에 감행한 것은 단 두 차례의 강습과 한 차례의 무력 정찰이 전부였습니다. 13~14차례의 총공격과 19차례의 야습에 대한 이야기는 동화로 분류해야 합니다. 그단스크의 이 폴란드 거점의 영웅적인 방어에 얽힌 신화는 이 외에도 무궁무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