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재자의 자식이라면 뭐든 가질 수 있을까?
독재자의 자녀들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입니다. 아버지가 국가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인물이니, 고개만 끄덕여도 자녀의 어떤 소원이든 실현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동전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바로 이 참주자들이 한마디면 자식을 영원히 지워버릴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독재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이미지 관리는 철저히 해야 합니다. 모든 폭군이 알고 있는 사실이죠. 그리고 언젠가 측근 중 누군가 '제1가족'의 완벽한 이미지에 더 이상 맞지 않는 순간이 찾아옵니다. 자신을 위해서라면 검은 양은 제거되어야 합니다. 설령 그것이 국부(國父)의 혈육일지라도 말입니다.
물론 일은 어느 정도 신중하게 처리해야겠죠. 그러라고 비밀경찰과 믿음직한 협력자들이 있는 것이니까요.
정신병원에서 썩게 내버려 두어라
무솔리니는 아내 라켈레 외에는 세상 누구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공공연히 밝혔습니다. 선전 요원들은 지도자에게 라켈레가 나타난 이후로는 다른 여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확언했습니다.
가난한 시절 이야기니 안 믿을 수 없지만, 단 하나의 작은 문제가 있었을 뿐입니다. 무솔리니가 라켈레를 미치도록 사랑한다고 하고 그녀와 딸까지 두었지만, 결혼 한 달 전… 다른 여성과의 관계에서 아들 베니토 알비노를 얻었다는 사실입니다.

베니토 무솔리니에게는 부끄러운 비밀이 있었습니다.
아이의 어머니이다 달세르는 무솔리니가 가난한 기자였던 시절 그로부터 결혼을 약속받았습니다. 『독재자의 자식들』의 저자 중 한 명인 미셸 오스탱의 기록에 따르면, 이다는
"[…] 자신을 그의 아내로 행세하며 스캔들을 거듭 일으켰다. 무솔리니는 이를 빌미 삼아 그녀를 베네치아의 폐쇄 정신병원 산클레멘테에 감금했고, 이다는 1937년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두체(총통)가 한 문제를 제거하고 나니, 또 다른 문제가 남았습니다. 바로 자신의 이름을 물려받은 아들이었죠. 베니토 알비노는 해군에 입대해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집니다. 그의 이후 행적은 재구성하기 어렵습니다.
한 가지 설에 따르면, 극동에서 돌아온 그는 어머니처럼 폐쇄된 시설에 수용되었고, 1942년 그곳에서 사망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남에게 넘겨 버려라
허쯔전은 젊고 아름다운 공산주의자로, 1928년 마오쩌둥에게 소개되었고 곧 부부가 됩니다. 당시 중국은 내전 중이었고 두 사람 모두 그 전쟁에 휘말려 있었습니다. 허쯔전이 아이를 낳기 시작하자 장래의 주석 마오는 좋아할 리가 없었습니다. 『독재자의 자식들』에서 장크리스토프 브리자르는 이렇게 적습니다.
"[…] 중국 공산 게릴라의 수장은 무한한 부성애를 보여주지 않았다. 1930년대에 그는 세 번째 아내 허쯔전에게 갓난아기 최소 두 명을 시골 주민들에게 맡기도록 강요하지 않았던가?! 내전 중에 갓난아기를 짐으로 떠안는 것은 논외였다."

마오쩌둥과 허쯔전.
마오가 대장정(長征)에 나설 때 허쯔전은 임신 5개월이었습니다. 마오는 단 한 번의 망설임도 없이 출발했고, 배가 점점 불러오는 아내가 따라올 수 있을지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마오는 자기 자식에게 무슨 일이 벌어지든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사업'에서 발목이 잡히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허쯔전은 이런 이념적 헌신을 공유하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끝내 아이들 생각을 접지 못했고, 전쟁이 끝나자 아이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아들을 찾은 듯싶던 순간, 또 다른 어머니가 나타났습니다. 그녀 역시 자기 아이를 찾고 있었고, 물론 같은 남자를 자기 아들로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당연히 중국 공산당은 후자의 편을 들었습니다. 애초에 마오는 아버지 노릇을 할 생각이 없었으니까요. 남편에게 직접 호소하는 것도 소용없었습니다. 아내의 간청에 수장은 도와줄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자신에게 너무 창피한 일이 될 테니까요.
자식의 운명을 함부로 처분하지 말라
강력한 자석처럼 여성을 끌어당긴 광적인 혁명가 피델 카스트로는 유력 가문의 딸과 결혼합니다. 연인 미르타 디아스 발라르트의 친척들은 몇 년 뒤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과 완벽하게 어울리게 됩니다.
부부 사이에는 아들 피델리토가 태어나고, 아이는 아버지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그러나 쿠바 혁명이 일어나면서 모든 것이 변합니다. 피델과 다른 혁명가들이 바티스타 타도를 위해 싸우기 시작했고, 산티아고데쿠바 몽카다 병영 습격으로 유죄 판결을 받으면서입니다. 동지 카스트로의 위대한 승리 대신 그를 기다리는 것은 15년형이었습니다.
피델의 결혼 생활도 순탄치 않았습니다. 미르타는 남편의 혁명적 열망에 전혀 공감하지 않았고, 점점 멀어져 갑니다.

피델에게는 아들보다 자신이 우두머리임을 보여주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카스트로가 감옥에 있는 동안 아내는 부처 서기로 일하기 시작합니다. 1953년, 미르타는 이혼 소송을 제기해 승소하고 아들의 양육권까지 가져갑니다. 피델은 분노로 화답합니다.
지금까지 아이에게 특별한 애착을 보인 적 없으면서도, 그는 아이를 데려오려 합니다(당시 피델리토는 어머니와 함께 마이애미에 살고 있었습니다). 『독재자의 자식들』의 저자 중 한 명인 야코보 마호베르는 이렇게 씁니다.
"피델은 그런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도 않았다. 그는 아들을 되찾으려 했다. 진정한 부성애가 아니라 장모 쪽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두려움이 그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불쌍한 피델리토는 이후 세 차례 납치된다. 부모가 번갈아 그를 붙잡아 간 것이다."

어른이 된 피델리토는 은둔 저택에서 경비를 받으며 살면서도 계속 아버지를 숭배했습니다.
결국 꾀에 의해 아이는 아버지 곁에 들어섭니다. 처음에 피델은 그를 돌보며 곁에 두고 다닙니다. 그러나 자식에 대한 관심은 급속히 식어갑니다. 엘 코만단테는 아들을 밀어냈고, 아이는 친아버지보다 삼촌 라울과 더 많은 시간을 보냅니다. 마침내 그는 먼 모스크바로 유학을 떠납니다. 졸업 후 쿠바로 돌아와 원자력위원회 국장이 될 예정이었지만, 대신… 철저히 경비된 저택에 들어가고 맙니다.
아버지는 더 이상 그를 좋아하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래도 피델리토는 여전히 아버지를 숭배했습니다. 독재자는 사실상 아들의 정신을 파괴해 버린 것입니다.
참고 문헌
이 글은 『독재자의 자식들』(Children of Dictators, Znak Horyzont, 2015)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