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사병을 생물학 무기로 사용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다. 이 사실은 카파(Kaffa)의 주민들이 뼈저리게 깨달았다. 성벽 너머로 날아든 시체들은 도시 주민들에게 닥친 불행의 시작에 불과했다. 곧 밝혀지듯, 그 불행은 결코 그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인류는 수천 년 동안 페스트(흑사병)와 함께 살아왔다. 이 무서운 세균의 게놈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은 여전히 이 세균이 상대적으로 무해한 예르시니아 슈도투버큘로시스(Yersinia pseudotuberculosis)에서 돌연변이를 통해 언제 갈라져 나왔는지를 두고 논쟁을 벌이고 있다.
모든 정황에 따르면 흑사병은 청동기 시대에 외부 기생충, 즉 이와 쥐의 몸속에서 인간 간 전염 능력을 획득했다. 그 이후로 세계는 세 차례의 대규모 페스트 범유행에 시달렸으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도 당시 '카파'로 불리던, 오늘날의 테오도시아(Theodosia)에 대한 포위전으로 시작되었을 것이다.
신의 응징
"주님의 탄생으로부터 천삼백사십팔 년, 이탈리아 도시들의 보석인 명문 도시 피렌체에서 하늘의 별들의 영향으로, 혹은 우리의 죄를 징벌하시려 하나님께서 올바르게 내리신 페스트가 발생했다."
"그 전염병은 몇 해 전 동방에서 시작되어 그곳에 큰 참화를 일으켰다. 서서히 한곳에서 다른 곳으로 옮겨가며 서양 여러 나라로 번져갔다. 인간의 예방책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용된 사람들이 도시를 청소해도 도움이 되지 않았고, 병자의 도시 출입을 금하는 조치도, 건강을 지키기 위한 여러 경고나 겸손한 기도, 행렬, 그 모든 경건한 선행도 헛수고였다." — 조반니 보카치오는 그의 유명한 데카메론을 이렇게 시작한다.
페스트는 인류를 여러 차례 강타하며 인구를 몰살시켰다.
이 글에서 분명히 드러나듯, 14세기 사람들은 아시아와 유럽을 휩쓸던 이 질병이 정확히 무엇인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어떤 경로로 이동하는지조차 조금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의학적·생물학적 지식이 부족했음에도 예르시니아 페스티스(Yersinia pestis)는 이미 군사적 목적으로 활용되고 있었다. 보카치오가 한 가지 맞힌 것이 있다면, 발병에는 시체—푸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시체—가 관여했다는 점이다.
불운한 카파
"1346년 흑해의 제노바 상관이었던 카파를 킵차크 한국(金帳汗國)의 몽골군이 포위하는 과정에서 전염병이 시작되었다"라고 크리스티앙 그라탈루(Christian Grataloup)의 세계사 아틀라스에 나온다. "역병에 시달린 침략자들은 투석기를 이용해 병자의 시체를 성 안으로 던져 넣었다. 1347년부터 카파를 떠난 제노바 선박들이 지중해 전역으로 페스트를 옮겼다. 콘스탄티노플, 제노바, 마르세유가 그것이다. 1348년에는 전염병이 카이로와 파리까지 도달한다. 이 병종에 대한 항체가 없던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소니아 드라가 출판사에서 막 출간된 크리스티앙 그라탈루의 '세계사 아틀라스'는 21세기의 시각에서 인류의 역사를 조명한다.
일부 역사가들에 따르면 바로 그때 주민들이 감염되었고, 그 결과 새로운 변종의 위험한 세균이 서쪽, 즉 유럽 깊숙이 전파되었다. 새 '아틀라스'에 실린 지도의 알기 쉬운 표식 덕분에 우리는 이후 몇 년간 예르시니아가 어떤 도시들을 차례로 덮쳤는지 확인할 수 있다.
1347년에는 콘스탄티노플(6세기 이전 범유행 당시 인구의 5분의 1이 목숨을 잃었던 곳)을 두 번째로 덮쳤고, 제노바와 메시나도 거쳐 1348년에는 파리, 베오그라드, 카이로에 도달했다. 이듬해에는 여러 섬들을 거쳐 뉘른베르크와 메카의 시민들을 감염시켰고, 마침내 1350년에는 브레멘과 베르겐을 비롯한 유럽 북부 끝자락까지 닿았다.
치명적인 무기
이 병은 카파 성벽에 닿기 전부터 이미 킵차크 한국을 괴롭히고 있었다. '전쟁은 진보를 낳는다'는 진부한 격언은 오래전에 퇴색했지만, 몽골인들이 시체를 투석기에 실어 날리는 데 상당한 재주를 보였다는 것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이것이 세계 최초의 생물학 무기 사용이었을 것이다—완전히 의식적이지는 않았겠지만, 분명히 효과적이었다.
오늘날에는 카파에서 출항한 배들이 세균의 유일한 매개체는 아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세균은 같은 해 여러 경로를 통해 서쪽으로 퍼져나갔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세계사 아틀라스'에 실린 지도에서도 충분히 추론할 수 있다.
카파를 공격한 자들은 극도로 비윤리적인 전술로 도시 안에 거대한 역병의 진원지를 만들어냈다. 그럼에도 불운한 도시는 침략자와 역병 이후에도 기사회생하여, 이미 1430년에는 여행자 페드로 타후르(Pedro Tafur)가 여러 문화가 어우러지는 활기찬 곳으로 묘사할 정도로 되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