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넘게 인기를 누려온 '바디 월드(Body Worlds)' 전시는 수많은 관람 기록을 세워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전시의 아이디어는 결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평소에는 보이지 않고 신비와 미스터리에 둘러싸여 있으며, 심지어 불가능해 보이는 것들 – 우리 몸속의 풍경, 기이한 동식물, 물리 법칙을 거스르는 장치들. 지식이 풍부하고 열린 마음을 가진 사람만이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놀라운 형태로 전시된 것들이죠. 이것이야말로 르네상스 이래로 호기심 많은 사람들을 매료시켜 온 '진기함'의 정수입니다.
쿤스트카메라(Kunstkammer)라고도 불리고, 분더카머(Wunderkammer) 혹은 '기이한 방', '경이로움의 창고'로 불린 이곳들은 가구가 아니라 기이하고 신비로운 것들의 컬렉션으로 가득 찬 방이었습니다. 16세기 말, 자연 세계에 대한 매혹과 자연과학의 부흥과 함께 등장한 것으로 추정됩니다(물론 그로테스크하고 섬뜩한 전시의 첫 사례는 아니었습니다).
식물, 동물, 그리고 용
이탈리아의 박물학자 울리세 알드로반디(Ulisse Aldrovandi)는 자연사 학문의 아버지로 인정받는 인물입니다. 그의 일대기에는 다양한 모험이 담겨 있는데, 교회 교리에 반하는 이단 혐의로 1년 가까이 구금당한 일도 포함됩니다. 그럼에도 그는 이 시기에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당대의 많은 과학자들과 교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이 무렵, 1549년과 1550년을 전후해서 알드로반디는 식물학, 동물학, 지질학 같은 자연과학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됩니다.

울리세 알드로반디
1553년에는 의학과 철학 분야의 학위를 받았고, 1554년부터 볼로냐 대학교에서 강의를 시작하며 세계 최초의 자연과학 교수가 되었습니다. 그는 끊임없이 연구 탐사를 조직해 컬렉션을 확장했고, 그의 소장품은 곧 세계 최초의 진기한 수집품실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컬렉션의 규모는 오늘날에도 감탄을 자아낼 정도입니다.
알드로반디의 컬렉션에는 약 7,000개의 표본이 있었습니다. 이 전시는 그가 '자연사'라고 명명한 자연의 위대한 작업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오 13세의 도움으로 볼로냐에 최초의 식물원을 설립할 허가와 자금을 얻었고, 저서 출판도 가능해졌습니다.
방대한 식물과 동물을 연구하던 알드로반디는 존재를 설명할 수 없는 다양한 생명체들을 여러 차례 마주하게 되었고, 이들 역시 진기한 표본으로서 컬렉션에 포함시켰습니다. 학자는 서재를 천천히 채워가는 이 기괴한 표본들에 대한 호기심에 사로잡혔습니다. 저서 『괴물의 역사(Monstrorum Historia)』에서는 '독수리 다리를 가진 양성 인간 괴물' 같은 경이로운 사례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또한 알드로반디의 컬렉션에는 용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볼로냐의 책들과 식물원과 달리, 이런 진기한 소장품들은 우리 시대까지 전해지지 못했습니다.
토하는 독수리와 영구기관
발명가이자 음악 이론가, 의사, 종교 전문가였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Athanasius Kircher) 역시 자신만의 컬렉션을 갖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의 수집은 기이한 동식물에 국한되지 않았습니다. "말라리아와 페스트 치료 전문가였던 아타나시우스 키르허의 연구실에서는 토하는 독수리, 영구기관, 끊김 없는 나사산 하나짜리 나사, 그리고 의학적 진기함들이 한데 모인 컬렉션을 볼 수 있었다" – 네이선 벨로프스키(Nathan Belofsky)의 『예전에는 어떻게 치료했을까』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키르헤리아눔 박물관(Museum Kircherianum)에서 감상할 수 있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키르허
키르허는 멀리서 가져온 악기들과 예술 작품들로 컬렉션을 끊임없이 확장해 나갔습니다. 안타깝게도 그가 사망한 후 박물관은 잊혀져 갔습니다. 예수회 수사 콘투치오 콘투치(Contuccio Contucci)가 1735년부터 1765년까지 관장직을 맡으며 재개를 시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박물관은 다시 문을 닫았습니다. 표본들은 점차 다른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일부는 유실되거나 파손되고 말았습니다.
식물 양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진기한 수집품실은 코펜하겐의 워미아눔(Wormianum)입니다. 17세기 올레 워름(Ole Worm)이 설립한 이곳은 독특한 표본 덕분에 수많은 방문객을 끌어모았습니다. 바로 열매처럼 새끼를 낳는다는 '타르타리아의 식물 양'입니다. 이 '동식물 하이브리드'는 비범한 희귀품으로 여겨졌으며, 가장 기이한 양치식물에 속하는 것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과학 수집품실에 흥미로운 여러 특이한 골동품의 자연사를 배우기 위한 사전』에서도 이 식물에 대한 묘사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 어떤 저자들은 이것이 약초, 즉 타타르의 양이라고 이해했습니다. 양과 닮았고, 부드러운 양털로 덮여 있으며, 주변에 자라는 다른 약초를 먹어치우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확실해졌습니다. 이 양은 솜털로 덮인 양치식물 뿌리의 기부 외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을요. 뿌리의 배열을 보면 다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식물 기부의 돌기들이 머리와 귀를 이룹니다. 이런 종류의 양치식물은 볼가강 삼마라 근처에서 발견됩니다
- 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식물 양의 인기는 곧 워낙 커져서 다른 수집가들도 자신의 컬렉션에 포함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식물 양은 암스테르담의 얀 스바메르담(Jan Swammerdam)이나 단치히(그단스크)의 요한 필립 브라이네(Johann Philipp Breyne)의 진기한 수집품실에도 들어서게 됩니다. 결국 브라이네가 이 양에 관한 이야기 전체가 날조된 것이며, 대중에게 전시된 전시품들은 목재와 식물 섬유로 정교하게 만든 조각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고 말았습니다...
살아있는 듯한 육신
림프계의 발견자이자 장기 보존 기술의 선구자인 프레데릭 루이슈(Frederik Ruysch)는 현대의 바디 월드 전시와 가장 가까운 인물입니다. 인간의 시신이나 처리된 뼈로 구성된 전시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 고대에도 비슷한 '박물관'이 존재했다는 증거는 대플리니우스의 기록 등에서 찾아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루이슈는 이 문제에 좀 더... 인간적으로 접근했습니다.
실제 시신으로 인체의 정교함을 최대한 생생하게 보여주기 위해, 네덜란드의 해부학자 루이슈는 시신들을 특별히 준비된 배치 – 디오라마 – 로 배열했습니다. 오늘날 조형 작업과 더 연관된 다양한 장면을 담은 형태에 실제 보존된 시신을 채워 넣은 것이죠. 그는 대체 어떻게 부패의 파괴적인 영향으로부터 시신을 보호했을까요? 그 비밀은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지만, 돼지 피가 재료 중 하나였을 가능성은 알려져 있습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비밀 liquor balsamicum(발삼 액)에 제우스와 포세이돈의 영혼이 담겨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프레데릭 루이슈
루이슈는 황화수은으로 시신을 염색하는 처방과 기술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는데, 이는 시신에 붉고 거의 '살아있는 듯한' 색을 부여했습니다. 덕분에 루이슈 전시의 방문객들은 전시품의 피부 아래 혈관망까지 선명하게 볼 수 있었습니다.
루이슈 박물관을 위해 준비된 각 장면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습니다 – 대개 도덕적 교훈이었죠. 예를 들어, 진주 목걸이를 쥔 주름진 시신은 물질적 부의 허영에 대한 은유였습니다. 전시 장식은 루이슈의 딸이 도왔습니다.
과학은 물러나고, 오락만 남다
이후 세기에 진기한 수집품실들은 점차 과학적 성격을 잃고 공포와 매크브레의 응접실로 변해갔습니다. 자연사, 기술, 해부학 대신 비참한 사고의 희생자들, 식인종 부족, 참수 기법을 그린 그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물론 이 흐름에는 많은 예외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필라델피아 의과대학이 1858년에 설립한 머터 박물관(Mutter Museum)은 '미국 최고의 의학 박물관'으로 불립니다. 전시품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인상적입니다 – 두 개의 머리를 가진 아기, 축구공 크기의 난소, 3미터 길이의 인간 대장 – 하지만 동시에 상당한 교육적 가치도 지니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현대의 바디 월드 전시는 '뿌리로의 회귀'를 이루어내며, 매크브레와 기만 대신 과학과 미학에 크게 의존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