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부에 몰두하는 여성의 모습
편견으로 가득한 중세라는 시대
중세(Middle Ages)는 아마도 역사상 가장 많은 편견이 지속되고 있는 시기입니다. 이러한 선입견들은 결국 중세를 진실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것을 방해합니다.
특히 여성과 그 사회적 역할에 관해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중세 여성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었다'는 말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물론 어느 정도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결혼과 출산, 그리고 기대되던 덕목들
중세 시대에 소녀들은 12세부터 결혼할 수 있었고, 우리 눈에는 놀라워 보이는 수의 자녀를 낳아 기르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9~10명의 자녀도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당시의 규범에 따르면 올바른 여성의 행위란 언제나 겸손하고, 검소하고, 순결하며, 충실하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집안 살림과 그에 따른 모든 일은 사실상 전적으로 여성의 어깨에 떨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이것이 모든 여성에게 해당되는 것도 아니었고, 모든 곳에서 똑같이 적용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중세에 약초를 채집하는 여성의 모습
경제적으로 독립한 여성들의 존재
중세 시대의 수많은 공증 문서(notarial deeds)와 기타 역사 기록들을 살펴보면, 당시에도 경제적으로 독립적인 여성들이 상당수 존재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교사, 장인(職人), 산파, 약사, 노동자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여성들이 활발하게 일했고, 세금도 성실히 납부했습니다.
수녀원이라는 대안적 학문의 공간
공부 역시 중세 젊은 여성들에게 항상 불가능한 꿈만은 아니었습니다. 여성 작가와 여성 과학자들이 부족하지 않았으며, 이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받기 위해 기꺼이 수녀원에 들어갔습니다. 당시 여성이 체계적으로 학문을 익힐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장소가 수녀원이었기 때문입니다. 힐데가르트 폰 빙겐(Hildegard von Bingen)처럼 수녀원에서 의학, 음악, 신학을 두루 섭렵하며 뛰어난 업적을 남긴 여성들도 있었습니다.
여성도 행사했던 참정권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무려 여성들도 투표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시 회의든 농촌 회의든 여성들이 직접 참여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었고, 그 한 표는 남성의 표와 동일한 가치를 지녔습니다.
이처럼 중세 여성은 단순히 '아내'이자 '어머니'의 역할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편견 너머의 역사 기록을 들여다보면, 당시에도 다양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간 여성들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