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학교에서 가르쳐 주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숨겨진 사실 10가지

독일의 자살 특공 조종사, 유대인 100만 명과 트럭을 맞바꾸려던 제안, 러시아 나치당이 다스리던 괴뢰 국가까지. 여기 소개하는 10가지 이야기는 교과서에는 실리지 않은 제2차 세계대전의 이면담입니다.

이 글은 역사 콘텐츠 매체 '역사의 진기한 이야기(Curiosities of History)'에 게재된 기사들을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10. 1945년 4월, 독일도 자신들만의 카미카제 부대를 만들었다

제3제국의 멸망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독일 공군(루프트바페) 지휘부는 동맹국 일본을 본떠 조종사들에게 자살 임무를 부여하기로 결정합니다. 그러나 일본 조종사들과 달리 독일군의 표적은 취약한 함선이나 항공기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오데르 강의 다리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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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케불프 Fw 190 전투기. 에른스트 라이클(Ernst Reichl)이 조종한 바로 이 기종이 젤린(Zellin)의 포교 거점을 파괴했습니다.

9. 카틴에서 총살을 피해 살아남은 폴란드인 400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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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틴에서 NKVD에 의해 학살된 폴란드 장군들의 묘.

1940년 봄, 소비에트 당국은 21,000명이 넘는 폴란드 군인, 장교, 경찰을 학살했습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약 400명이 죽음의 수송 행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스탈린과 베리야가 왜 이들을 살려두었는지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8.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무차별 폭격의 표적은 도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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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3월 9일 밤부터 10일 새벽까지 이어진 공습의 희생자들.

드레스덴 중심가의 파괴는 연합군 무차별 융단폭격의 잔혹한 효율성을 상징하게 되었지만, 사실 이것이 이런 유형의 작전 중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것은 아니었습니다. 훨씬 더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곳은 일본의 수도였습니다.

1945년 3월 9일 밤부터 10일로 넘어가는 새벽, 미군 폭격기들은 도쿄에 2,000톤의 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도쿄 경찰 보고서에 따르면 97,000명이 사망하고 125,000명이 부상했으며, 약 25만 채의 건물이 불타 없어졌습니다.

7. 1942년, 독일은 미국 본토에서 테러를 일으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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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치 테러 공격의 표적은 바로 뉴욕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테러로부터 정확히 60년 전, 나치 독일은 비슷한 작전을 계획한 바 있습니다. 고전적인 테러 공격의 성격을 지닌 이 작전에는 '파스토리우스(Pastorius)'라는 코드명이 붙었고, 뉴욕을 주요 표적으로 삼은 8명의 파괴 공작원이 대서양을 건너 파견되었습니다. 그러나 계획은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요원들은 공격을 준비하기는커녕 매춘부와 술에 탐닉하는 데 더 열중했으니까요.

6. 미군 병사들은 일본인을 모두 죽이고 싶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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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을 끝내기 위해 미군 병사들은 일본인을 모두 없애는 것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의 작가들, 역사학자들, 그리고 국가 기구 전체는 수십 년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 병사의 완벽한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칠 준비가 된 젊은 애국자라는 이미지 말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훨씬 복잡했습니다. 1943년 미군 내에서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무려 절반에 가까운 참여자가 "평화를 가져오려면 일본인을 모두 죽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5. 소련 영토 안에 러시아인이 다스리는 나치 국가가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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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트 공화국을 통치한 것은 러시아 나치들이었습니다.

로코트 공화국(Lokot Republic)은 1941년 11월에 수립되었습니다. 공식 이념은 민족주의였으며, 러시아 국가사회당이 이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초대 수반은 콘스탄틴 보스코보이니크(Konstantin Voskobojnik)였고, 그가 사망한 후에는 악명 높은 브로니스와프 카민스키(Bronisław Kamiński)가 권력을 잡았습니다. 훗날 바르샤바 봉기를 잔혹하게 진압한 인물이 바로 이 사람입니다.

4. 아돌프 아이히만은 헝가리 유대인 100만 명과 연합군 트럭 1만 대를 맞바꾸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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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슈비츠로 끌려간 헝가리 유대인의 비극은 막을 수 없었던 걸까요?

1944년 3월, 독일군이 헝가리에 진입했습니다. 이날은 독일의 옛 동맹국이 누리던 상대적 독립뿐 아니라, 헝가리에 살던 유대인들의 안전마저 끝장내는 날이 되었습니다. 나치의 학살자 아돌프 아이히만은 수십만 명의 학살 준비를 마친 상태에서 갑자기 훨씬 더 '유리한' 기회를 감지합니다.

그는 헝가리 유대인을 죽이는 대신 팔아넘기기로 결심합니다. 연합군이 자신의 조건을 받아들인다면 아우슈비츠-비르케나우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약속한 것입니다. 아직 살아 있는 유대인들은 국경까지 안전하게 호송될 예정이었다고 합니다.

3. 독일 항복 문서는 신문 기사를 상당 부분 참고해 만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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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트 요들 상급대장은 제3제국의 항복 문서가 얼마나 급하게 작성되었는지 짐작도 못 했을 것입니다.

1945년 5월 7일 독일의 무조건 항복은 누구에게도 놀라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연합군은 이미 1943년부터 준비에 착수해, 3대 강국의 외무부 장관들이 유럽 자문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이 위원회의 임무 중 하나가 바로 독일 항복 문서의 초안을 작성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나치로부터 유럽 전역을 되찾는 데는 2년이면 충분했지만, 정치인들이 문서의 모든 버전에 합의하는 데는 2년으로도 부족했습니다. 결국 항복 문서는 극도의 즉흥적인 상황 속에서 탄생했고, 그 이면에는 평범한 차림의 한 극장 지배인이 있었다고 합니다.

2. 폴란드가 20세기에 선전포고한 유일한 나라는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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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게 폴란드와의 전쟁은 전혀 실감 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1918년 독립을 회복한 이후 폴란드가 선전포고한 나라는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오늘날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소비에트 러시아 및 제3제국과의 분쟁은 어느 쪽도 공식적인 선전포고 없이 시작되었습니다. 법적으로(de iure) 폴란드가 적대를 선포한 상대는 오직 일본뿐이었습니다. 이는 1941년 12월, 진주만 공습 직후의 일이었습니다. 다만 이 분쟁은 무혈로 끝났습니다. 일본 당국은 애초에 선전포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니까요.

1.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을 바꾼 중요한 전투 중 하나는 개전 이전에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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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 기병대. 그들이 사용하던 군마의 방목 문제로 촉발된 이 충돌은 제2차 세계대전의 운명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1939년 5월부터 9월까지 만주-몽골 국경의 할하강(할힌골) 일대에서 격렬한 일본-소비에트 전투가 벌어졌습니다. 일본 제국군의 굴욕적인 패배는 도쿄로 하여금 남방으로의 확장 노선을 택하게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독일군이 모스크바 근교까지 진출했을 때도 일본은 소련을 공격할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잊혀진 하나의 전투가 세계의 운명을 바꾼 것입니다.

맺음말

이처럼 제2차 세계대전에는 교과서에 담기지 않은 흥미롭고 충격적인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이면을 들여다보는 것은 과거를 더 입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