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면 아래에서 벌어진 전쟁은 잠수함이 발명되기 한참 전인 고대부터 존재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잠수함'은 과연 누구였을까요?
적에게 결정적이고 치명적인 우위를 확보하려는 열망은 수천 년 동안 수중 군사 작전을 수행하는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였습니다.
아킬레우스를 본받아
수면 아래로 잠항할 수 있는 선박이 등장하기 훨씬 전에도, 전쟁을 물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전투에서의 맹렬함을 보여주는 가장 위대한 본보기는 다름 아닌 고대 그리스 신화 최강의 전사, 아킬레우스였습니다.
그의 물속에서의 치명적인 무용담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올림포스의 아들 아킬레우스"는 스카만드로스 강변에 창을 내려놓고 "칼을 들고 강물에 뛰어들어 사방으로 학살을 퍼부었다"고 전해집니다.
하지만 현실 속 최초의 수중 전사들은 훨씬 소박한 출신이었습니다. 그들은 평소 해산물·진주·해면을 채취하고 난파선에서 보물을 인양할 때 쓰던 잠수 기술을 그대로 무기로 활용한 것입니다.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414년 시칠리아 시라쿠사 공방전 당시 아테네군은 항구 입구를 막은 목책을 제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병사들을 물속에 보냈습니다. 결국 그들은 수중 체인을 끊어내 병사들을 실은 갤리선이 항구로 돌입할 수 있는 통로를 열었습니다. 적 함선의 닻줄을 잘라 해안으로 밀려나게 하거나 함선끼리 충돌하게 만드는 것 역시 고대 잠수부들이 즐겨 쓰던 전술이었습니다.
고대의 잠수부들
무기를 든 채 물속에 있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이미지는 나일 계곡의 벽화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벽화는 갈대를 호흡 도구로 활용해 먹잇감에게 몰래 접근하는, 창을 든 오리 사냥꾼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잠수하는 그리스 전사들이 "코끼리 코"처럼 생긴 도구를 사용했으며, 이는 훗날 잠수함의 스노클과 흡사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물론 지중해의 많은 수중 전사들은 그 어떤 도구 없이도 놀라울 정도로 오래 숨을 참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몸을 가라앉히는 추(밸러스트) 역할을 할 돌을 들고 내려갔으며, 깊은 곳의 높은 수압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 귀에 기름을 발라 고막이 터지는 것을 막았습니다. 바닥에 도착한 뒤 뱉어낼 수 있도록 입에 기름을 물고 내려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잠수부들이 전술적으로 유용했음에도, 그들만으로 바다를 장악할 수는 없었습니다. 바다의 지배권은 수상 함선으로 병사들을 파견하는 자들의 것이었고, 그리스·로마·페니키아의 삼단노선과 페르시아의 갤리선이 절대적인 권력을 휘두르고 있었습니다.
최초의 잠수함?
특별히 제작된 장치 안에 몸을 담고 물속으로 내려간 인물에 관한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당시 알려진 세계 대부분을 정복한 알렉산더 대왕은 심해로 내려가는 일조차 두려워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기원전 332년 티레 포위전 당시 그는 잠수부들에게 항구를 정리하라고 명령했고, 작업 진행 상황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갤리선에서 긴 사슬에 매달아 내린 유리 잠종(다이빙 벨) 속에 몸을 담갔다고 전해집니다.
유레카!
수중 항해의 역사와 얽힌 또 다른 그리스인은 수학자 아르키메데스입니다. 그는 기발하고 놀라운 무기를 여럿 발명했으며, 이후 시라쿠사 공방전(기원전 214~212년)에서 로마군에 맞선 도시 방어에 크게 일조했습니다. 거울로 태양 광선을 한 줄기 빛으로 모아 로마 갤리선에 불을 붙였고, 거대한 금속 갈고리가 달린 사슬을 단 일종의 크레인을 고안해 적 함선을 들어 올린 뒤 수면에 내려쳐 부수기도 했습니다.
비록 아르키메데스가 잠수함을 직접 만들지는 않았지만, 어느 날 목욕 중 그는 인류를 바꿀 획기적인 발견을 하게 됩니다. 시라쿠사의 통치자 히에론 2세의 의뢰로 왕관 제작에 쓰인 금의 순도를 판정하는 방법을 고민하던 그는, 욕조에 몸을 담그는 순간 자신의 몸무게만큼의 물이 밀려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부력의 법칙입니다. 그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식화했습니다. "모든 물체가 액체에 전부 또는 일부 잠기면, 그 물체가 밀어낸 액체의 무게와 같은 크기의 위쪽 방향 부력을 받는다."
"유레카!"("찾았다!")를 외친 아르키메데스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옷도 입지 않은 채 거리로 뛰쳐나갔습니다.
고대의 기술을 넘어선 도전
이후 수중 항행을 시도한 이들은 아르키메데스의 법칙을 응용해 밀도를 조절할 수 있는 선박을 설계하려 했습니다. 선체의 밀도를 주변 물보다 낮추면 양의 부력이 생겨 수면에 뜰 수 있고, 반대로 밀도를 물보다 높이면 음의 부력이 생겨 잠항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밀도를 주변 물과 똑같이 맞추는 '중립 부력', 즉 같은 깊이에 머물 수 있게 하는 상태를 구현하는 일은 수 세기 동안 수많은 발명가들을 괴롭힌 난제였습니다.
여기에 추진력을 확보하고 효과적인 무기 체계를 탑재하면서도, 승무원을 살려두는 것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도전이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는 자신의 부력 법칙이 품은 군사적 가능성을 끝내 탐구하지 못했습니다. 시라쿠사 공방전에서 목숨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수학 문제 풀이에 몰두하느라 자신을 무시했다고 분노한 로마 병사의 칼날에 쓰러졌습니다.
그리스 불과 고대 잠수함의 후계자들
그리하여 이후 수 세기 동안 수중 전쟁은 잠수부들의 영역으로 남았고, 그들의 무기는 '그리스 불(Greek fire)'이었습니다. 석유, 타르 등 여러 재료를 혼합한 이 물질의 정확한 배합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으며, 네이팜의 전신격인 이 무기는 물로도 끌 수 없었습니다. 13세기 유럽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는 밀봉된 항아리에 담긴 그리스 불을 장비한 프랑스 잠수부가, 적이 센 강바닥에 박아둔 말뚝 줄을 파괴하기 위해 항아리를 그 목재에 부딪쳐 부순 사례도 있습니다. 수중에서 이런 파괴 효과를 내는 또 다른 방법은 단순히 적 함선의 선체에 구멍을 뚫는 것이었습니다. 1340년 6월 24일 플란데른 연안에서 벌어진 슬루이스 해전에서는 영국과 프랑스의 잠수부들이 드릴로 적 수선면 아래에 구멍을 뚫었습니다. 그들은 뒤집힌 주전자처럼 생긴 일종의 안전 헬멧을 쓰고, 관을 통해 공기를 공급받으며 작전을 수행했습니다.
공격당하는 함선 위의 병사들은 구멍 뚫기를 저지하려 돌을 던져 맞섰고, 잠수부들은 구멍을 키우기 위해 이미 손상된 적 선체 부위에 큰 바위를 던지기도 했습니다.
당시 해전의 일반적인 관례상 전투원들의 목표는 대개 적 함선을 나포해 화물을 차지하는 것이었지만, 그중에는 적 함선을 완전히 파괴하는 수단을 만들려는 이들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출처
이 글은 이언 발란타인(Iain Ballantyne)의 저서 『킬러 크래프츠맨십: 수중 전쟁의 역사(Killer Craftsmanship: History of the Underwater War)』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폴란드의 레비스(Dom Wydawniczy Rebis) 출판사를 통해 출간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