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베를린으로 실려 갈 뻔한 포즈난의 금괴! 폴란드 애국지사들은 이를 어떻게 저지했나

제국은행 포즈난 지점의 자산은 상자에 담겨 트럭에 실렸습니다. 출발 신호만 기다리던 금괴를 폴란드 활동가들은 어떻게 지켜냈을까요?

유제프 피우수츠키가 바르샤바에서 권력을 잡았을 무렵, 폴란드 여러 지역의 귀속 문제는 아직 확정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주민들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재탄생한 조국에 합류하고자 하는 세력이 이미 움직이고 있었죠. 대폴란드(Wielkopolska) 지역에서는 아마 1918년 초 무렵, 프로이센 분할지역 폴란드 군사조직(POW ZP)이 결성되어 갈리치아의 POW와 협력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포즈난의 폴란드인들에게 사태는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1918년 10월 말과 11월 사이 거의 독일 전역을 휩쓴 혁명의 물결이 도시까지 닿았고, 실권은 독일인들이 장악한 노동자·병사 평의회로 넘어갔습니다. 새 권력자들은 자신들의 입지가 불안하다고 느꼈고, 만약을 대비해 제국은행 포즈난 지점의 금 보유고를 빼돌리려 들었습니다.

"모든 것이 상자에 포장되어 있었다..."

작전은 1918년 11월 12일 밤부터 13일로 넘어가는 시점에 실행하기로 결정되었습니다. POW ZP 대원 중 한 명이었던 스타니스와프 유즈비아크가 사건 일 년 후 이렇게 회상했습니다.

모든 것이 상자에 포장되어 있었고, 금을 트럭으로 운송할 담당관들이 지정되어 있었다. 그들이 사용할 차량은 라비차(Ławica) 비행장에 배치되어 있었으며, 밤 12시부터 새벽 5시까지 성 마르친 거리의 '포저 차이퉁(Posener Zeitung)' 인쇄소 앞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베를린으로 실려 갈 뻔한 포즈난의 금괴! 폴란드 애국지사들은 이를 어떻게 저지했나

폴란드 국립은행 건물. 당시 제국은행 포즈난 지점이 자리한 곳이 바로 이곳이었다.

다행히 폴란드인들은 작전 계획을 미리 알아챘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독일인들의 손을 막기로 결심합니다. 나아가 그 귀금속을 탈취해 폴란드의 대업에 쓰려 했죠. 작전의 주요 참여자였던 유즈비아크의 증언입니다.

이 글을 쓰는 본인, 쿠비츠키의 운전기사, 그리고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몇몇 동료들이 수류탄과 소총을 들고 제국은행 건물로 향했다. 우리는 이 호송 업무를 위해 병사 평의회가 파견한 순찰대인 것처럼 위장했다.

계획은 이랬다. 베를린 방면 도로에서 트럭 한 대를 수류탄으로 파괴하고, 운전기사들을 제압한 뒤 돈을 쿠비츠키가 운전할 차량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이 보물은 W. 가바리 거리로 옮겨져 POW에 귀속될 예정이었다.

성공했는가?

포즈난의 페오비아키(peowiacy, POW 대원들)는 곧바로 움직였습니다. 한동안은 모든 것이 계획대로 흘러갔습니다. 폴란드인들은 상부가 파견한 순찰대로서 성공적으로 위장했죠. 하지만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참여자 중 한 명이 부주의하게도... 폴란드어를 지껄이기 시작한 겁니다! 은행 직원들의 의심을 산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습니다. 그들은 즉시 '순찰대'에게 신분증을 요구했고, 폴란드인들에게 그런 서류가 있을 리 없었습니다.

설상가상, 얼마 지나지 않아 진짜 호위대가 지정된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고 POW ZP 활동가 카롤 칸지오라가 훗날 회상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듯 보였고, 금은 병사 평의회의 지시대로 대폴란드를 떠날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칸지오라에 따르면 페오비아키들은 "은신처에서 독일인들의 움직임을 지켜봤고, 그날 밤 독일인들은 폴란드인들의 공격이 두려워 돈을 옮기지 않았다"고 합니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작전은 부분적인 성공을 거둔 셈입니다. 금을 탈취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적어도 금은 폴란드 땅에 남았습니다.

POW ZP가 감행한 위험한 개입은 이번이 처음도 마지막도 아니었습니다. 이들은 제5군단 사령부에서 서류 80킬로그램을 훔쳐내는 데 성공했고, 리체르스카 거리의 군영을 점거했습니다. 또 '시청 습격' 작전을 통해 노동자·병사 평의회 안에 자기 인물들을 진입시켰습니다. 그리고 물론, 1918년 12월에 발발한 대폴란드 봉기 준비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영감의 출처

이 글은 피오트르 보야르스키의 소설 『츠바니아키(Cwaniaki)』에서 영감을 받았습니다. 이 작품은 독일군 제복을 입은 채 프로이센 분할지역 폴란드 군사조직의 일원으로서 대폴란드 봉기를 준비해 나가는 포즈난 주민들의 운명을 그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