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그리스 과학자 아르키메데스의 이름을 떠올리면, 대개 알몸으로 욕조에서 뛰쳐나온 일화와 유명한 물리 법칙이 함께 연상됩니다. 하지만 어쩌면 그의 가장 위대한 발견일지도 모르는 이 업적 외에도, 그는 수많은 경이로운 발명품을 세상에 남겼습니다.
고대의 삶은 결코 평화롭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르키메데스는 욕조에 앉아 있는 데 시간을 많이 보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과학과 전쟁의 기술에 동등하게 몰두했으며, 현대의 기준으로 보자면 그의 행보는 가상의 슈퍼히어로와 겨룰 만했습니다.
폭풍 같은 시작
아르키메데스의 출생은 미스터리에 싸여 있습니다. 기원전 733년 또는 734년, 전설 속 인물 아르키아스가 세웠다는 도시 시라쿠사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정착민 아르키아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청년 아케톤을 실수로 살해하고 말았습니다. 이후 죽은 자의 아버지가 신들에게 복수를 간청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합니다.
그 뒤를 이은 가뭄과 기근을 시라쿠사 사람들은 분노한 포세이돈의 저주라고 믿었습니다. 제단에 바쳐질 운명을 피해 아르키아스는 도시를 버리고 도망쳤습니다. 소문에 따르면, 그가 텔레포스에게 추적당해 살해당하자 포세이돈이 다시 번영을 회복시켜 주었고, 시라쿠사는 융성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아르키메데스는 발명가이기도 했습니다.
수백 년 후인 기원전 3세기 초, 시라쿠사는 지중해에서 가장 강력하고 경제적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바로 그 무렵 아르키메데스가 태어났습니다. 그는 천문학자 페이디아스의 아들이자, 도시의 통치자 히에론 2세의 먼 친척이었다고 전해집니다(플루타르코스의 기록을 믿는다면 말입니다).
역사가들은 아르키메데스가 알렉산드리아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고대 과학의 여러 거장들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일식을 성실하게 관측했던 사모스의 코논, 지구가 구형이라는 사실을 바탕으로 지구의 둘레를 최초로 계산한 키레네의 에라토스테네스가 대표적입니다. 그는 확실히 당대 지식인 사회의 최상류에 있었던 셈입니다.
배를 들어올린 남자
아르키메데스는 비율에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기하학에서만이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당시에는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비율을 활용했습니다. 저서 『평면의 균형에 관하여』 1권에서 그는 지렛대 활용의 가능성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 자신의 주장에 따르면, 충분히 긴 장치만 있다면 지구 전체를 움직일 수 있다고 했습니다. 물론 과장이 섞인 말이지만…

베를린 알트트렙토우, 아르켄홀트 천문대 정원에 세워진 아르키메데스 기념비
그는 자신의 허풍이 헛된 말이 아니었음을 증명할 수 있었습니다. 히에론 왕을 위해 마련된 시연회에서, 아르키메데스는 상선 한 척에 짐을 가득 실고 선원들을 태우게 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조용히 멀리 앉아 도르래 장치의 손잡이를 당겨, 배를 물 위로 들어 올렸습니다. 오직 자신의 근력과 영리한 장치만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로써 그는 통치자와 구경꾼들, 그리고 배의 선원들에게까지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지렛대를 기반으로 한 아르키메데스의 발명품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었는데, 특히 제2차 포에니 전쟁 중 로마군의 시라쿠사 공성전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돌과 '레이저'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 마르켈루스의 군대가 시라쿠사 성벽 앞에 닿았을 때, 많은 병사들은 이 도시가 신들에 의해 지켜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격자들은 아르키메데스가 방어 준비 과정의 공병 작업을 지휘하며 만들어낸 투석기들이 쏟아내는 화망에 휩싸였습니다. 지렛대라는 단순한 장치에 대한 지식 덕분에 이 과학자는 시대를 크게 앞서갔고, 뛰어난 두뇌로 무엇을 해낼 수 있는지 보여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습니다. 작가 루키아노스의 기록을 믿는다면, 시라쿠사로 항해하던 배들이 갑자기 불타올랐습니다! 이것은 아르키메데스가 설계한 거울 또는 렌즈 기반 장치 덕분이었습니다. 이 문제에 대한 당대의 기록은 명확하지 않으며, 전설적인 장치의 유물도 우리 시대까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많은 검증 시도가 이어졌습니다. 예컨대 1973년 아테네 근교에서는 태양광을 반사하는 70개의 거울로 배 모형에 불을 붙이는 데 성공했습니다. 2005년에는 MIT 학생들이 또 다른 모형에 불을 붙였지만, 아테네 실험이 십여 초 만에 성공했다는 주장과 달리 빛을 집중시키는 데 약 10분이 걸렸습니다. 결국 아르키메데스의 거울 무기 문제는 인기 프로그램 '미스터리 해결사(MythBusters)'의 손에 넘어갔고, 그 실존 가능성은 "최종적으로" 반박되었습니다.

아르키메데스의 갈퀴(클로)
일부 역사가들은 아르키메데스가 장치를 성벽의 한 곳에 고정해 둘 필요가 없었다고 제안합니다. 어쩌면 훨씬 더 효과적이었을 방법으로, 거울을 든 병력을 배치해 해안의 훨씬 넓은 구역에서 반사광을 조준했을지도 모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마 그 진실을 영원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시라쿠사 수비군이 사용한 또 다른 무기는 소위 '아르키메데스의 갈퀴'로, 적선을 물 위로 들어 올려 침몰시키는 일종의 지렛대 장치였습니다. 이 장치는 2005년 다큐멘터리 "고대 세계의 초무기(Superweapons of the Ancient World)"에서 재현되어 실제로 작동하는 모습이 공개되기도 했습니다.
우연한 죽음?
마르쿠스 클라우디우스의 병사들이 시라쿠사를 함락시킨 후, 아르키메데스는 검에 쓰러졌습니다. 그의 죽음에 대해서도 여러 가지 전설이 전해집니다. 하나는, 과학자가 또 다른 기하학 문제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산 채로 잡으라는 명확한 명령에도 불구하고 참지 못한 병사의 칼에 죽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땅에 그려진 기하학 도형을 가리키며 "내 원을 지워버리지 마라"라고 외쳤다고 합니다. 또 다른 버전에서는 병사들이 그림 도구가 값지다고 여겨 단순히 훔치려다 살해했다고 전합니다.
어느 쪽이든, 위대한 발명가는 기원전 212년, 75세 정도의 나이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그가 남긴 방대한 지식은 오늘날에도 우리가 사용하고 있습니다.
참고 문헌
- Hawking, S., God Created The Integers: The Mathematical Breakthroughs that Changed History. Running Press, 2007.
- Collective work, Great History of the World. T. 8. Polish Media Amer.Com, 2005.
- Stewart, I., A Brief History of Great Minds. Prószyński i S-ka, Warsaw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