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을 완벽히 갖추고, 철저한 훈련을 마친, 결의에 불타는 전사? 테러리스트와 싸우는 사람들에 대한 이런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고 있다면, 안타깝게도 크게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훈련을 '살벌하다'고 부를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그 수준이 아무리 좋아야 포탄받이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ISIS와의 싸움에 뛰어든 영국인 자원병 에드 내시(Ed Nash)에게는 구체적인 계획 같은 것은 없었다. 시리아로 향하기 전까지 그는 세계 곳곳을 떠돌았고, 정착할 집도 인생 설계도도 없었다. 이 지역에 처참한 분쟁이 터졌을 때 그는 미얀마에서 활동하는 인도주의 단체와 협력하고 있었다. 그러다 코바니 전투 소식을 접한 그는 이슬람 국가(IS)에 맞서 싸우는 쿠르드족을 어떻게든 지원하고 싶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북부 이라크에 도착했을 때 그의 짐이라곤 쿠르드 병사들을 연결해줄지 모를 누군가의 연락처 하나, 현지인이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택시 기사에게 목적지를 설명해줄 사람의 전화번호 한 개가 전부였다. 그런데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냉담하기로 유명한 관료들이 오히려 다정하게 그를 맞이했다. 그리고 그가 와서 함께 싸워준 것에 대해 곧바로 감사의 말을 전했다.
며칠간의 대기 끝에 내시는 다른 자원병 몇 명과 함께 산속 훈련 캠프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그는 쿠르드족 사이에 적응하고 언어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지역을 흐르는 강의 이름을 딴 '보탄(Botan)'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바로 이때 그와 새 동료들은 늘 권총 탄창에 자신을 위한 총알 한 발을 남겨두는 법, 지연 없이 폭발하는 수류탄을 휴대하는 법 등을 배웠다. ISIS에게 붙잡히면 죽음이 차라리 나은 선택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산 채로 붙잡히면 참수형이라는 볼거리가 생중계될 수도 있었으니까.
수류탄 훈련은 타이어에 돌 던지기, RPG는 "이게 RPG다" 한마디면 끝
본격적인 훈련에 앞서 YPG(쿠르드 인민방위대) 담당자들은 자원병들과 협정을 맺었다. 여기에는 최소 6개월 복무 후 귀국 비용을 조직이 부담한다는 조항, 군사 훈련과 언어 교육 제공 등이 담겨 있었고, 자원병들에게는 군복도 지급되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학습'이 시작되었는데, 에드 내시는 저서 『데저트 스나이퍼(Desert Sniper)』에서 이를 비꼬아 이렇게 묘사했다.
소위 훈련은 2주 동안 진행되었다. 우리는 탄약 없는 칼라시니코프를 받아 제식동작을 연습하고, 야간 경계근무 중 초소를 설치했다. 사격도 있었다. AK 소총으로 6발, PKM으로 3발. 그리고 수류탄 투척 훈련이라며 타이어에 돌을 던지는 것도 허용되었다. RPG, 즉 휴대용 대전차 로켓포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배웠다. 문자 그대로다. 쿠르드 병사 하나가 들어 올리며 "이게 RPG다"라고 말했을 뿐이다.

YPG 대원들의 훈련 장면 (사진 출처: Kurdishstruggle, CC BY 2.0)
IS와 싸우러 온 자원병들 중에는 각국 군대 출신 참전 용사들이 많았다. 그들은 훈련의 수준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ISIS와 맞설 병사들에게 얼마나 처절한 전투가 기다리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을과 도시를 집집마다 돌파하며 탈환해야 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만큼, 건물 소탕 전술을 익히는 것은 금값 못지않은 가치가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다른 신병들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들이 알고 있는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문제는 이른바 전장 의술(battlefield medicine)의 기본기였다. 응급처치 훈련을 받지 못한 탓에 지뢰를 밟거나 즉석 폭발물이 터졌을 때 병사 대부분은 그대로 목숨을 잃었다. 전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피가 모래에 스며들며 출혈로 죽어갔다. 그저 뭘 해야 할지 몰랐을 뿐이다. 다행히 자원병 중에 전직 군의관이 있었고, 그가 나머지 사람들에게 응급처치의 기본을 가르쳤다.
저격수는 어떻게 훈련하는가? 실전에서!
내시는 결국 저격 부대에 배속되었다. 흥미롭게도 YPG 고위 지휘관 대부분이 이 부대를 거쳐 갔으며, 이곳은 간부 양성소로 여겨지는 곳이었다. 저격 소총 사용법도 모르는 영국인은 이제 제대로 된 훈련을 받으리라 기대했다.

그러나 훈련이 시작되자 그는 실망을 넘어 황당해질 수밖에 없었다. 사격장에서의 긴 시간, 무기 학습, 시간을 재며 소총을 분해·조립하는 훈련 같은 것은 없었다. 대신 그는 쿠르드의 가장 중요한 지도자 중 한 명인 압둘라 오잘란(Abdullah Öcalan)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 정치 사상 교육을 받았다. 싸우는 쿠르드족이 적에 대한 도덕적 우월의 힘을 믿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랄 일은 아니지만, 정작 전투 훈련은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우리의 훈련이란 격일로 아침에 버려진 마을까지 걸어가, 그곳에서 진지를 잡고 50~700미터 거리의 표적에 겨우 다섯 발 정도를 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막사로 돌아왔다. M16으로 쏘든 적과 교전하든, 교관들은 명중을 기대하면서도 우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았다. 그 결과 거의 모두가 빗나갔거나 형편없는 성적을 거두었다. 전직 군인이자 경호원이었던 웰라트(Welat)는 안타깝다며 훈련 때는 자기 무기로 사격해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몇 번이고 되풀이했다. 현지인들은 그 말을 외면했다.
게다가 쿠르드족은 외국 출신 참전 용사들이 뭔가를 지적해도 귀를 막는 듯한 태도를 보이곤 했다. 그 완벽한 예가 내시가 『데저트 스나이퍼』에서 언급한 '저격 버튼(sniper button)' 이야기다. 이미 베트남전에서 초기형 M16 소총이 더러워지면 급탄 문제를 일으킨다는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YPG를 위해 싸우는 야지디족. 노란 깃발에는 압둘라 오잘란이 담겨 있다 (사진 출처: Kurdishstruggle, CC BY 2.0)
제조사는 소총 측면에 누름 버튼을 달아 이 문제를 해결했다. 그런데 IS와 싸우던 YPG 병사들은 이 버튼이 누르면 더 멀리, 더 정확하게 쏠 수 있게 해주는 '저격 버튼'이라고 믿었다. 누군가 그렇게 생각해냈고, 이내 훈련에서 반복되더니 그 믿음이 순식간에 퍼져나간 것이다.
빈약한 전투 과정을 마친 자원병들은 최전선으로 보내졌다. 전선에서 그들은 '교육'을 매우 빠른 속도로 마쳐야 했다. 곧 몸으로 부딪히며 배우는 것이었다. 내시도 그렇게 성장했다. 살아남기 위해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붙잡아야 했다. 『데저트 스나이퍼』에서 그가 쓴 것처럼, 한번은 멀리 있는 IS 전투원과 드라구노프 저격총으로 교전을 벌인 적도 있다.
그저 탄약 낭비일 뿐이었다. 나는 그걸 훈련 삼아 몇 발 더 쐈고, 상대는 탄창 몇 개를 소진했다. 내 입장에서는 탄약 낭비가 아니었다. 간단히 말해 드라구노프 사격 훈련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고, 그런 기회는 무조건 잡아야 했다.
출처
이 글은 다음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 Ed Nash, 『Desert Sniper』, Rebis 출판사,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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