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양다리를 잃고도 하늘로 돌아온 전설의 조종사, 알렉세이 마레시예프

제2차 세계대전 중 소련 조종사 알렉세이 마레시예프는 양다리를 절단당한 뒤에도 비행에 복귀하여 최전선에서 계속 싸웠습니다. 그의 무공을 기려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가 수여되었습니다.

마레시예프의 성공은 강철 같은 일관성과 끈기 덕분이었습니다. 반면 다르게 보면, 인생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다리가 동상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 이르렀던 그때—조차 운명이 그에게 미소 지었다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훗날 그의 아들 빅토르가 회상하길, 조종사가 옮겨진 병원의 의료진은 그를 사망으로 판정했다고 합니다. 구급대원이 그를 시체 안치실로 옮기려던 바로 그 순간, 니콜라이 테레빈스키 교수가 외쳤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은 살아 있습니다!" 즉시 치료가 시작되었고, 그렇게 마레시예프는 죽음에서 되돌아왔습니다.

불운한 비행

1916년 사라토프주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알렉세이는 어린 시절부터 비행사를 꿈꾸었습니다. 졸업 후 조종사 학교에 진학하려 했지만, 예전에 앓았던 말라리아의 후유증인 류머티즘 때문에 신체 검사에서 탈락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꿈을 포기하지 않았고, 우회로를 통해 목표에 도달했습니다.

1934년 그는 항공 산업 관련 기업에서 선반 공으로 일하기 시작했으며, 동시에 항공 클럽에 가입했습니다. 3년 후 군에 징집되어 극동의 국경수비대에서 비행기 정비 업무를 맡았습니다. 그의 재능을 알아본 지휘관들은 그를 로스토프나도누의 조종사 학교로 보냈습니다. 1940년 소위로 졸업한 그는 교관이 되었고, 1941년 6월 22일 독일의 소련 침공이 시작될 때까지 그 직책을 유지했습니다.

양다리를 잃고도 하늘로 돌아온 전설의 조종사, 알렉세이 마레시예프

알렉세이는 자원하여 현역 부대에 배속되었고 1941년 8월 6일 전선으로 나갔습니다. 1942년 4월 1일 첫 적기 격추에 성공했고, 4월 4일에는 두 대를 추가로 격추했습니다. 그러나 다음 날인 4월 5일, 그의 야크-1(Yak-1) 전투기가 피격당합니다. 마레시예프는 모든 기량과 지식을 총동원해 전선 방향으로 비행하여 소련군 통제 지역에 착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당시 그는 자신이 노브고로드주 발다이 지구 한복판에 내려왔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숲속의 18일

착륙은 거칠었습니다. 30미터 높이에서 추락한 조종사는 의식을 잃었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완전히 황량한 숲 한가운데 있었습니다. 비행기는 꼬리와 조종석만 남긴 채 완전히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아마 강한 충격 때문이겠지만, 그는 환각을 경험했습니다. 자신의 비행기가 독일군을 공격하고 있고 자신이 그들을 향해 사격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며, 물통을 이고 가는 여자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알렉세이는 다리가 부러져 걸을 수 없었고, 오직 기어서 이동해야 했습니다. 조종사는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 가기로 결심합니다. 4월 초였지만 주변은 여전히 눈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이 눈은 한편으로는 마레시예프에게 귀중한 물의 공급원이 되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체온을 떨어뜨려 동상에 걸리게 만들었고, 결국 다리 괴사로 이어지고 말았습니다.

양다리를 잃고도 하늘로 돌아온 전설의 조종사, 알렉세이 마레시예프

18일 후, 조종사는 플라프(Плав) 마을 근처까지 기어갔고, 세르게이 말린과 사샤 비흐로프라는 두 소년에게 발견되었습니다. 소년들은 낯선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사샤의 할아버지에게 전했고, 할아버지는 손수레를 끌고 그들이 가리킨 곳으로 가서 부상자를 자신의 집으로 모셔왔습니다. 마레시예프는 야위고 수염이 길게 자란 상태였습니다.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것이 분명했고, 며칠 후 근처 부대의 군인들이 나타나 그를 군 병원으로 이송했습니다.

죽음과 부활

그곳에서 의사들은 그의 다리에 온찜질을 해주었습니다. 환자가 팔다리가 동상에 걸렸느냐고 묻자 의료진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며칠 후 알렉세이는 다른 의료 시설로 옮겨졌고, 거기서 몇 차례의 수혈을 받아 상태가 조금 나아졌지만, 의사들은 여전히 동상을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습니다.

곧 마레시예프에게 역시 조종사인 친구가 찾아와 그를 모스크바로 데려갔습니다. 당시 알렉세이의 상태가 너무 위독하여 수도의 병원에서 그는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니콜라이 테레빈스키 교수가 아니었다면 마레시예프는 시체 안치실로 직행했을 것입니다. 테레빈스키는 환자를 진찰한 뒤 다리 괴사를 확인했고, 생명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은 절단이라고 판단했습니다. 26살의 알렉세이는 비행 없는 삶을 상상할 수 없어 동의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교수는 고집 센 조종사와의 설득에 지쳐 결국 직접 수술을 집행했습니다.

곧 조종사는 의족을 받았습니다. 처음에는 의족에 목발을 사용해 걷다가, 나중에는 지팡이만으로 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은 어두웠습니다. 알렉세이의 태도를 바꾼 것은 그를 간호하던 간호사가 건네준 한 편의 기사였습니다. 팔다리 절단 후에도 비행에 복귀한 영국 조종사 더글러스 베이더에 대한 기사였습니다. 이 기사가 환자에게 희망을 주었고, 알렉세이는 집중적인 재활 훈련을 시작했습니다.

화려한 귀환

마레시예프는 미롤류보프라는 의사가 있는 요양원으로 보내졌습니다. 그는 조종사들의 비행 허가를 담당하는 위원회의 일원이었습니다. 알렉세이는 그에게 다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비행 복귀 의사를 밝혔습니다. 너무 자연스럽고 자신감 있게 움직이는 바람에 미롤류보프는 오히려 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았습니다. 환자가 직접 자신의 의족을 보여준 후에야 그는 의심을 멈췄습니다.

마레시예프는 단순히 잘 걷는 것을 넘어 춤까지 출 수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 그 의사를 저녁 무도회에 초대했습니다. 알렉세이가 춤추는 모습을 믿기 힘들어한 다른 위원들도 자리에 함께했고, 이후 그는 시험 비행에 참가하게 되었으며 결과는 훌륭했습니다.

양다리를 잃고도 하늘로 돌아온 전설의 조종사, 알렉세이 마레시예프

그러나 전선으로 돌아가기까지는 아직 긴 길이 남아 있었습니다. 참전 허가는 공군 지휘관들의 결재를 받아야 했는데, 그들은 매우 신중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마레시예프가 더글러스 베이더에 관한 기사와 시험 비행 결과를 제시했지만, 장군들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조종사는 포기하지 않고 그들의 집무실 문턱을 끊임없이 두드린 끝에, 마침내 필요한 서류를 받아냈습니다.

1943년 6월, 알렉세이는 전투기 연대에 배속되었습니다. 그는 쿠르스크 전투에서 싸웠고, 중대 부지휘관으로서 86회 출격에서 적기 7대를 격추하는 무공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소비에트 연방 영웅' 칭호를 수여받았습니다.

소련 작가 보리스 폴레보이는 마레시예프의 삶을 바탕으로 『진짜 인간의 이야기(Повесть о настоящем человеке)』라는 책을 썼고, 이 작품은 극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소행성과 여러 학교가 그의 이름을 따 명명되었으며, 2004년에는 모스크바 당국이 극한 상황에서 용기와 영웅심을 보이며 살아남은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A. 마레시예프 상'을 제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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