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헬름 연대의 '육상 전함', 에르하르트 M17
에르하르트 M17(Ehrhardt M17)은 대폴란드 봉기와 제3차 실레지아 봉기에서 폴란드 측이 보유한 몇 안 되는 기갑 전력이자, 장갑열차와 함께 봉기군의 자랑이었습니다. 당시 이 차량은 크리스마스 캐럴 "밤의 고요 속에서"의 선율을 따라 부른 노래의 주인공이 될 만큼 유명했습니다. 원본이 100년 전 주인이 바뀐 부치니(Budzyń)에서 정성껏 재현된 복제품은 3년째 봉기군 재연 행사를 빛내고 있습니다.
다음 세대의 전쟁
대폴란드 봉기의 전투는 막 끝난 제1차 세계대전의 기술적·전술적 성과가 그대로 투영된 양상이었습니다. 이는 방금 실전 배치된 최신 무기들이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고고도 럼플러(Rumpler)기를 포함한 마지막 세대 항공기가 하늘을 날았고, 지상에서는 장갑차와 장갑열차 같은 기갑 장비, 나아가 화학무기(독가스)까지 동원되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첨단 장비의 대부분이 독일 측에 있었고, 독일군은 이를 전투에 아무런 제약 없이 사용했다는 점입니다. 반면 대폴란드 의용군이 확보한 것은 겨우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들뿐이었습니다. 포즈난 근교 워비차(Ławica) 비행장과 비니아리(Winiary)의 체펠린 격납고에서 탈취한 항공기, 1919년 2월 6일 리나르젠프(Rynarzewo) 전투에서 노획한 장갑열차, 그리고 부치니 근교 소규모 교전에서 포획한 '육상 전함'이라 불린 장갑차 에르하르트 M17이 바로 그것입니다.
기동하는 기관총 진지
에르하르트 M17은 강력한 무기였습니다. 적절한 기관총 화망 투사 능력과 신속한 기동력을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이 차량은 EV/4 트럭을 기반으로 수십 대가 생산된 초기 생산형으로, 이후의 더 열악한 M19보다 성능이 우수했습니다. 상시 4륜 구동 덕분에 도로는 물론 험로에서도 주행할 수 있었습니다.
차량은 3~5정의 기관총으로 보병에 화력을 지원했으며, 그중 한 정은 차량 지붕의 회전 포탑에 장착되어 있었습니다. 승무원이 주도권을 쥐고 적 보병과 교전한다면 결코 만만치 않은 상대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1919년 2월 7일, 대폴란드 의용군과 싸우러 가던 차량의 승무원들은 전투 시작 첫 순간에 주도권을 잃고 말았습니다.
오코그글릭 언덕의 함정
대폴란드 의용군은 에르하르트가 부치니 인근을 순찰하는 동안 매복해 기다렸습니다. 독일군에게 불행했던 점은 이 장갑차가 다른 장갑차나 보병의 지원 없이 홀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실제로 폴란드 측은 독일군의 부치니 공격을 미리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1919년 1월 5일 부치니, 소코워프(Sokołów), 리치비부(Ryczywół) 점령 작전을 지휘한 위크토르 스코타르차크(Wiktor Skotarczak) 하사는 도시에 대한 공격이 예상된다는 정보를 이미 입수한 상태였습니다.

스코타르차크는 제1차 세계대전 참전 용사 출신의 베테랑으로, 독일군 사령부가 그를 살해하거나 생포하는 자에게 5만 마르크의 현상금을 내걸 정도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부치니와 호지에시(Chodzież) 점령에 함께했던 레온 나피에체크(Leon Napiecek)에게 병사 15명과 함께 부치니 뒤편, 호지에시 도로변의 오코그글릭(Okręglik) 언덕에 매복하여 독일군의 접근을 기다리라고 명령했습니다.
나피에체크는 1919년 2월 7일 오코그글릭으로 향해 도로 위쪽에 좋은 위치를 골랐습니다. 도로 왼쪽에는 사수들이 배치되었고, 도로 축선상 약간 높은 곳에는 MG08 중기관총이 설치되어 스타니스와프 코즈워프스키(Stanisław Kozłowski)와 슈체판 비카리우슈(Szczepan Wikariusz)가 운용을 맡았습니다. 부치니 승리의 결정적인 공은 바로 이들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감행된 작전
오후 3시경, 의용군은 자동차 엔진 소리를 들었습니다. 이내 회색 박스형 차체에 기관총을 얹은 특징적인 포탑을 지닌 차량이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코즈워프스키와 비카리우슈는 이미 탄약띠를 준비하고, 비카리우슈가 탄약띠를 잡고 코즈워프스키가 노리쇠를 당겼습니다. MG08 기관총은 단발 저격이 아니라 차량 전방 구역에 조밀한 화망을 깔아 제압하는 데 쓰일 예정이었고, 코즈워프스키는 자신의 임무가 장갑차에 동반되는 보병을 저지하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라디에이터 루버에 검은 십자가를 새긴 장갑차는 호위 없이 혼자 달려왔습니다. 게다가 운전수는 위협을 인지하지 못한 채 길을 잘 보려고 자신을 보호하는 장갑판을 열어둔 상태였습니다. 폴란드군 중기관총의 조준점은 바로 거기에 맞춰져 있었습니다. 에르하르트가 약 50미터 거리에 접근하자 코즈워프스키가 즉시 사격을 개시해 차량을 명중시켰습니다. 차체 내부로 들어온 총탄은 운전수와 독일 병사 두 명에게 치명상을 입혔고, 차량은 도로를 이탈해 갓길 도랑에 멈춰 섰습니다.
차량 승무원은 인근 포다닌(Podanin)에 주둔 중인 독일 부대에 경보를 보내 구원을 요청하려 했지만, 발사된 황색 신호 로켓은 높이 날아오르지 못하고 작은 호를 그리며 떨어졌습니다. 포다닌 부대는 '육상 전함'이 궁지에 몰렸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값진 전리품
장갑차 승무원의 지휘관은 쿠르트 아모스(Kurt Amos) 중위였고, 요아힘 그라프 폰 슈베린-야노프(Joachim Graf von Schwerin-Janow) 중위도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공격자가 자신들을 수적으로 압도하고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다가오던 나피에체크가 던진 수류탄의 폭발음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는 차량을 방어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었습니다. 결국 폰 슈베린-야노프 중위가 권총을 뽑아 차 밖으로 뛰쳐나왔고, 나머지 승무원들도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폴란드군의 집중적이고 정확한 사격망으로 뛰어든 것이었습니다.
두 장교와 병사 한 명이 전사해 승무원 여섯 명 전원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차량의 부운전수 한 명은 포로로 잡혔다고 전해집니다. 부상을 입고 도주한 병사가 한 명 더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그 역시 부상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의용군은 아무 손실 없이 기관총 4정으로 무장한 장갑차를 손에 넣었습니다. 게다가 다량의 탄약과 신호 권총 2정, 그리고 당시 연대기 작가가 기록한 '수류탄 700발'까지 노획했습니다. 물론 이 수치는 과장으로 보입니다. 이 모든 짐과 승무원을 실으려면 에르하르트가 철도 화차급 수송 능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전리품은 어김없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의용군은 여섯 마리의 말을 전장으로 끌고 와 차량을 도랑에서 끌어냈습니다. 시동이 걸린 차량은 백홍(白紅) 깃발 아래 자랑스러운 의용군의 인도를 받으며 부치니로 진입했습니다. 전사한 독일군은 해당 지역 복음교회 묘지에 군례로 안장되었습니다.
'그루지엘스키'에서 '상(上) 실레지아'로
포획된 차량은 포즈난으로 옮겨졌고, '카지미에시 그루지엘스키 대령'이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다소 충동적인 면이 있지만 병사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던 북부 전선 지휘관을 기리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차량은 1919년 3월 자모시(Zamość) 근교 전투에 참여했고, 제3차 실레지아 봉기 때는 켕지에진(Kędzierzyn)과 지로바(Żyrowa) 인근에서 활약했습니다. 이 봉기 당시 재도색되며 '상 실레지아 – 알자스'라 불렸습니다. 처음에는 포즈난의 제2장갑차중대에 배속되었다가, 1925년 11월 바르샤바로 옮겨졌고 이후 다시는 대폴란드 땅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1928년 차량은 퇴역한 뒤 해체 처리되었습니다.
참고 자료
- Members of the group Erhardt M-17 starred in the movie about colonel Grudzielski, chodzież.naszemiasto.pl, 2021년 3월 6일.
- Magnuski Janusz, Armored cars of the Polish Army 1918-1939, 바르샤바, 1993.
- Okoński Grzegorz, Panzer Colonel Grudzielski – insurgent capture from Gostyń, Głos Wielkopolski, 2022년 1월 8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