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고결한 야만인이 아니었다? 선사시대 신화를 깨뜨리는 『모든 것의 시작』

선사시대 인류, 정말 평화로운 '고결한 야만인'이었을까?

수만 년 전 인간은 소규모 집단에서 평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간 '고결한 야만인(noble savage)'이었다고 흔히 믿습니다. 그런데 과연 사실일까요? 아닙니다. 데이비드 그레이버와 데이비드 웬그로의 책 『모든 것의 시작』은 선사시대에 얽힌 이러한 신화들을 송두리째 깨뜨립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수만 년 전, 지구 대부분이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던 시절로 돌아가 봅시다. 사람들은 매머드의 울음소리와 새 지저귐 속에서 여유롭게 살아갔습니다. 사유재산도 없었고, 가끔 함께 모여 매머드를 사냥하면 모두가 서로 도왔죠. 사람들은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농경이 시작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평화로운 사회라는 동화는 사라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후에는 부유한 가문 출신의 강자들이 남들보다 훨씬 많은 것을 소유하고 나머지 백성들을 억압하게 되었다는 것이죠.

그런데 이와 정반대되는 또 다른 지배적인 서사도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선사시대 사람들은 조화롭게 어울리지 않았고, 오직 자기 이익만을 추구하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면 서로를 파괴하던 잔인한 존재였다고 합니다.

선사시대 인류의 공동체 생활에 관한 이 두 가지 고집스러운 신화는 각각 철학자 장자크 루소(1712~1778)와 토머스 홉스(1588~1679)가 만들어낸 것입니다. 그러나 두 저자는 이것이 대체로 근거 없는 허튼소리라고 주장합니다. 웬그로는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 고고학연구소의 비교고고학 교수이며, 그레이버는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의 인류학 교수였습니다. 그레이버는 책을 완성한 직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위험한 포식자들이 새겨진 거대 기념물

저자들의 핵심 목표는 바로 이런 통념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특히 농경과 도시 생활이 진정한 문명으로의 도약이었다는 생각이 그들의 눈엔 가시처럼 박혀 있습니다. 인류의 모든 것이 이 시점에서 변했다는 통념에 그들은 강하게 반박하며, 그중에서도 수렵채집인들의 삶을 들여다보는 방식으로 가장 설득력 있게 논증합니다.

수렵채집인들은 작은 무리로 돌아다녔을까요? 그렇기도 했지만, 이런 씨족들이 더 큰 부족을 이루기 위해 자주 모였을 가능성도 높습니다. 아마 함께 사냥하거나 축제를 벌이기 위해서였겠죠. 실제로 세계 곳곳에서 수만 년 전부터 이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살았던 유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오늘날 터키 남동부에 위치한 괴베크리테페(Göbekli Tepe)가 대표적입니다. 11,000년 전 사람들은 숲과 초원으로 이루어진 이곳에 20개의 거대한 석벽을 세웠습니다.

이 석벽은 높이 5미터가 넘고 무게가 1톤에 달하는 T자형 기둥 200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위험한 맹수와 독을 지닌 파충류, 물새 등이 장식으로 새겨져 있습니다. 이를 만드는 데는 상상을 초월하는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고, 따라서 어떤 형태의 조직도 필수적이었을 겁니다. 그런데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많은 연구자들은 대규모 인구가 함께 살려면 조직적인 농업, 문자, 강력한 지도자, 관료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중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요컨대, 대규모 집단은 아주 오래전부터 전혀 다른 방식으로 공존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괴베크리테페만이 예외가 아닙니다. 수만 년 전의 놀라운 구조물 사례는 그 외에도 더 많이 발견됩니다.

'단순한 열매 줍꾼'이라는 편견을 넘어

훗날 등장한 최초의 대도시들 역시 놀랍도록 자주 문자, 부유한 왕, 방대한 관료 조직 없이 운영될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고고학자들은 발굴 결과를 통해 모든 주민이 중요한 결정에 상당한 발언권을 가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결론짓습니다. 그들은 이웃이나 연령 집단을 통해 대표되었죠. 저자들에 따르면 수많은 역사책에 등장하는 이른바 '농업 혁명'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전환점은 전혀 갑작스럽지 않았으며, 온갖 다양한 형태의 공동생활이 공존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지금은 그렇지 않은 걸까요? 왜 우리 주변에는 이토록 많은 사회 불평등이 존재하는 걸까요? 저자들은 정확한 답을 제시하지는 않지만, 독자 스스로 이 질문을 붙잡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선사시대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채로웠다

이 책의 사례들은 먼 옛날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합니다. 선사시대에 이미 아름다운 예술 작품으로 장식된 건축물이 세워졌다는 사실은 그 수렵채집인들이 결코 우매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단순히 열매를 줍고 살았다는 이미지는 수정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들은 우리만큼 창의적이고 총명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 책의 핵심 메시지는 선사시대가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다양했다는 것입니다. 상쾌한 메시지이며, 저자들은 이를 탄탄하게 뒷받침합니다. 『모든 것의 시작』은 훌륭한 사례가 가득한 잘 쓰인 책으로, 특히 발굴 현장에 관한 기술은 고고학과 인류학 교수 두 명의 저작답게 매우 견실합니다. 저자들은 또한 모든 통념에 과감히 도전합니다. 일곱 리 부츠를 신고 역사를 질주하면서도, 600페이지가 넘는 분량 내내 독자의 긴장감을 놓지 않게 하죠. 유일한 아쉬운 점은 같은 내용이 많이 반복된다는 것인데, 좀 더 촘촘한 구성이었다면 충분히 개선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올해 출간된 과학 도서 중 가장 흥미진진한 책 중 하나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