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히믈러의 비밀 거래: 제2차 세계대전 속 잘 알려지지 않은 유대인 구출 이야기

오해를 부르는 제목, 그러나 흥미로운 책

'Himmler's Secret Deal(히믈러의 비밀 거래)'은 흥미로운 책이지만, 제목이 다소 오해를 살 수 있다. 히믈러는 이 책에서 주인공이라기보다 중요한 조연 역할을 맡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구출 작전 뒤에 숨겨진 이야기들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은 특별히 매력적일 것이다.

제목 'Himmler's Secret Deal'에 이끌려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동안 나치 정권의 2인자였던 하인리히 히믈러(1900~1945)에 대해 우리가 아직 모르는 사실이 무엇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기대를 안고 이 책을 펼치면 다소 실망할 수 있다. 저자인 캐나다 출신 역사가이자 언론인 맥스 월리스(Max Wallace)도 원래 이 책에 다른 제목을 붙였는데, 바로 'In the Name of Humanity(인류의 이름으로)'이다. 이 제목이 내용을 더 잘 담고 있다. 책 전체가 히틀러의 살육 악욕으로부터 유대인을 구하려 했던 '쉰들러 리스트' 같은 구출 시도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구출 작전의 연속

이 책은 학술 저작이 아니라 일반 독자를 위해 쓰였다. 다만 맥스 월리스(혹은 번역자 조지 페이퍼)가 다소 과장되고 비학술적인 언어를 사용하는 점은 아쉽다. 무언가가 금세 '경악스럽다', '믿기 힘들다'는 수식어가 붙고, 히믈러는 '악마' 혹은 '괴물'로 불린다. 반면 책에는 각주가 풍부하고, 저자는 방대한 문헌과 자료 조사 결과를 아낌없이 공유한다.

월리스가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방대하다.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과 단체의 이름들은 유럽에 생존해 있던 유대인을 구하려 했던 시도들의 목록처럼 읽힌다. 특히 독일 제국에서 대량 학살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세계가 인식하기 시작한 이후 더욱 그러했다. 제목의 주인공인 히믈러는 5장에 이르러서야 등장한다. 여러 진영의 방대한 사실 정보 속에서 몇 번 길을 잃기도 했지만, 마지막에는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된다.

최종 해결책

저자는 친위대(SS) 수장 히믈러에게 히틀러가 '유대인 문제' 해결을 어떻게 명령했는지 상세히 서술한다. 독일은 '유대인 없는 국가'가 되어야 했고, 나치는 처음에는 이민을 통해 해결책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다른 나라들이 난민을 제한적으로만 받아들이거나 아예 거부했기 때문에 속도가 나지 않았다. 게다가 유대인들은 독일을 떠나기 위해 많은 돈을 내야 했고, 많은 이들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1941년부터는 죽음의 해결책이 채택되었다. 독일군 뒤를 따라 특수 SS 부대가 점령한 동부 영토로 이동하면서 시작되었다. 이곳에서 그들은 유대인, 롬인(집시), 장애인들을 집단 학살했다. 이와 관련해 히믈러의 말이 인용된다. "동부 점령 지역은 유대인으로부터 해방되고 있다. 이 특별히 어려운 명령의 집행은 총통(Führer)이 내 어깨에 지운 것이다. 그리고 그 책임을 누구도 나에게서 빼앗을 수 없다."

총살과 배기가스를 이용한 살해로는 속도가 충분하지 않았다. 여러 실험 끝에 시안화수소계 독가스(치클론 B)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최선의 해결책으로 판명되었다. 히믈러와 그의 부하들은 '최종 해결(Endlösung)'이라 불린 이 작업 전체를 세밀하고 극도로 효율적으로 실행했다. 1942년 봄부터 유대인들은 화물열차에서 새롭게 설계된 가스실로 이끌려 갔고, 시신은 인접한 화장터에서 태워졌다. 아우슈비츠만 해도 하루에 수천 명을 이런 방식으로 살해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왜 히믈러는 1944년 11월에 이를 중단시켰을까?

특종?

저자는 자료 조사 과정에서 연합국에 행동을 촉구하던 끈질긴 사람들을 발견했다. 스위스의 레하 슈테른부흐와 아이작 슈테른부흐 부부, 그리고 장마리 뮈지(Jean-Marie Musy)는 이미 많은 유대인 구출로 이름이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이들이 히믈러에게도 영향을 미쳤고, 그 결과 가스 살해가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는 이렇게 전개된다.

전쟁 말기 히믈러는 연합국과의 관계 개선을 꾀하고 있었다. 그는 학살을 중단할 의향이 있었지만, 히틀러는 끝까지 유대인 살해를 강행하려 했다. 그의 대화 상대 중 한 명은 전 스위스 대통령 장마리 뮈지(1876~1952)로, 슈테른부흐 구출 위원회를 대신해 히믈러와 협상했다. 1944년 그는 유대인 석방과 맞바꿔 장비 제공과 연합국과의 평화 협상을 약속했다. 완전한 허풍이었다. 연합국이 독일에 대항하는 데 쓰일 수 있는 장비를 결코 넘겨줄 리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히믈러는 뮈지를 믿었다.

이 대화 몇 주 후, 나치 수장은 아우슈비츠 화장터 건물을 폭파하도록 명령했다. 당시에는 저항 세력의 소행으로 여겨졌지만, 후에 히믈러 본인이 직접 내린 명령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역사학자들은 히믈러가 대량 학살의 증거를 파괴하기 위해 이렇게 했다고 보고 있다. 연합군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설득당한 히믈러

책은 개인들이 연합국에 압력을 가해 학살을 멈추도록 만든 과정을 서술한다. 신규 수용자의 공급을 차단하기 위해 철도 노선을 폭격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였다. 구출 위원회는 현금과 함께 독일이 절실히 필요로 하던 트럭을 제공해 포로를 석방하려 했다. 그러나 연합국은 장비를 다른 전선에 써야 했고, 나치에게 돈을 지불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독일군이 트럭을 전투에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연합국의 금지에도 불구하고 슈테른부흐 부부의 구출 위원회는 독일에 물품을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1944년 11월 20일, 첫 물량인 트랙터 10대가 스위스에서 1,000명의 유대인과 맞교환할 물자로 선적될 준비를 마쳤다. 더 많은 장비가 공급되면 독일은 더 많은 유대인을 석방하고, 그동안 수용소의 학살을 중단하기로 합의되어 있었다.

5일 후, 히믈러는 아우슈비츠의 화장터와 가스실을 파괴하도록 했다. 월리스는 이것이 임박한 트랙터 인도의 직접적인 결과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연합군이 가까워지자 학살 증거를 파괴해야 했다'는 통설에 동의하지 않는다. 그의 말대로라면 연합군은 아직 그럴 만큼 가까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자의 주장에 대해 추가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흥미로울 것이다. 히믈러가 호의를 구축하기 위해 적대 세력과 유대인 대량 학살 중단에 관해 협상할 수 있었다는 논리는 납득할 만하다. 저자의 조사는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세력이 이 일에 관여했음을 밝혀냈다. 그러나 '왜'에 대한 그의 최종 설명은 다소 빈약하다.

히믈러의 최후

히믈러는 독일이 더 이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영국과 미국에 공산주의에 맞서 힘을 합치자는 그의 제안이 히틀러의 귀에 들어갔다. 히틀러는 분노했지만, 부재중인 히믈러를 당에서 축출하는 것 외에는 할 수 없었다. 이제 히믈러는 협상할 어떠한 권력도 잃었고, 어느 진영에서도 자비를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았다. 연합군의 손에 넘어간 그는 자살했다.

히믈러가 '유대인 없는 독일 제국'을 위해 끝까지 버티지 않았다는 사실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 일부 사람들의 수년간의 노력이 지금까지 평가받았던 것보다 큰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저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얻는다. 희망적인 메시지는 이것이다. 세계 대다수가 외면하더라도 소수의 사람들이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

그러나 가스실에서 살아남은 많은 포로들에게는 여전히 늦었다. 그들은 굶주림, 질병의 창궐, 혹은 다른 수용소로 향하는 죽음의 행군 도중에 목숨을 잃었다. 결국 히믈러의 정교한 살인 계획은 약 600만 유대인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럼에도 나치 수장을 설득해 학살을 멈추게 만든 사람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하나의 성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