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레오폴드 2세의 뜻대로 되었다면, 네덜란드는 오래전에 벨기에에 합병되었을지도 모릅니다. 벨기에 국왕 레오폴드 2세(1835~1909)는 기습 공격으로 네덜란드를 침공하고 무력으로 제압한 뒤 자국 영토로 편입하려는 야심을 품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플랑드르 출신 언론인이자 역사학자인 크리스 클레르크스(Kris Clerckx)가 브뤼셀 왕립 문서고에 보관된 자료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밝혀졌습니다.
1854년, 이미 완성돼 있던 침공 전략
놀랍게도 광범위한 전쟁 전략은 이미 1854년에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연구자 클레르크스는 "정성껏 손으로 작성된 군사 문서였다"고 말했습니다. 공격 계획서에 따르면 벨기에군은 기습 방식으로 네덜란드를 침공해야 했으며, 단 며칠 안에 암스테르담을 점령해야 했습니다. 그 이유에 대해 문서는 "공격 소식과 네덜란드의 항복 소식이 동시에 유럽에 전해져야 유럽의 세력 균형이 유지된다"고 설명합니다.
숫자로 보는 양국 군사력 비교
당시 벨기에군의 기습 침공은 결코 비현실적인 구상이 아니었습니다. 클레르크스는 "병력 수에서 벨기에가 우위였고, 공격에 필요한 물자도 충분히 갖춰져 있었다"고 분석했습니다. 실제로 벨기에군의 장교 수는 2,127명으로, 네덜란드군의 1,397명보다 훨씬 많았습니다. 벨기에 첩보망에 따르면 네덜란드 장교들은 대부분 고령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재정 면에서도 벨기에는 우세했습니다. 벨기에 전쟁부 금고에는 3,400만 골드 프랑이 넘는 자금이 있었던 반면, 네덜란드의 예산은 2,960만 골드 프랑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네덜란드는 그중 1,000만 골드 프랑 이상을 해군에 투입하고 있었는데, 육상 침공이 이루어질 경우 해군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부대였습니다.
네덜란드 수선 방어선과 애국심이라는 변수
그러나 첩보 임무의 최고 지휘관인 콜롱 쇼셰(Colonel Chauchet)와 다른 참모들은 두 가지 변수를 우려했습니다. 바로 네덜란드의 수선(水線) 방어선과 네덜란드인들의 강한 애국심이었습니다. 한 첩보원은 네덜란드 수선 방어선의 요새들이 잘 관리되어 있으며, "네덜란드 병사들은 매우 애국심이 강하다"고 보고했습니다.
그럼에도 레오폴드 2세는 네덜란드 내 로마 가톨릭 신자들이 벨기에의 침공이 시작되면 반란을 일으킬 것이라고 낙관적으로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나폴레옹 3세가 계획을 좌초시키다
벨기에의 두 번째 국왕이 결국 네덜란드를 침공하지 못한 데에는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 3세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레오폴드의 계획이 성공하려면 열강 프랑스의 지원이 필수적이었지만, 나폴레옹 3세는 이 공격 계획에 별다른 가치를 두지 않았습니다. 최고 외교관인 시메 공작(Prince of Chimay)의 중재와 레오폴드 2세와 나폴레옹 3세 간의 직접 협상 끝에, 벨기에의 통치자는 결국 침공 계획을 서랍 속에 묻어두어야 했습니다. 이후의 역사는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