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주차장 아래 잠들어 있던 왕, 리처드 3세 – 신원 일치 확률 99.9999%

주차장 아래에서 깨어난 왕

2012년, 과학자들이 영국 레스터의 한 주차장 아래에서 한 구의 골격을 발굴했습니다. 과연 이것이 1485년 전장에서 목숨을 잃은 전설의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3세의 유해일까요? 유전학자 튜리 킹(Turi King)은 수년간 이 미스터리에 매달렸고, 마침내 답을 찾아냈습니다. 그녀는 로테르담 자연사박물관에서 열린 다섯 번째 호보켄 강연에서 이 흥미진진한 탐구 여정을 직접 소개했습니다.

“어차피 못 찾을 겁니다”

2011년 고고학자 리처드 버클리(Richard Buckley)가 튜리 킹에게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그레이프라이어스(Greyfriars) 성당 터 조사에 동행해 줄 것을 부탁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그를 찾을 수 없을 겁니다. 반나절이면 충분할 거예요.” 그러나 첫날, 몇 시간 만에 발굴을 시작한 그들은 놀랍게도 그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저명한 잉글랜드 국왕 리처드 3세였습니다.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국왕인 리처드 3세는 1485년 전장에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처를 입은 그의 시신은 옷을 벗긴 채 말 위에 걸쳐져 백성들에게 공개되었고, 며칠 뒤 레스터의 프란체스코회 수도원 그레이프라이어스 성당에 안장되었습니다. 그러나 훗날 헨리 8세가 수많은 수도원을 해체하는 명령을 내리면서 리처드 3세의 무덤 위치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왕의 열혈 팬

“수도원이 철거된 후, 그의 유해는 전장으로 향하던 길에 건넜던 강에 던져졌다는 소문이 돌았습니다.” 튜리 킹은 초미석으로 채워진 호보켄 강연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옛 성당 아래 도시의 땅속에 그대로 남아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중 한 사람이 스코틀랜드 출신 작가이자 리처드 3세의 열렬한 팬인 필리파 랭글리(Philippa Langley)였습니다. 그녀는 시의회와 대학교를 설득하기 위해 끊임없이 로비를 벌였고, 마침내 모두를 움직여 자신의 우상을 찾는 발굴 프로젝트를 실현시켰습니다.

그리하여 2012년 비 오는 어느 날, 튜리 킹은 주차장 아래에서 다리뼈 조각이 모습을 드러내는 것을 보게 됩니다. 처음에는 정확한 위치를 확인해야 했기 때문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는 옛 성당 내부를 파고 있는지, 외부를 파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일주일 후, 첫날 발굴했던 장소가 성당의 제단, 즉 성소(聖所)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역사서에 리처드가 안장되었다고 기록된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철저한 비밀 속의 조사

골격이 지상으로 나온 후, 킹과 연구팀은 수개월간 극비리에 조사를 진행했습니다. 도시 전체가 이것이 그의 유해인지 궁금해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학부모들이 자기 아이들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소식이 있는지 캐묻을까 봐 남편과 아이들에게도 말하지 않았습니다.”

킹은 먼저 골격이 남성인지 여성인지 확인했습니다. 결과는 남성이었고, 심한 척추측만증(척추가 휘어 한쪽 어깨가 항상 더 높아지는 질환)과 사지와 머리에 걸친 중상의 흔적이 있었습니다. “두개골 위쪽에 세 개의 상처가 있습니다. 3D 스캔 결과 그중 두 개는 같은 검으로 만든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하나는 두개골 밑바닥까지 뚫고 들어갔는데, 이것이 치명타였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생선을 즐겨 먹은 왕

다음 단계는 방사성 탄소 연대 측정이었습니다. “중요한 점은 문헌을 통해 리처드가 생선을 즐겨 먹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겁니다. 생선 위주의 식단은 탄소 순환 주기가 길어 연대 측정 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반드시 감안해야 합니다. 생선은 플랑크톤을 먹고, 큰 생선은 작은 생선을 먹고, 우리는 그 생선을 먹죠.” 결국 유해는 1456~1530년경으로 측정되었고, 리처드의 사망 연도인 1485년이 그 범위에 딱 들어맞았습니다.

여기까지의 증거만으로도 이미 설득력이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유전학자인 킹은 당연히 리처드의 치아에서 추출한 DNA도 분석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직계 후손이 필요했습니다. DNA 분석은 아버지에서 아들로 전해지는 Y 염색체를 통해서도, 어머니를 통해 전해지는 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서도 가능합니다. “그와 혈연관계가 있다며 자기 몸의 일부를 기증하겠다고 연락해 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볼 점액이 묻은 면봉이 든, 뚜렷하게 젖어 있던 편지 봉투를 받은 적도 있습니다.”

중세의 ‘우유 배달부’

계보학 연구를 통해 킹과 동료들은 남계(父系) 후손 다섯 명이 살아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이들은 빠르게 후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아마 중세 시절 ‘우유 배달부’가 몇 군데 들른 모양입니다. Y 염색체는 친생아버지에게서 물려받는 것이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남자에게서 물려받는 것이 아니니까요.” 다섯 명 모두 리처드와 DNA가 일치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모계(母系)에서는 운이 좋았습니다. 연구팀은 마이클 입슨(Michael Ibsen)과 웬디 덜딕(Wendy Duldig)이라는 두 명의 후손을 찾아냈습니다.

“사후 DNA는 분해되기 때문에 잘게 조각난 형태로만 남습니다. 그런데 입슨과 덜딕의 DNA 조각을 리처드의 DNA와 나란히 놓은 순간 이미 일치했습니다.” 킹은 같은 실험을 다른 실험실에서 다시 수행했고,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맞다, 바로 이 사람이다! “성당 안에서 남성의 시신을 발견할 확률, 척추측만증을 가진 인골을 발견할 확률, 전쟁 부상을 입은 유해를 발견할 확률… 이 모든 확률을 종합하면 670만 분의 1이 됩니다. 우리가 그를 찾았을 확률은 99.9999%입니다.”

과학자들은 나아가 그가 실제로 어떤 목소리였는지까지 재현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시 잠들다

올해 3월, 킹이 연구를 위해 채취한 샘플을 포함해 리처드의 모든 유해가 다시 안장되었습니다. 킹 역시 그 자리에 참석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작업의 아름다운 마무리였습니다. 결국 그는 왕으로 재위한 기간보다 우리의 보호 아래 더 오래 있었으니까요.” 현재 킹은 샘플에 대한 최신 분석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의 전장 유전체 지도를 완성하는 작업과 함께, 치석에서 어떤 정보를 끌어낼 수 있는지 연구 중입니다. “치석을 통해 그가 앓았던 감염병과 평소 식단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새로운 발굴 계획에 대해서는 당분간 생각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번 프로젝트만큼 운이 따라주기는 쉽지 않을 테니까요.”

주차장 한켠에서 시작된 이 발견은 고고학, 역사학, 유전학이 힘을 합쳐 잃어버린 왕을 되찾아낸 현대 과학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기록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