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네덜란드의 메르턴스 연구소(Meertens Institute)는 워터랜드(Waterland) 지역의 민담을 담은 디지털 경로 안내 서비스 '사겐예거(SagenJager)'를 출시했습니다. 도보나 자전거로 아름다운 풍경을 즐기면서 동시에 이 지역의 민속 문화를 깊이 체험할 수 있는 것이 특징입니다. 마녀, 술사, 유령, 물 괴물까지—이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모바일 웹사이트 위를 누비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가장 설화가 풍부한 두 지역
메르턴스 연구소의 설화 데이터베이스를 살펴보면 현재 약 44,000편에 달하는 이야기들이 전국 각지에서 수집된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지역보다 유독 풍부한 곳이 딱 두 곳 있는데, 연구자 테오 메더(Theo Meder)는 그 비결이 열정적인 채집가 두 사람의 존재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바로 워터랜드의 코르넬리스 바커(Cornelis Bakker)와 프리슬란트(Friesland)의 담 야르스마(Dam Jaarsma)입니다.
야르스마는 지난해 탄생 100주기를 맞아 여러 매체에서 폭넓게 조명되었습니다. 그는 네덜란드 역사상 최고의 설화 채집가로 알려져 있으며,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프리슬란트의 민담 수천 편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메더는 "그래서 이미 프리슬란트 지역의 경로를 설계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라며 "기술은 이미 갖춰져 있고, 이제 지도를 채워 넣기만 하면 된다"고 밝혔습니다.
부케노헌 컬렉션과 신문 공고
프리슬란트에서 야르스마가 했던 역할을 워터랜드와 주변 지역에서 한 사람이 바로 코르넬리스 바커였습니다. 1900년 무렵 바커는 워터랜드 지역에서 약 500편의 이야기를 수집했는데, 이는 게릿 야콥 부케노헌(Gerrit Jacob Boekenoogen)이 신문에 낸 호소 덕분이었습니다. 라이덴에서 『네덜란드어 대사전(WNT)』 편찬 작업에 참여했던 부케노헌은 민담과 민요에 개인적인 관심이 많았던 인물입니다.
메더에 따르면 부케노헌의 흔적은 오늘날에도 대사전 속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보내진 문장들을 특정 단어의 존재를 증명하는 근거로 활용했습니다. 예를 들어 '레드스토킹(Redstocking)'이라는 단어가 WNT에 실려 있는데, 다른 어떤 언어학자라면 그런 단어를 수록하지 않았을 겁니다."
언어학·지명학·민속학에 대한 폭넓은 관심을 고려하면 부케노헌은 메르턴스 연구소에 몸담았어도 어색하지 않은 인물이었지만, 그의 시대에는 아직 그런 기관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부케노헌은 1930년에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같은 해 방언연구국(Dialectenbureau)이 설립되었습니다. 그가 남긴 민담과 민요 컬렉션은 메르턴스 연구소에 전해졌고, 수집한 아동 도서들은 라이덴 대학교로 기증되었습니다.
브록 엔 워터랜드의 개업 의사, 바커
부케노헌 컬렉션에 담긴 이야기 대부분은 코르넬리스 바커가 제공한 것입니다. 바커는 브록 엔 워터랜드(Broek en Waterland)에서 상당히 큰 진료소를 운영하던 일반 의사였고, 주변 지역 환자들도 진료했습니다. 메더는 이런 일화를 소개합니다. "때때로 그는 새벽 일찍 우이트담(Uitdam)이나 쥐더르바우더(Zuiderwoude)에서 노를 저어 온 하인에게 잠자리에서 불려 나가곤 했죠. 얀 로프(Jan Lof)의 아내가 첫 아이를 낳던 때가 그랬습니다."
"바커 의사는 목요일에 그곳에 도착했습니다. 산모가 진통에 들어갔지만 아직 출산할 기미는 보이지 않았죠. 왕복하기엔 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서 하룻밤을 묶기로 합니다. 그러다 집안 주인과 여러 민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고, 그 대화는 토요일, 진통이 본격화되어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 이어졌습니다. 결국 바커는 이야기로 가득 찬 가방 하나를 들고 집을 떠났습니다."
돈 대신 이야기로 받은 진료비
환자들이 돈이 부족할 때 바커는 종종 이야기로 진료비를 대신 받기도 했습니다. 돈에 큰 집착이 없었음은 그가 부과한 낮은 진료비에서도 드러납니다. 메더는 "훗날 그의 뒤를 이은 개업 의사가 분노했을 정도였다. 바커는 30년 동안 진료비를 한 번도 올린 적이 없었으니까요"라고 전합니다.
민담에 대한 그의 열정은 학술지 『데 히츠(De Gids)』에 발표한 글들과 두꺼운 저서 『워터랜드의 민간 의학—그리스·로마 의학과의 비교 연구』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가족들은 이 책을 박사학위 논문으로 삼을 만하다고 여겼지만, 그의 이론은 너무 의심스러워 학위 논문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메더의 말처럼 "바커는 이론을 세우기 시작하면 얇은 얼음판 위를 걷는 사람이 되곤 했습니다."
박사학위까지는 받지 못했지만 바커는 정보 제공자들의 미신을 진지하게 받아들일 만큼 무지하지는 않은 교양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장티푸스가 변소가 도랑 옆에 있고, 그 도랑물로 빨래와 설거지를 하는 데서 생긴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법이나 저주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요. 그가 '일반익리회(Maatschappij tot Nut van 't Algemeen)' 회원이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교육을 받아 이런 미신에서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었으니까요."
물의 공포, 옥커만
바커가 수집한 이야기들은 여러 장르로 나뉘지만, 그중에서도 전설(사가)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합니다. 마녀와 술사, 그리고 물 괴물에 관한 전설들이죠. 하지만 메더는 이것이 워터랜드만의 특산물은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겐예거의 첫 번째 이야기는 옥커만(Okkerman)에 관한 것입니다. 아이들을 물속으로 끌어당기는 물 괴물이죠. 아이들을 물가에서 멀리 떨어지게 하기 위해 만든 아이용 겁주기 이야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물의 나라답게 네덜란드 전역에서 발견됩니다. 다만 지역마다 '물의 공포'를 부르는 이름만 다를 뿐이죠."
동화를 능숙하게 구사하던 이야기꾼들도 있었다고 연구자는 덧붙입니다. "미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던 이는 디르크 스후르만(Dirk Schuurman)이었습니다. 녹음 장비가 보급되기 전이라 음성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바커는 최대한 충실하게 모두 필사했습니다. 방언으로 적으려 노력했고, 대화의 흐름까지 담아냈죠. '지난번에 강도 이야기 해줬었지, 이번엔 좋은 이야기 하나 생각났네' 같은 말들 말입니다. 덕분에 당시 상황을 온전히 그려볼 수 있습니다."
이야기 속에 담긴 시대상
바커가 살던 시대의 정신을 이야기들을 통해 지금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고 메더는 말합니다. "워터랜드는 특별한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늘 목축 중심의 지역이었지만, 1900년 무렵에는 큰 빈곤기를 겪었습니다. 지금 자전거로 지나치는 화려한 저택들에는 요즘 교수 한 명이 살기도 하지만, 바커의 시절에는 네 가구가 함께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