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네덜란드 외흐스트헤이스트에서 발굴된 은·금 보물 그릇, '암흑시대' 통념 깨다

네덜란드 외흐스트헤이스트(Oegstgeest)에서 서기 600년경으로 추정되는 독특한 은·금 장식 그릇이 발굴되었습니다. 라이덴의 고고학자 얍스르 더 브라윈(Jasper de Bruin)은 이번 발견이 외흐스트헤이스트 인근에 국제적인 무역 거점이 존재했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합니다.

원래 은으로 만들어진 이 그릇은 서기 400년경 동유럽, 혹은 그보다 더 동쪽 지역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로부터 두 세기가 지난 뒤 그릇에는 금박 그림과 붉은색 준보석, 그리고 걸이용 현수장치가 달린 금도금 부속품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었습니다. 바닥의 금 원판과 장착판은 7세기 초 독일 라인란트에서 출토된 유물들을 연상시키지만, 두 개의 고리를 활용한 현수장치는 영국 또는 스칸디나비아의 영향을 반영합니다.

더 브라윈은 "그릇의 제작자들이 유럽 각지의 다양한 양식에서 영감을 받은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당시 국제 무역망이 존재했다고 추정한다"며 "그릇이 발견된 유적지 역시 작은 농촌 마을이 아니라 국제 선박과 상인들이 찾아든 규모 있는 정착지였다. 유명한 도레스타트(Dorestad)의 전신이라 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암흑시대'라는 통념에 의문

A44 고속도로 바로 옆, 라이덴과 외흐스트헤이스트의 경계 지역에는 라이덴 대학교가 오랫동안 고고학 발굴 현장을 운영해 왔습니다. 고고학과 학생들이 이곳에서 실습을 통해 현장 경험을 쌓습니다. 이전 발굴 조사들은 이미 이 지역 중세 초기상을 크게 바꿔놓았습니다. 정착지가 예상보다 훨씬 컸을 뿐만 아니라 부두와 선착장 흔적도 함께 발견되었기 때문입니다. 즉, 고대 로마 국경선(리메스)과 인근 하천을 따라 단순히 농부들만 살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5세기 로마군 철수 이후의 쇠퇴기를 가리키는 '암흑시대'라는 이미지는 점점 유지하기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로마 이후 처음 몇 세기에 대한 문자 기록은 남아 있지 않지만, 화려하게 장식되고 국제적인 성격을 띠는 고고학 유물들은 당시 사회가 다양한 문화가 뒤섞인 공동체였음을 시사합니다.

더 브라윈이 학생들과 함께 발굴한 이 은 그릇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그릇은 완전한 형태로 땅속에 묻혀 있던 것이 아니라 수많은 파편으로 흩어져 있었다. 첫 번째 금 원판이 나오자 곧바로 특별한 유물이라는 것을 알았다"고 회상했습니다. 연구진은 금 원판 주변의 흙을 잘게 파내어 추가 조사를 진행했고, 그 과정에서 풍화된 은 조각과 금도금 부속품이 다량 출토되었습니다. 수개월간의 복원 작업 끝에 그릇의 모습이 되살아났습니다. 더 브라윈은 "복원을 거쳤지만 그릇은 실제로 이런 모습이었다. 파편의 90% 이상을 회복했기 때문에 귀금속 일부와 장식 일부만 빠져 있을 뿐이다"고 덧붙였습니다.

신화적 의미를 담았을까?

더 브라윈은 그릇 가장자리에 그려진 세 개의 금박 장면을 싸우는 숫사슴과 달리는 사슴이 등장하는 사냥 장면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에는 입에서 사람 다리가 나온 신화 속 상상의 동물도 보입니다. 이러한 문양과 개울가에 위치한 지리적 조건 때문에 그는 이 그릇이 종교적 용도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합니다. 제물을 바치거나 의식 전에 몸을 씻는 데 쓰였으리라는 것입니다.

다만 네덜란드는 물론 서유럽 전역에서도 이와 같은 종류의 그릇이 유일하게 발견되었기 때문에, 이 결론은 어디까지나 해석에 불과합니다. 이 해안 지역과 그 주민들이 담당했던 국제적 역할에 대한 추가 연구가 이 견해를 확인하는 데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