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으로 탁월한 민족이 어떻게 기묘한 사상을 지닌 몰락한 상등병 아돌프 히틀러를 열광적으로 따르게 되었을까? 이 질문은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을 괴롭혀 온 난제였다. 그런데 암스테르담 대학교 명예교수 프리츠 보터만(Frits Boterman)은 이 질문을 흥미로운 방식으로 뒤집어 제시한다. 바로 독일의 깊은 문화 전통이야말로 히틀러와 나치즘을 가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보터만은 저서 『문화로서의 권력(Culture as Power)』에서 나치의 성공은 독일의 깊은 문화적 전통에 주목하지 않고서는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괴테가 머물렀던 바이마르(독일 고전 문화의 상징)와 부헨발트(홀로코스트의 상징)는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곳에 있다는 말이다.
독일사의 어두운 면까지 설명할 때 정치와 문화는 보통 별개로 다뤄진다. 독일 역사에서 나타난 모든 '일탈'은 언제나 정치적인 것, 즉 권위주의 전통, 프로이센 군국주의, 19세기 자유주의 혁명의 부재 등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정치 영역의 잘못들과 나란히 늘 화려한 독일 문화가 존재했다. 괴테, 베토벤, 실러는 더 좋은 또 하나의 독일이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렇게 해서 문화와 정치 사이의 영원하고도 전형적인 독일적 모순이 탄생했다.
'세계의 탈매혹'
그렇다고 이것이 독일 지식인들이 비정치적이었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보터만에 따르면 그것은 폭로해야 할 신화에 불과하다. 『문화로서의 권력』에서 보터만은 자신의 정체성과 씨름하는 한 민족의 모습을 그려낸다. 전제주의 독일에서 정치적 발언권이 없자 게빌데테(Gebildete, 교양 엘리트)들은 문화 속으로 도피했다. 프리드리히 폰 실러는 1800년경 독일 '문화민족(Kulturnation)'이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인물 중 한 명이다.
당시 독일은 여전히 정치적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나폴레옹에게 유린당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실러는 미완성 시에서 독일 제국은 무너졌지만 진정한 독일의 존엄은 문화 안에 있다고 썼다. 독일은 아직 정치적 통일체가 아니었지만, 문화적 통일은 그 어느 때보다 가까이 있었다. 이것이 어려운 시대에 독일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프랑스 혁명의 차갑고 합리적인 계몽주의 사유, 막스 베버의 말로는 '세계의 탈매혹(Entzauberung der Welt)'에 대한 응답으로 독일 지식인들은 낭만주의의 이상을 받아들였다. 낭만주의 엘리트는 문명, 민주주의, 정치로부터 자신을 지키는 방패로 예술, 음악, 문학, 그리고 '내면'을 강조했다. 합리화와 산업화가 결국 삶의 '더 깊은 전체'를 파괴할 것이라는 것이 많은 지식인들의 확신이었다.
낭만적 가치에 대한 이러한 경향은 독일 역사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며, 제3제국의 성공을 설명하는 데에도 단서를 제공한다. 히틀러의 권력 장악은 무엇보다 문화 혁명이었다. 히틀러는 정치가가 아니라 예술가였으며, 예술·문학·건축이 후기 낭만주의적 이상 세계 속에서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하나의 낭만적 예술 작품으로서 독일을 만들고자 했다. 보터만에 따르면 나치즘은 '세계의 탈매혹'에 대한 가장 급진적인 응답인 셈이다.
타락한 물질 문명
보터만은 '시인과 사상가의 나라'에서만큼 문화가 정치에 능숙한 곳은 없다고 말한다. 카를 마르크스, 마르틴 하이데거, 나치 이데올로그 알프레트 로젠베르크 같은 철학자들의 경우에는 당연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보터만의 저작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독일의 지식인, 작가, 철학자들의 초상으로 가득하다. 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낭만적이고 보수적인 사상을 정치 속에 구현하려 애썼다.
그래서 1914년 8월, 대부분의 지식인들은 제1차 세계대전을 격렬하게 환영했다. 독일은 자유와 정신적 독립을 위해 싸워야 한다고 그들은 설명했다. 학자들과 지식인들에게 이 전쟁은 독일 문화를 짓밟으려는 적에 맞서는 방어전일 뿐만 아니라, 서구의 타락한 물질 문명을 자기 나라에서 몰아내는 해방 전쟁이기도 했다. 그들이 내세운 논거는 실러, 1800년경의 시대, 그리고 나폴레옹과의 전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었다.
보터만은 명료하고 유쾌한 필치로 독일 문화 엘리트의 많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되는 것보다 독일 역사의 어두운 면에 훨씬 깊이 연루되어 있었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1933년 5월 베를린에서 벌어진 책 태우기를 주도한 것은 학생과 교수들이었다. 오래된 정신을 문자 그대로 불태워야 재에서 새로운 세계가 솟아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물론 그 새로운 세계란 나치의 기묘한 낭만주의적이고 반유대주의적인 이상에 기반한 것이었다.
악마와의 계약
보터만에 따르면 독일 문화 엘리트는 나치즘이라는 악과 자신도 모르게 '파우스트적 계약', 즉 악마와의 계약을 맺었다. 많은 이들—물론 전부는 아니지만—어떤 식으로든 히틀러의 사상에 공감을 느꼈고, 그것이 어디로 이어질지 너무 늦게야 깨달았다.
『문화로서의 권력』은 틈틈이 가볍게 읽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보터만은 우리 동쪽 이웃 나라의 최초의 포괄적 문화사를 선보인다. 거의 900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개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만 골라 읽고 싶어지겠지만, 1800년부터 시작되는 보터만의 충실하게 기록된 이야기에 마음껏 몸을 맡기며 독일의 뿌리 깊은 문화사를 따라가 보는 편이 좋다. 그래야 비로소 그 나라와 그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