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박물관의 전통적인 정의는 '유형의 사물들이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곳'입니다. 탄자니아의 석제 창촉부터 현대의 신용카드에 이르기까지 수천 점의 사물만 있다면, 인류의 전체 역사를 하나의 이야기로 엮어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사물들의 아름다운 사진까지 더한다면, 바로 『100가지 사물로 보는 세계사(A History of the World in 100 Objects)』가 완성됩니다.
이 책은 세계 최대 규모의 특별한 역사 유물 컬렉션을 보유한 영국 박물관(British Museum)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영국의 미술사학자 닐 맥그리거(Neil MacGregor)가 엮었습니다. 그는 2002년부터 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박물관의 관장을 맡아왔습니다.
맥그리거가 선택한 사물들은 '과거에서 온 신호'와 같습니다. 프랑스에서 발굴된 약 11,000년 된 상아 순록 조각상, 이라크 출토의 설형문자 점토판, 실크로드 시대의 중국 회화 등이 그 예입니다. 이 사물들은 만들어진 시대의 세계, 그리고 그 세계를 위해 태어난 물건들로서 당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전해 줍니다.
단 100가지 사물로 세계사를 담으려면
역사는 모든 대륙에서 같은 속도로, 평행하게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박물관의 방대한 소장품 가운데 단 100가지 사물만으로 세계사를 서술해야 한다면, 지극히 예리하고 냉철한 선택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맥그리거는 파푸아뉴기니에서 발견된 새 모양의 곡식 찧는 도구를 통해, 마지막 빙하기(약 11,000년 전) 이후 농업의 발견이 전 세계 인류의 생활 방식을 어떻게 바꾸어 놓았는지 설명합니다.
세계 각지 전문가들의 해설
책에 실린 거의 모든 사물에는 전 세계 각지 전문가들의 해설이 담겨 있습니다. 저명한 역사가이자 작가인 톰 홀랜드(Tom Holland)는 금으로 만든 미니어처를 예로 들어, 페르시아 제국이 어떻게 건설되었고 페르시아인들이 자신들과 다른 민족에 대한 정체성을 어떻게 형성해 갔는지 설명합니다. 이는 고대 그리스, 로마, 중국 등 위대한 제국이 서서히 모습을 갖추어 가던 시대에 일어난 중요한 세계적 발전이기도 합니다.
15~16세기 유럽인들의 탐험과 정복의 항해 또한 세계사에 지울 수 없는 흔적을 남겼습니다. 이 시기는 유럽 문화뿐 아니라 각지의 토착 문화 역시 함께 형성해 간 시대였습니다.
서아프리카에서 나온 동판을 살펴보겠습니다. 판에는 현지 통치자 오바(Oba)가 두 명의 아프리카 상인에 둘러싸여 있고, 포르투갈 출신 여행자 두 명은 아주 작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포르투갈산 청동으로 제작된 이 판은 당시 무역을 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 주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흔히 '유럽 팽창주의의 시대'로만 기억하는 시기를, 상호 교류의 세계사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흥미로운 사례입니다.
전문적이면서도 누구나 읽기 쉬운
『100가지 사물로 보는 세계사』는 세계사를 폭넓게 조망하고 싶은 독자라면 누구에게나 훌륭한 선물이 될 책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영국 박물관 소장 유물을 나열하고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유물들은 어디까지나 독자를 안내하는 실마리고, 아름다운 삽화일 뿐입니다. 그 너머에는 12,000년이 넘는 인류의 역사를 전문적이면서도 깊이 있고, 동시에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풀어내는 구성이 자리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