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르네상스 그림은 사람과 비슷했다 – 16세기 베네치아, 살아 숨 쉬던 회화

16세기 베네치아에서 그림은 사람과 똑같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그림은 존경받고 사랑받는 동시에 미움받고 파괴되기도 했다. 베네치아인들은 그림을 그려진 인물 자체와 동일시했다. 미술사학자 엘스예 반 케셀(Elsje van Kessel)은 "오늘날 만화가 주는 영향도 이런 방식으로 이해하면 훨씬 잘 알 수 있다"고 추측한다.

연극 같은 사회, 그림으로 완성하는 이미지

무대처럼 연극적인 사회였던 베네치아에서 삶이란 태어나면서 부여된 사회적 역할을 최대한 설득력 있게 연기하는 일이었다. 사람들은 그림을 활용해 자신의 공적인 이미지를 한층 돋보이게 만들었다. 반 케셀은 당대 기록들을 분석한 끝에, 그림이 사회적 상황 속에서 인간적인 특성을 지닌 능동적 참여자로 기능했음을 발견했다.

그런 그림에 얼룩이 묻거나 훼손되면, 마치 그 인물 본인이 모욕당한 것처럼 여겨졌다. 반 케셀은 "이는 당시 사람들의 민감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는 흔히 그림은 그저 그림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림은 사람에게 아주 직접적으로 닿는다"고 말한다.

맞고, 입맞춤하고, 어루만지다

놀이와 관습의 문화가 만연했던 베네치아에서 그림은 때때로 사람의 역할을 대신하기도 했고, 그렇게 하나의 인격체가 되었다. 그림은 방문객을 맞이하고 순례자를 끌어모았으며, 사람들을 치유하고 구원했다. 돈을 벌었고, 누군가는 그림과 사랑에 빠지기도 했다. 그림은 공격심을 자극해 폭력의 희생자가 되기도 했고, 화가·귀족 가문·왕실의 대리인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그림은 맞기도 하고, 입맞춤을 받고, 어루만져지기도 했다.

미술사학자인 반 케셀은 미술사적 방법론에만 머물지 않고, 더 넓은 인류학적 시각에서 당대 자료를 들여다보았다. 현대 서구의 회화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이러한 접근이 필수적이었다. 그는 "회화가 원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작동했는지 모른다면 그림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그림은 사람과 비슷한 방식으로 자신의 역할을 연기했다. 그림이든 사람이든 매우 관습적인 행동을 보였고, 교회·문학·베네치아 국가가 익숙하게 다루던 시나리오를 충실히 따랐다. 실제로 회화는 종교적·사회적·정치적 삶에 봉사했다. 그림은 종교 기관, 정부, 가문의 손안에서 도구로 쓰였고, 화가 또한 대개 마찬가지였다.

그림의 사회적 삶

당시 화가는 항상 중요한 존재였던 것도, 심지어 존재감을 드러냈던 것도 아니었다. 반면 '살아 있는 듯한 그림'에 대한 논의를 거의 혼자서 이끌었던 화가가 있었으니, 바로 티치아노(Titian)다. 16세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는 점차 신적인 창조주로 여겨졌는데, 마치 붓에 물감이 아니라 살점을 묻혀 캔버스에 옮기는 존재처럼 묘사되었다.

복잡하고 역동적인 사회적 삶을 지닌 그림은 주로 정치·종교·사회·문화적 이해관계가 여러 세력 사이에서 교차하는 장소에서 나타났다. 동시에 그림은 예술적 성취로서 찬사를 받았다. 따라서 반 케셀은 베네치아인들이 생물학적 의미에서 체계적으로 그림을 살아 있는 존재로 착각했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사회적 차원에서 그림은 분명 살아 있었다. 반 케셀은 "16세기(친퀘첸토) 베네치아의 그림에는 사회적 삶이 있었다. 그림은 사회적 네트워크의 일부였다"고 결론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