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 이야기

마야 문명은 어디에서 왔을까? 새 연구가 밝혀낸 숨겨진 기원

중앙아메리카에 한때 위대한 제국을 이루었던 마야 인디언에 관해서는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것이 많다. 그들의 문화가 갑작스럽게 몰락한 이유만큼이나, 문명 자체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역시 미스터리다. 그런데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마야 문명의 기원은 기존에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마야 문명은 기원전부터 발전하기 시작해, 대략 서기 250년부터 900년까지 지속된 이른바 '고전기(Classic Period)'에 절정에 달했다. 마야인들은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1492년 아메리카에 도착하기 전 시대, 즉 '콜럼버스 이전 아메리카'에서 가장 발전된 문화로 성장했다. 또한 완전하게 체계화된 문자 체계를 보유한 유일한 아메리카 원주민 문화이기도 했다. 멕시코, 과테말라, 벨리즈의 정글 곳곳에 남아 있는 수많은 신전과 피라미드, 심지어 도시 전체가 통째로 남아 있는 유적들은 이 고대 민족의 위대함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그러나 마야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어떤 문화적 영향을 받았는지, 초기 발전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많은 마야 연구자들은 마야가 올멕(Olmec)이라는 민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 올멕은 대략 기원전 1500년경부터 400년경까지 멕시코만 연안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로, 마야 문명의 '모체 문화(mother culture)'로 여겨진다.

올멕과 함께 등장한 문화적 혁신 중 하나가 피라미드 형태의 신전 건축과 넓은 광장 조성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를 마야 문화의 전형적인 특징으로 여기지만, 사실 중앙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인디언 문화권에서 비슷한 구조물이 세워졌다. 이들 연구자들은 또한 마야가 훗날 성공적으로 발전시킨 정치적 중앙집권화에 관한 개념 역시 올멕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반면 다른 연구자들은 마야가 올멕을 주로 경쟁 상대로 여겼으며 두 문화 간의 교류는 크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이들에 따르면 마야 문화는 다른 문화와 비교적 고립된 상태에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문화적 요람

그러나 미국 애리조나 대학교 소속 인류학자 다케시 이노마타(Takeshi Inomata)와 그의 아내 다니엘라 트리아단(Daniela Triadan)에 따르면, 두 가설 중 어느 하나만 옳은 것도 아니라고 한다. 마야 문화의 초기 역사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이들은 심층 고고학 조사 끝에 이러한 결론에 도달했으며, 그 결과는 이번 주 학술지 사이언스(Science)에 게재되었다.

연구진은 고대 마야 도시인 과테말라의 세이발(Ceibal) 발굴 과정에서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신전의 흔적을 발견했다. 이 신전은 지금까지 발견된 가장 오래된 마야 신전으로, 올멕의 수도였던 라벤타(La Venta)에서 발견된 유사 구조물보다 적어도 200년 이상 앞선 것으로 나타났다. 세이발에서 의례용 대형 건축물이 이처럼 일찍 발전했다는 사실은, 이 도시가 라벤타 같은 다른 지역에서 생겨난 아이디어를 단순히 수용하기만 한 수동적 존재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세이발과 그곳의 마야 주민들 스스로가 이 혁신에 한몫했던 것이다.

다만 이것이 마야 문화가 올멕 문화보다 오래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올멕 역시 라벤타 이전에 다른 수도들을 거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쪽에서 다른 쪽으로 향한 일방적인 영향은 분명히 없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고고학자들은 오히려 대략 기원전 1150년부터 800년 사이에 이 지역의 여러 집단 사이에서 건축·문화·종교적 혁신이 활발하게 교류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로부터 수백 년 후, 전형적인 피라미드형 신전 건축이 탄생한 이 문화적 요람은 훨씬 넓은 지역으로 확산되었다. 그 결과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마야 제국의 중심부였다. 당시에 형성된 문화적 아이디어들은 이후 중앙아메리카의 거의 모든 인디언 문명의 토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