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무거운 치마가 다리를 드러내는 원피스로 바뀌면서, 발은 어느 때보다 주목받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발을 더욱 꼼꼼히 가꿔야 했죠. 그렇다면 전쟁 전 폴란드 사람들은 어떻게 발을 관리했을까요?
여성 패션의 혁명과 함께 숙녀들이 먼저 발목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이윽고 종아리까지 내놓고 샌들을 신으며 거리를 활보하게 되자 시장에는 새로운 틈새가 생겼습니다. 한 사업가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개척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전쟁 전 즐린(Zlín) 병원에서 정형외과 의사로 일했던 프란치셰크 라찬스키(Franciszek Račansky) 박사에 따르면, 얀 바타(Jan Bata)는 자신의 매장을 완전한 형태의 '발 케어 시설'로 탈바꿈시키기로 결정했다고 합니다. 제공되는 서비스의 범위는 가장 까다로운 고객까지 만족시킬 만큼 넉넉했습니다.
제대로 된 전쟁 전 페디큐어를 받고 나면, 어떤 구두든 편안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폴란드 신발 업계에 일어난 진정한 혁명이었습니다. 직원들은 발 관리 분야의 교육을 받아 고객에게 맞는 신발을 골라주고 위생·정형외과적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매니저에게도 단순한 장사 수완 그 이상이 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바타의 홍보 자료에 담긴 페디큐어 시술 장면.
1935년 바타 회사가 의뢰해 제작한 소책자 『과학적인 발 관리(Scientific Foot Care)』의 저자들에 따르면, 페디큐어 기술을 익히는 것 역시 똑같이 중요했습니다. 심지어 각 매장의 매니저조차 일주일에 최소 스무 명의 고객을 응대해야 했습니다! 소책자에 적힌 말을 보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지요.
오늘날 우리에게는 믿기지 않겠지만, 발 관리와 마사지에 대한 필요성은 신발에 대한 필요성보다 훨씬 큽니다. 발이 정상적으로 발달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저한 마사지를 곁들인 케어를 최소 한 달에 한 번은 받아야 합니다.
발에 결함이 있다면 목욕과 마사지를 동반한 치료를 최소 일주일에 한 번은 받아야 합니다.
전쟁 전 전문 살롱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전쟁 전의 전문 페디큐어는 오늘날 우리가 뷰티 살롱에서 받는 시술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시술의 모든 단계는 바타의 홍보 자료에 상세히 소개되어 있었는데, 심지어 시술자의 외모에 대한 기준까지 정해져 있었습니다. 안내 책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훌륭한 페디큐어 담당자는 반지 하나 없이 손을 항상 깨끗이 하고 있어야 하며, 손톱도 단정하게 다듬어야 한다. 흰 가운을 입고, 신발 또한 깔끔하고 청결해야 한다."
단정함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습니다. 전문가는 작업 공간을 제대로 준비할 줄도 알아야 했습니다. 필요한 도구들은 모두 손이 닿는 곳에 두고 소독을 철저히 해야 했으며, 스타킹·양말·깔창 등 각종 보조 용품을 가득 채운 선반도 갖춰야 했습니다. 긴장을 푼 고객에게 판매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요.
시술의 첫 단계는 할머니, 증조할머니 시절부터 지금까지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80년 전에도 시술은 발을 깨끗이 씻고 냄새 제거제를 탄 물에 담그는 것으로 시작하라고 권고되었으며, 이 과정은 최대 10분까지 걸릴 수 있었습니다.
바타. 체코 기업이지만 포스터에 따르면 폴란드에만 무려 1,700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습니다.
흥미롭게도 2014년 출간된 미용 서비스 기술사 양성 교재 『손, 발, 몸(Hands, Feet, Body)』에서도 시술의 시작은 비슷합니다. 저자들은 위생 관리와 굳은살 제거를 돕는다는 점에서 족욕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동시에 발을 소독하고 불리는 과정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지친 몸으로 살롱을 찾은 고객에게 편안함을 줍니다. 피곤하고 땀에 젖은 발을 드러내는 일이 고객에게는 부끄러운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잠시의 휴식, 그리고 판매의 기회
전쟁 전 살롱에서는 손님이 편안하게 쉴 수 있도록 세심한 배려가 이루어졌습니다. 물론 그 본질은 거래에 적합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었습니다. 시술을 받으려면 스타킹이나 양말을 벗어야 하는데, 스타킹 상품을 이야기하기에 이보다 좋은 타이밍이 어디 있겠습니까?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고, 발 마사지를 받으며, 남다른 대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 무렵이면 발에 새 스타킹이나 깨끗한 양말을 신고 싶다는 생각이 거의 필연적으로 떠올랐습니다!
페디큐어 담당자는 고객의 발(그리고 신발)을 검진하여 겪고 있는 문제를 파악하는 임무도 맡았습니다. 굳은살과 티눈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했죠. 이 지점에서 바타의 '페디큐어 담당 영업사원'은 정형외과 용품 판매 실력을 뽐낼 기회를 얻었습니다. 의사는 아니었지만 평발을 지지한다는 고무 깔창 등을 갖추고 있었고, 관절 보호대 같은 제품도 판매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킬체(Kielce)에 문을 연 바타의 첫 번째 전쟁 전 살롱.
시술의 두 번째 단계는 손톱을 청소하는 것이었고, 세 번째는 굳은살을 모두 제거하는 것, 그리고 네 번째이자 마지막 단계는 발 마사지였습니다. 현대의 교재와 단계 구분은 거의 같지만, 1935년의 미니 매뉴얼에 없던 몇 가지 사소한 항목이 추가되었습니다. 예컨대 표피 경계선을 정리하거나 필요에 따라 큐티클을 다듬는 과정 등입니다.
손님이 다시 찾도록
페디큐어 담당자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집중력과 숙련, 위생, 그리고 통증 없는 시술이었습니다. 발에 나타나는 질병의 징후에도 주의를 기울여 필요하면 전문의에게 보내야 했습니다. 모두 소비자를 위한 배려였습니다. 만족한 고객은 단골이 되기 때문입니다. 반면 페디큐어 담당자의 부주의는 본인에게 아주 나쁜 결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페디큐어 담당자의 업무 범위를 넘어서는 행위는 대개 위험한 결과로 끝나며, 치료와 통증에 대한 배상금, 그리고 고객이 노동 능력을 잃은 기간의 수입 손실까지 물어야 하는 경우 재판에 회부되어 처벌받기도 합니다.
프란치셰크 라찬스키는 이 경고를 극도로 강경하게 전달했습니다. 그는 합병증이 생기더라도 회사는 언제나 책임을 회피한다는 점을 잊지 않고 강조했습니다. "모든 페디큐어 담당자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 개인적으로 책임집니다."라고 그는 말했습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대기업의 고객 책임에 대한 태도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출처
이 글은 저자가 저서 『방부제 없는 아름다움: 증조할머니들의 미용 비결(Beauty Without Preservatives. Beauty Secrets of Our Great-Grandmothers)』을 집필하며 수집한 자료와 출처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전체 참고 문헌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